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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오후 3시, 제주 4.3 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 유족들이 70년 넘게 '행방불명자'라는 차가운 번호로 불렸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유골함에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3일 오후 3시, 제주 4.3 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 유족들이 70년 넘게 '행방불명자'라는 차가운 번호로 불렸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유골함에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 제주도청

3일 오후 3시, 제주 4.3 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 입춘을 하루 앞둔 포근한 바람이 공원을 감싸지만, 살내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70여 년 전,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차디찬 땅 밑과 암흑의 갱도 속에 잠들어야 했던 이들이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되찾아 돌아왔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육지로 끌려갔다더라" 대전 골령골서 제주4.3 희생자 유골 확인 https://omn.kr/2gsta )

"이름표를 붙여주세요!"

사회자의 외침이 정적을 깨고 울려 퍼진다. 유골함 앞에 선 유가족들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유족들은 떨리는 손으로 그 석 자가 새겨진 명패를 유골함에 붙였다.

'김사림', '임대훈', '송태우'... 이날 일곱 혼백이 70년 넘게 불려온 '행방불명자'라는 호칭 대신 비로소 제 이름을 찾았다.

경산 코발트광산 발굴 유해 중 첫 신원 확인

 3일 오후 3시, 제주 4.3 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 유족들이 70년 넘게 '행방불명자'라는 차가운 번호로 불렸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유골함에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3일 오후 3시, 제주 4.3 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 유족들이 70년 넘게 '행방불명자'라는 차가운 번호로 불렸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유골함에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 임재근

 3일 오후 3시, 제주 4.3 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 참석자들이 70년 넘게 '행방불명자'라는 차가운 번호로 불렸던 4.3 희생자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3일 오후 3시, 제주 4.3 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 참석자들이 70년 넘게 '행방불명자'라는 차가운 번호로 불렸던 4.3 희생자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 임재근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총 7위. 대전 골령골에서 3명(김사림·양달효·강두남),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2명(임태훈·송두선), 그리고 제주공항(정뜨르) 활주로 아래서 2명(송태우·강인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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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국 시인은 이날 <뼈의 노래> 시를 통해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대전 골령골 긴 골창 / 경산 코발트 광산 수직의 암흑 평갱도 / 정뜨르 붉은 땅에서 / 두려움에 지쳐 쓰러져간 / 혼백의 비명소리 울부짖는 아우성으로 슬피웁니다."

특히 이번 보고회는 평소보다 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구형무소 희생자들이 집단 학살당했던 '죽음의 갱도',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발굴된 유해 중 처음으로 신원이 확인돼 고향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터져 나온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통곡의 역사였다. 백발이 된 아들은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아버지를 불렀고, 손자는 투박한 제주 사투리로 할아버지를 맞이했다.

고 임태훈씨의 딸 임진옥씨는 "얼굴도 모르지만 많이 그립고 보고 싶고 목놓아 불러보고 싶은 아버지였다"라며 "제가 살아있을 때 시신이라도 모시게 돼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고 김사림씨의 손자 김남훈씨는 "어제 백발이 된 아버지는 할아버지 앞에서 흐느껴 우셨다"라며 " 이제 다 같이 우리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 곁에서 영원히 평안히 주무십시오"라는 말로 고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특히 고 송태우씨의 아들 송승문(76)씨의 사연은 장내를 숙연케 했다. 1949년 소식이 끊긴 아버지를 찾으려 지난해엔 대마도까지 건너가 위령제를 지냈던 그다. 포기하고 싶던 순간, 그의 두 아들이 채혈에 참여하면서 기적처럼 아버지를 찾았다.

송씨는 "아직 채혈하지 않은 유가족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참여해 부모와 형제를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 송태우씨의 아들 송승문씨는 1949년 군사재판 후 소식이 끊겼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지난해 대마도까지 건너가 위령제를 지냈다. 포기하고 싶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의 두 아들이 채혈에 참여하면서 결국 아버지를 찾았다.
고 송태우씨의 아들 송승문씨는 1949년 군사재판 후 소식이 끊겼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지난해 대마도까지 건너가 위령제를 지냈다. 포기하고 싶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의 두 아들이 채혈에 참여하면서 결국 아버지를 찾았다. ⓒ 임재근

남겨진 과제... "채혈이 이름을 찾는 열쇠입니다"

이번 신원 확인으로 제주에서 이름을 되찾은 이는 총 154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유해가 번호표를 단 채 차가운 창고 안에서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이번 신원 확인의 결정적 역할은 유가족의 적극적인 채혈 참여였다"라며 "방계 8촌까지 채혈이 가능한 만큼, 단 한 분의 희생자라도 끝까지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이번에 이름을 찾은 김사림·임태훈씨의 경우 조카의 채혈이, 나머지 희생자들은 손자와 외손자의 채혈이 결정적이었다.

올해 4.3 유가족 채혈은 오는 11월 30일까지 제주한라병원과 서귀포열린병원에서 계속된다.

 3일 오후 3시, 제주 4.3 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에서 제주 4.3 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를 개최하고 있다.
3일 오후 3시, 제주 4.3 평화공원 평화교육센터에서 제주 4.3 희생자 신원확인 보고회를 개최하고 있다. ⓒ 임재근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추도사를 통해 "이번 신원 확인의 결정적 역할은 유가족의 적극적인 채혈 참여였다"며 "방계 8촌까지 채혈이 가능한 만큼, 단 한 분의 희생자라도 끝까지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겠다"고 강조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추도사를 통해 "이번 신원 확인의 결정적 역할은 유가족의 적극적인 채혈 참여였다"며 "방계 8촌까지 채혈이 가능한 만큼, 단 한 분의 희생자라도 끝까지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겠다"고 강조했다. ⓒ 제주도청






#제주#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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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소장(북한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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