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에 몸(己)이 생기면 기록(記)이 된다. 생각할 억(憶)에는 심장(心)이 두 개가 있다. 기억(記憶)은 말을 가슴에 깊이 새기는 일인가 보다. 그러나 나의 기억은 한없이 연약하다. 종종 어제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방금 전 자리에서 일어난 이유가 무엇인지 잊어버리기도 한다.
'아마 말에도 몸이 있기에 그럴 거야'라고 혼자 생각한다. 말도 가만히 있으려니 슬슬 몸이 근질거리겠지. 어딘가 도망가고 싶어하는구나라며 키득거린다. 충분히 부족한 기억력을 가졌기 때문인지 나는 쓰는 일을 즐긴다. 놓치고 싶지 않은 말이라면 두 번 세 번 새기면 될 노릇이다. 쇳덩이처럼 단단한 곳에 새겨두면(錄) 말의 몸은 쉽게 도망가지 못한다. 기록(記錄)하면 기억(記憶)은 쉽게 존재한다.

▲1984, 조지 오웰(지은이),이수영(옮긴이). ⓒ 열림원
조지 오웰의 <1984> 이야기의 첫 장면은 주인공 윈스턴이 일기를 쓰는 일로 시작한다. 그런데 그가 일기를 쓰는 일은 처절한 수난에 가깝다. 1984년 4월 4일. 첫 문장을 쓰자마자 윈스턴은 무력감을 느낀다. 오늘이 과연 그 날짜인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나이가 서른아홉이고 태어난 연도가 1944년이나 1945년이니 그런가 보다 하고 짐작할 뿐이다. 그리고 더 이상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생각하지 못한다. 그의 머릿속 기억은 능력을 상실한 듯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일기를 쓴다.
노트를 펴고 펜을 꼭 쥔 채 떠오르지 않는 말과 고군분투하는 윈스턴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책날개 사진에서 본 조지 오웰의 모습이 윈스턴의 얼굴에 채워진다. 윈스턴은 1948년의 조지 오웰이며 1984의 84는 48의 전복이다. 나는 오웰이 자신을 주인공에 대입시킨 솔직한 자기 고백에 매료되었고 그에게 큰 존경심을 느낀다.
텔레스크린이 국민을 24시간 감시하고 사상경찰로 생각마저 통제되는 사회. 윈스턴은 그런 사회에 저항하고자 하는 거의 유일한 개인으로 그려진다. 그 저항의 시작이 글쓰기에서 시작된다는 점에 눈길이 간다. 조지 오웰은 자신의 글쓰기에 큰 사명감을 느낀 것 같다. 윈스턴은 자신이 일기를 쓰는 행위가 엄청난 일이라고 깨닫는다. '누구를 위해 쓰이는지 모를',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세를 위한' 일이면서, <1984>는 조지 오웰이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될', '존재해야 할 기억'의 기록이다.
윈스턴은 기록을 업으로 삼는다. 그가 일하는 진리부의 기록국은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맞지 않는 기록을 삭제하고 수정하는 일을 맡는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당의 슬로건에 따라 개인은 절대 권력에 복종하는 삶을 산다. 윈스턴이 기억의 재생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 기록이 끊임없이 조작되는 사회에서 인간의 기억은 힘을 잃는다. 윈스턴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여동생에 대해 종종 기억을 떠올리지만 확신하지 못한다. 오브라이언이나 채링턴에 대해서도 다른 얼굴로 기억하기도 한다.
기억은 개인에게 얼마나 중요할까?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 말을 윈스턴에게 대입한다면 '나는 기억하기에 존재한다' 쯤이 될 듯싶다. 그는 7년쯤 전에 꿈속에서 오브라이언이 "우리는 어둠이 없는 곳에서 언젠가 만날 것이오"라고 말했을 거라고 믿는다.
오브라이언이 7년 쯤 전에 윈스턴을 고문했는지 모르겠다. 윈스턴은 희미한 기억으로 오브라이언을 자기 편으로 확신했고 당의 권력에 굴복한 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는다. 나의 과거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생각을 확신하지 못한 인간은 무력하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
마지막 문장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루는 것에 주목한다. 윈스턴은 이제 생각과 행동에 더해 감정마저 당에 의해 통제되는 올바른 시민이 되었다. 2+2=5라고 답하고, 사랑하는 여인 줄리아마저 배반하고 고문에서 벗어났다. 생각과 감정 중 인간성에 결정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전자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결론 내린다. 감정 또한 자아의 의식이 없이는 인지할 수 없으니 말이다.
윈스턴의 인간성은 사라지고 그는 소멸했지만 가장 비참하지는 않다. 구어 대신 신어(NEwspeak)만이 사용되는 2050년의 세계야말로 가장 끔찍하다. '자유'라는 말이 사라지고 그 개념이 완전히 없어져 버린다면 이 세계의 인간은 더이상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존재다.
조지 오웰은 인류의 소명을 오브라이언에 입을 통해 전한다.
"우리는 우리의 지식을 개인에서 개인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줄 수 있을 뿐이오. 사상경찰이 감시하고 있는 한 다른 방법이 없소."
한 인간의 말은 생각으로만 존재한다면 쉽게 사라진다. 하지만 글로 전해지고 다른 인간에게 깊이 새겨진다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 오늘 나의 이 기록 또한 어쩌면 무의미할지 모르지만 매우 중대한 엄청난 일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