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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15 14:10최종 업데이트 26.02.15 14:10

30년 '명절의 관성'을 멈추고 나서야 보인 것들

고향길 대신 찾은 도심 시장... 아내에게 내민 소박한 '봄동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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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위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

설 연휴가 시작됐다. 30년 넘게 나를 지배했던 '명절의 공식'이 올해는 깨졌다. 내 고향은 경남 밀양이다. 대학 시절부터 결혼 후까지, 고속도로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하는 '눈치게임'의 참여자가 되기를 자처하며 단 한 번도 귀향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고향가는 열차표를 사기 위해 자정부터 기차역 노숙을 마다치 않던 그 시절, 솔직히 고백하자면 부모님과 형제를 만나는 즐거움보다 귀향의 관성이 몰고 온 고통이 더 컸다. 하지만 "명절에는 고향에 가야 한다"는 그 압도적인 당위를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족은 김해 진영으로 모였다. 어머니와 형제들이 새로운 터에 옹기종기 모여 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머니의 기억이 조금씩 말라가면서 풍경이 변했다.

형제들은 돌아가며 치매가 깊어진 어머니의 건강을 챙긴다. 서울에 있는 나는 방학 때면 일주일씩 휴가를 내고 어머니 곁을 지킨다. 얼마 전 어머니를 다시 찾았다. 학교 일과 딸아이 결혼 준비로 이번 설에는 내려오지 못한다는 내 말에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셨다. 어머니는 사라져가는 기억의 끝자락에서 자식들의 온기를 붙들고 계셨던 게 아닐까.

결혼 31주년, 도심 시장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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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며칠 앞두고 결혼 31주년이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신학기 준비를 위해 선생님들과 1박 2일 워크숍을 떠나야 했다. 가족보다 학교가 먼저였던 34년 차 교사 남편에게 아내는 서운한 기색을 문자에 담아 보냈다. 출가와 결혼을 앞두고 두 딸까지 분가한 터라 집안의 적막은 더 깊었을 터다.

미안한 마음에 아내와 지척에 사는 둘째 딸을 데리고 안양 관양시장으로 향했다. 예전 살던 동네의 전통시장이다. 텅 비어있던 평소와 달리 시장은 활기가 넘쳤다. 예비 사위들에게 먹일 식재료를 고르는 아내의 손길이 분주했다. 순간, 생전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스쳤다. 명절 전에 얄팍한 지갑을 털어 사위와 손녀가 먹을 음식을 정성스레 장만하셨던 장면.

관양시장 설 명절을 앞두고 활기가 넘치는 안양 관양시장 전경. 식재료를 고르는 손길들로 분주하다
관양시장설 명절을 앞두고 활기가 넘치는 안양 관양시장 전경. 식재료를 고르는 손길들로 분주하다 ⓒ 오성훈

상인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어떤 가게에는 긴 줄이 생기는 생경한 모습도 보였다. 정당의 상징색을 입은 정치인이 상인들과 어묵을 나눠 먹는다. 짐짓 살가운 그 모습조차 명절의 생동감으로 읽혔다. 낯선 정치인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자고 제안한 것은, 아마도 그 활기찬 민심의 한복판에 나 또한 온전히 속해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5천 원짜리 목욕탕과 짜장면의 기억

아내와 딸을 먼저 집으로 보내고 홀로 시장 귀퉁이의 허름한 목욕탕을 찾았다. 어르신 5천 원, 일반인 7천 원. 세월의 때가 묻은 그곳에는 명절을 앞두고 몸을 씻으러 온 이들로 가득했다. 그곳을 지키는 이는 중국동포 세신사다. 그는 나를 단골고객으로 따뜻하게 반겨준다. 매번 명절을 앞두고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내게 툭 털어놓던 그였다. 고향이 얼마나 그리울까. 설 명절 행복하게 보내시라 인사를 건넸다. 그 짧은 말이 깊은 향수를 다 달래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가 이 낯선 도시에서 최소한의 온기라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아버지 손을 잡고 부곡하와이에서 일 년치 묵은 때를 씻어내고 먹었던 그 짜장면 한 그릇. 그때의 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으셨을 텐데, 아버지가 느꼈을 고단함과 안도감을 이제야 오롯이 이해할 것 같았다.

시장 골목에서 소박한 설빔 몇 가지를 사 들고 버스에 올랐다. 고속도로 위의 정체는 피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밀양의 흙냄새와 어머니의 눈물, 아버지와 먹었던 짜장면,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정이 맴돈다.

시장에서 사 온 튼실한 봄동을 씻어 식초를 듬뿍 넣은 양념장을 만들었다.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 위에 무친 봄동을 올리고 계란 프라이 하나를 얹어 아내에게 내밀었다. 31년 차 남편이 차린 소박한 화해의 식탁이다. 아내의 서운함도, 나의 미안함도 고추가루와 함께 비벼졌다. 아내는 말없이 그 한 그릇을 비워냈다. 그제야 나는 마음속 정체를 뚫고 비로소 집으로 귀가한 기분이 들었다.

봄동비빔밥 미안함과 고마움을 식초향 가득한 양념장에 슥슥 비벼낸 '화해의 식탁'. 31주년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못한 남편이 아내에게 건넨 소박한 진심이다
봄동비빔밥미안함과 고마움을 식초향 가득한 양념장에 슥슥 비벼낸 '화해의 식탁'. 31주년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못한 남편이 아내에게 건넨 소박한 진심이다 ⓒ 오성훈

어떻게 살 것인가?

교사로, 공모 교장으로 살아가는 삶은 늘 분주했다. '선취업 후진학'이라는 구호 아래 아이들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정작 내 가족과 내 고향의 시간은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번 설은 고향으로 향하는 물리적 이동 대신, 내 곁의 사람들과 일상을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택했다. 33년의 교육 경력이 가르쳐준 것은 결국 '사람'이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마음을 읽고, 시장에서는 이웃의 삶을 읽으며, 집에서는 아내의 서운함을 읽어내는 것. 그것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나만의 답이다.

도심의 목욕탕에서 씻어낸 것은 몸의 때만이 아니라, 어쩌면 '당위'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옭아맸던 낡은 관념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올해 두 딸이 모두 시집을 가고 나면, 이제 집에는 아내와 나만 남는다. 매일 늦은 퇴근으로 아내를 외롭게 만들던 나의 나쁜 관성도 함께 씻어냈다.

나의 장인이 나에게 주셨던 사랑을 생각해본다. 두 사위가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따뜻한 장인이 되고 싶다.

우리 설날, 다들 안녕하신지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사 채택 후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설명절#관양시장#봄동비빔밥#어떻게살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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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봇고등학교 교장. 『되풀이되는 비극, 따개비 현장실습』, 『디지털 대전환 시대 직업계고 미래는』 등 직업계고 학생들의 삶과 미래를 응원하는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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