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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05 11:04최종 업데이트 26.02.05 11:21

평범한 조선 민중이 당한 차별, 그 기록을 만나다

[서평] <조센징에게 그러지마!>

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을 그리며 자연스레 일제강점기의 근대사 책을 찾게 되었다(관련 기사 : 일본에서 시작한 독립운동가 그리기, 미국에서 계속 하는 이유). 나의 책장은 예술 관련 서적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근대사와 식민지 조선에 관한 자료다.

책을 고를 때는 늘 저자와 키워드, 그리고 관련 인물들을 체크한다. 그렇게 장바구니에 담긴 책들은 1년에 한두 번, 해외배송으로 받는다(관련 기사 : 해외배송비가 비싸도 책 주문을 포기할 수 없어요).

지난해 늦여름, 강렬한 제목 하나에 이끌린 책 한 권을 다른 여러 책과 함께 배송 받았다. 바로 <조센징에게 그러지 마!>였다. 일제강점기의 '내부 극비자료'라니, 쉽게 접하기 힘든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1933년 조선헌병대사령부가 편찬한 내부 문서를 번역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식민지의 통치 기관이었던 헌병대가 조선인을 차별한 일본인들의 행동을 직접 기록했다. 1932년 4월부터 1933년 3월까지 조선 전역에서 발생한 68건의 차별 사례가 담겨 있다.

조센징에게 그러지마! 흐름출판사 조선헌병대사령부가 편찬한 내부 문서를 번역한 책이다
조센징에게 그러지마! 흐름출판사조선헌병대사령부가 편찬한 내부 문서를 번역한 책이다 ⓒ 흐름출판사

머리말은 당시 육군 소장 이와사 쿠로쿠가 썼다. 그는 메이지 천황의 글을 인용하여 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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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송하옵게도 메이지 황제가 지으신 글에,
"만약 어질고 자애로운 마음을 널리 베푼다면 조선 들판에 숨어 있던 호랑이도 따르지 않겠는가?"

머리말에서 이와사 쿠로쿠는 뽕나무(일본)와 무궁화(조선)로 이루어진 집에 봄바람이 불기를 바라며 '내선융화(內鮮融和)'를 말한다. 이 책은 감정적인 서술 없이 사건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건조하지만, 그래서 더 사실적이다.

"화재라는 소리에 서둘러 달려갔지만 조선인 집이라는 것을 알고 모두 되돌아 갔다. '뭐야 요보 집이었어?'" 42p

"생사를 오가는 임산부에게 선금을 내지 않으면 왕진 할 수 없다는 의사. 눈물을 흘리며 헌병대에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 45p

"떨어진 이삭을 주운 여인을 도둑이라 매도하여 겉어차서 결국 유산시키다. 격분한 이군은 전주지방법원에 위자료 청구서를 제출했고 마침내 야마다로부터 150엔 위자료를 받았다. -107p"

문명 선진국 내세우며 폭력적 지배 정당화 하는 아이러니

'요보(ヨボ)'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시대극이나 영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요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조선인을 낮춰 부를 때 쓰던 말이다. '여보세요'의 '여보'에서 왔지만, '하찮은 자'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요보'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인물은 <경성일보> 기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우스다 잔운(薄田斬雲)으로, 조선인을 그린 작품 <요보기>(1908년)에 조선인을 노모(老母, 늙어서 정신이 가물거리는 노인)로 표기하며 '요보'로 병기하였다고 한다.

1933년 3월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국제연맹을 탈퇴한다. 제국주의의 논리 속에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 금지'는 통치를 위한 수단이었다. 자비를 베푸는 '문명 선진국'의 이미지를 내세우며 실제로는 폭력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그늘에 가려진 또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평범한 조선 민중,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이들이 일상 속에서 겪은 모욕과 차별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의 허울 좋은 명분 아래 감춰진 폭력과 차별을 짧은 사례를 통해 더 깊이 인식할 수 있다. 특히 독립운동의 거대한 역사 뒤편, 이름 없이 살아갔던 민중들의 일상을 들여다 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록은 언제나 말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한다. 국가의 폭력이나 제도의 차별은 곧 '평범한 일상' 속에서 태어난다. 그 일상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단지 과거를 복기 하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인간 사회를 성찰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이것만으로도 <조센징에게 그러지 마!>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블로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조센징에게 그러지마! -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불손을 혐오스러워한 조선인

조선헌병대사령부 (엮은이), 변주승, 이정욱 (옮긴이), 흐름(디자인흐름)(2017)


#조센징에게그러지마#흐름출판사#조선헌병대사령부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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