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 시각)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게재한 합성이미지. 지난해 8월 백악관에서 유럽 지도자들과 대화하는 장면과 캐나다, 그린란드, 베네수엘라를 성조기로 도배한 지도가 합성돼 있다 ⓒ 트루스소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슈퍼볼 하프타임 무대에서 '미국의 단합'을 강조한 가수 배드 버니(Bad Bunny)의 메시지에 격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팽창주의적 구상을 담은 인공지능(AI) 합성 이미지를 다시 공유했다. 대중문화 이슈가 곧바로 외교·안보 논쟁으로 번지는 장면이었다.
8일(현지 시각) 하프타임 공연 말미, 푸에르토리코 출신 가수 배드 버니는 '함께라면, 우리는 아메리카(Together, we are America)'라는 문구가 적힌 공을 건네받았다. 이 장면은 트럼프 대통령이 강하게 추진해 온 반 이민 단속 정책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 널리 해석됐다. 배드 버니는 그동안 이민 단속과 강제 추방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해 왔고, 2024년 대선에서는 카멀라 해리스를 지지하기도 했다.
이 같은 메시지가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하프타임 쇼가 끝난 지 약 30분 뒤 트루스소셜에 "슈퍼볼 하프타임 쇼는 정말 형편없다. 역대 최악 중 하나다. 도무지 말이 안 되며, 미국의 위대함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몇 주 전에도 배드 버니의 하프타임 쇼 출연 결정 자체를 두고 "완전히 터무니없다"라고 비난한 바 있다.
본명 베니토 안토니오 마르티네스 오카시오인 배드 버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서 열린 슈퍼볼 LX 하프타임 쇼의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올라, 스페인어 가사와 레게톤 리듬을 미국 최대 스포츠 이벤트 무대에 올렸다. 그는 올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앨범 <데비 티라르 마스 포토스(Debí Tirar Más Fotos)>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으며, 2025년 스포티파이 최다 스트리밍 아티스트로 기록됐다.
트럼프의 반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확장된 미국 제국' 구상을 담은 AI 합성 이미지를 다시 공유했다. 해당 이미지에는 캐나다와 그린란드, 베네수엘라까지 미국 성조기로 덮인 아메리카 대륙 지도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 사진은 지난 1월, 그린란드의 미래를 둘러싼 국제적 갈등 국면에서 처음 게시된 것이다. 사진 속에는 백악관 집무실(오벌 오피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등과 함께 있는 장면이 연출돼 있다.
한편, 보수 성향 단체 '터닝포인트 USA'는 배드 버니의 공연을 보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해 '올-아메리칸 하프타임 쇼(All-American Halftime Show)'라는 대안 공연을 기획했고, 이 무대에는 트럼프 측근으로 알려진 가수 키드 록이 출연했다. 이 공연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 트럼프 진영 인사들에 의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홍보되기도 했다.
외신들은 이 도발적인 게시물 재공유가 덴마크 왕국의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둘러싼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에 덴마크와 체결한 조약으로 이미 미국이 그린란드에 대한 군사적 접근권을 보장받고 있음에도, "안보상의 이유로 그린란드는 미국의 일부가 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한때 무력 사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언급했다가,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해당 발언을 철회한 바 있다.
트럼프의 이번 이미지 재공유는 미국과 캐나다 간 긴장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트럼프는 몇 주 전 캐나다가 중국과 무역 협정을 추진할 경우 캐나다산 수입품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으며,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자고 반복적으로 조롱해 왔다. 그린란드 편입을 밀어붙이는 트럼프의 행보는, 해당 지역과 3000km가 넘는 해상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캐나다의 안보 우려로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