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생탄광 84주기 추도식이 열린 7일 오후 피아를 통해 들어간 대만인 잠수사가 의식을 잃자 헬기가 동원돼 끌어올리고 있다. ⓒ 조정훈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136명을 포함해 183명이 수몰돼 숨진 장생탄광(長生炭鑛·조세이탄광) 희생자들의 유골 수습에 나섰던 대만인 잠수사의 사망 사고와 관련 일본 시민단체가 유감을 표했다.
이노우에 요코 '장생탄광 물비상(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 대표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는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 이었다"며 "심려를 끼쳐드리게 되어 대단히 송구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이노우에 대표는 "저희는 책임을 어떻게 지고 나아갈 것 인지에 대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며 "다만 장생탄광 유해 수습에 대한 염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 일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갈 지에 대해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검토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장생탄광 희생자 유골 수습을 진두지휘 해 온 일본인 잠수사 이사지 요시타카씨는 전날 대만인 잠수사 웨이 수(57)씨의 사망과 관련 "고산소(산소 과다 공급) 혈증으로 인한 경련으로 익사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사지씨에 따르면 전날 오전 10시 30분쯤 3명의 다이버가 해변에서 보트를 타고 바다에서 먼 쪽 피아를 통해 잠수했고 사망한 다이버 웨이 수씨는 오전 11시 32분쯤 두 번째로 잠수했다.
이사지씨는 "잠수 시작 10분 뒤 고산소 상태에 빠졌고 경련이 발생하면서 호흡기가 입에서 빠져 익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이 8일 오후 현지에 도착하면서 웨이 수씨에 대한 부검은 빠르면 9일쯤 실시될 예정이다.
웨이 수씨는 대만에서 다이빙 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멕시코 탐험팀에도 참여한 경력이 있다. 웨이 수씨는 장생탄광에 투입되기 전 현지 도착 후 바다 잠수 등 필요한 준비를 마쳤고 사고 전날에도 몸 상태가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생탄광 수몰사고는 일제강점기인 지난 1942년 2월 3일 해저탄광에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조선인 노동자 136명과 일본인 47명 등 모두 183명이 수몰돼 사망했다. 이후 탄광 입구는 누군가에 의해 막혔고 80여 년이 넘도록 유골 수습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일본 시민단체인 새기는회는 수십여 년의 노력 끝에 지난 2024년 갱도 입구를 찾아냈고 지난해 8월에는 잠수사들을 동원해 희생자로 추정되는 두개골 등 유골 4점을 수습했다.
참사 84년 추도식을 앞두고 지난 3일부터 일본, 대만, 핀란드,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5개국에서 온 전문 잠수사 6명이 추가 유해 수습에 들어갔고 6일에는 추가로 유골 1점을 수습했다. 이들은 오는 11일까지 유골 수습을 이어가기로 했으나 대만 잠수사가 7일 잠수 도중 사망하면서 추가 작업은 전면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