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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4일) 늦은 오후 외출에서 돌아온 딸이 문 앞에 물건이 있다며 들고 들어와 "엄마, 엄마한테 누가 뭘 보냈나 봐" 한다. 택배를 시킨 것도 없고 해서, 의아해 확인해 보니 '함께 일할 때 즐거웠다'며 '설 연휴 잘 보내세요'라는 메모가 붙어있다. 나의 제2막 인생을 응원한다는 문구도 덧붙여있다. 같이 근무했던 직원이었다.

▲문앞에 두고간 후배의 선물연락도 없이 후배가 명절선물을 문앞에 두고 갔다. ⓒ 김희
퇴직하고 한 달 반이 지났다. 잊지 않고 찾아와 준 후배가 참으로 고마웠다. 퇴직 후 '선택적 고독'이라는 나만의 방식으로 직장과 인연 맺은 이들과는 거의 연락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 그렇게 35년 다닌 직장과 이별하는 중이다.
퇴직만 하면 모든 게 편안하고 출근하지 않으니 좋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다. 긴 세월 출퇴근하며 일도 사람에게도 마음을 전부 준 곳이라 헤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퇴직 이후에 알게 됐다. 무슨일이든 본인이 직접 겪어봐야 알게 되는구나 새삼 느끼고 있다.
후배가 남겨두고 간 물건이 무엇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집까지 와 문 앞에 두고 가면서 초인종을 누르지도, 카톡에 물건을 두고 간다는 연락도 없었다. 그게 고마운 거다. 같이 근무하던 선배를 너무 잘 아는 후배의 배려인 거다.
내게도 고마운 상사이자 선배 두 분이 계신다. 직장 내에서도 명절이 되면 상사나 동료에게 선물을 주고받곤 하지만, 나는 서로에게 부담이라 생각되어 선물 주고 받는 걸 하지 않았다. 또한 왠지 상사에게 선물을 드리면 뭐 부탁할 게 있나 상대방이 오해할 수 있겠다 싶어 한 번도 드린 적이 없다.
그 두 분이 퇴직하고 나서 수 년간 설, 추석에는 꼭 선물을 집으로 보내드렸다. 같은 직장에 있을 때 못다 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한참은 집으로 보내드리다, 카톡 선물하기가 편해 방식을 바꾸고도 수년을 그렇게 했다. 퇴직을 결정한 이후는 두 분이 부담스러워 하시겠다 싶어 지금은 보내지 않는다.
"현직에 있을 때는 물 한 방울 없더니 퇴직한 사람한테 무슨 선물을 보내냐…."
"퇴직 하셨으니까 보내는 거죠. 부탁할 게 없잖아요…."
그렇게 두 분과 오랫동안 1년에 두 번은 꼭 안부를 나누었다. 직장을 다니며 많은 이들을 만났다. 상사로, 동료로, 부하 직원으로도…. 일을 하다 보면 부득이 큰 소리가 날 수도 있고, 싫은 소리를 할 때도 있다. 서로가 불편한 관계가 되기 십상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문제가 뭔지를 두고 실랑이하는 일도 허다하다. 그 가운데 서로를 미워할 수도, 이해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들이 무한 반복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에게 지켜야 하는 건 '품격'이다. 나이가 많은 상사든, 금방 들어온 신입 직원이든 서로에게 언어와 행동의 품격을 지켜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서로에 대한 작은 배려, 나이와 경험치를 떠나 존중하는 그 품격을 말하는 거다.
선배가 퇴직하고 난 자리에 후배들이 앉게 되고 그 후배가 퇴직하면 또 다른 후배가 그 자리에 앉게 된다. 모든 후배들은 퇴직한 선배를 기억한다. 고단했던 세월을 함께 견딘 시간이 기억을 꽉 채우고 있으니 말이다.
퇴직 하고도 기억에 남는 선배에 대한 기준은 각자 다르겠지만 직장에서의 좋은 선배는 모범이 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거쳐간 선배들을 기억한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조직을 아끼고 사랑했던 선배들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다녀간 후배의 선물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아직 풀어보지 못하고 있다.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와 나는 이 선물을 받아도 될까, 근무하는 동안 나는 후배들에게 품격있는 선배였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퇴직 후 직장과의 완전한 이별을 연습중인데, 모르게 다녀간 후배의 마음에서 따스한 위로를 받았다. 퇴직한 선배의 홀로서기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해주는 이들이 있어 나의 홀로서기가 외롭지 않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