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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랑 책 읽고 대화했어."
사회 초년생 딸은 20,30 독서 모임을 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독서 모임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궁금했다. 다양한 직업군이 구성원이라 평일은 직장일로 바쁘기 때문에 보통 2시간 중 1시간은 가져온 책을 읽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머지 1시간은 읽고 있는 책을 소개하거나, 읽은 부분에 대한 생각, 함께 나누고 싶은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눈다고 했다.
기성세대인 나는 으레 독서 모임은 같은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기에 딸의 말이 신선했다. 딸은 책을 매개로 대화하니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에게 자신을 얼마나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어 좋다고 했다. 그리고 각자 다른 책을 읽으니 다양한 책을 알게 되고 독서의 반경이 넓어지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딸은 독서 모임에서 이야기 나누었던 책에서 궁금한 점이나, 소개받은 책 중에서 다소 어려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을 때 AI와 대화한다고 했다. 모호했던 부분이 이해되고 잘 읽히더라고 덧붙였다. 딸과 대화를 나눈 뒤 나도 좀더 적극적으로 AI와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AI에게 피드백을 부탁했더니

▲AI에게 내가 쓴 글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해 보았다. ⓒ berctk on Unsplash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누군가 자신의 글을 읽고 솔직한 평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문장이 비문은 아닌지, 제목과 내용이 일관성 있게 구성되었는지, 군더더기는 없는지, 타자가 읽을 때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읽히는지 등 궁금한 점이 많다.
그래서 가끔 용기를 내어 친한 친구에게 나의 글을 공유해 보기도 했다. 그러면 돌아오는 반응은 "좋다야" 이 정도로 끝난다. '애초에 솔직한 평을 기대한 것이 무리였구나' 생각하게 된다. 나부터도 타인의 글을 감히 평하지 못하겠으니까.
일론 머스크는 AI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고 몇 년 안에 지구 인구 80억 전체를 합친 지능을 추월할거라고 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AI가 거짓말을 잘 한다, 아직은 멀었어, 이런 반응들을 종종 들었다. 요즘은 똑똑한 비서 10명 데리고 일하는 것 같다는 말을 공식적인 강연장에서도 듣고 있다.
그래서 AI에게 내가 쓴 글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해 보았다.
"이 글을 읽고 에세이에 대한 너의 솔직한 평을 듣고 싶어."
"글 잘 읽었습니다. 요청하신 대로 솔직한 평을 드릴게요. 칭찬과 함께, 에세이로서 더 좋아질 수 있는 지점도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AI의 서평에세이 한 편을 첨부하여 솔직한 평을 요청했더니 AI가 장점과 아쉬운 점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 이정미
AI가 의견을 주는데는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정말이지 깜짝 놀랄 속도였다. AI가 콕콕 짚어준 내용에 수긍이 갔다. AI는 나의 에세이에 대해 잘 쓴 부분(강점)과 아쉬운 부분(더 좋아질 수 있는 지점)을 각각 세 가지 항목을 나누어 정리해 주었다.
잘 쓴 부분을 ①관찰이 섬세하고 진짜다 ② 감정의 톤이 일관되다 ③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다 세가지로 정리해서 알려주고, '그저 보여주고, 느끼게 하고, 독자가 스스로 가져가게 합니다. 에세이에서 가장 어려운 지점을 잘 지키고 계세요'라고 요약해 주었다.
아쉬운 부분은 ①중반부 설명이 다소 길어진다 ② 화자의 '나'가 조금 더 나와도 좋다 ③ 마지막 문단의 힘이 조금 분산된다고 조언했다. 사실 글을 쓰면서 마지막 문단에 중심 소재와 벗어난 다른 소재를 끌어오면서 넣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AI에게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글쓴이의 고유함만이 남는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AI이는 "원하신다면"이라며 몇 가지 추가 요청 내용을 제시했다. 나는 AI의 제안에 따라 문장 몇 개를 선택하여 다듬고 고쳐달라고 부탁했다. 다음은 AI가 선택해서 고쳐준 문장이다.

▲윤문AI가 원문을 윤문하여 더욱 명확하게 고쳐주었다. ⓒ 이정미
AI가 다듬고 고쳐준 문장이 더 자연스럽게 읽혔다. 내가 쓴 문장에 비해 주어와 서술어가 알맞게 호응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I는 왜 문장을 이렇게 윤문했는지 그 이유도 말해주었다. '의미는 같지만 말의 흐름을 부드럽게 하였다', '문장의 균형을 정리했다', '주제 문장이라 힘과 호흡을 더 실었다', '담백하게 정리했다'고 친절하게 안내했다. 이 모든 것이 몇 초 안에 이루어졌다.
덧붙여서 AI는 글의 목적에 따라 제목 추천하기, 분량 5% 줄이기, 문학성 중심 공모전이나 신문이나 공공기관 공모전 등 목적에 맞게 수정하기 등을 원하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분량에 맞게 글을 줄이는 일이 쉽지 않은데 AI는 단 몇 초 만에 핵심 내용을 잘 살려 간추려 주었다. 제목도 여러가지 추천한 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이 목적에는 이 제목이 더 어울린다'는 의견까지 주었다.
AI의 제안에 따라 계속해서 명령문을 입력하면서 '아차, 이건 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긴 한데 원문이 가졌던 '나만의 고유함'이 점점 퇴색되는 느낌이었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반듯반듯한 기성품이 매끈하고 세련되긴 했지만 '핸드메이드' 매력에 못 미치는 것.
빵에 진심인 사장님이 직접 만든, 고유한 맛과 풍미가 있는 빵이 대중적이고 유명한 프렌차이즈 빵보다 더욱 사랑받는 이유 말이다. 수제차, 수제 소품, 수제 간식 등 다소 우툴두툴하고 삐뚤빼뚤하지만 만든 사람의 철학, 정성, 고유함이 느껴지는 것은 값으로 매기기 어려운 '귀함'이 있다. 그래서 '감동'도 있는 것이겠고.
AI의 제안에 따라 계속 움직이면서 나는 나의 글이 가졌던 고유한 색깔, 나라는 사람의 고유함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일까?' 스스로 되묻게 되었다. 논리성을 강조하는 글이라면 비문과 논리에 문제가 없어야겠지만,
자신의 삶을 통한 잔잔한 감동을 전하는 것이 목적인 에세이라면 어떨까. 의미가 크게 손상되지 않는다면 글쓴이만의 문체, 색감, 개성이 잘 드러나는 글이 더 좋지 않을까.
똑똑한 AI를 잘 다루기 위해 '실수하고, 상처받고, 흔들리는' 인간이 할 일은 무엇일까. '나'의 고유함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 AI의 제안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지키고 싶은 고유함을 살리면서 수정할 부분을 취사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는 AI가 윤문해 준 글이 아니라 내 고유한 글로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었다.
예측하기 어렵지만 AI가 발달하면 할수록, 정확한 데이터에 기반한 일이 아니라면, 인간은 더욱 '인간적인 냄새가 폴폴 나는 그런 것에 더 끌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