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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마지막 날까지 아들은 출근했다. 달력 위에 빨간 숫자가 무색하게 매일 집을 나선 셈이다. 하필 연휴 다음 날인 19일부터 평가가 있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했다. 마음 한편이 짠해서 "어쩌면 저리도 융통성이 없을까?" 눈을 흘겼다. 하지만 평생을 책임감 하나로 우직하게 직장 생활을 마친 부모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누구를 탓하랴. 책임감을 양쪽 어깨에 짊어진 내 아들의 직업은 6년차 공무원이다.

나라 위한 일도 중요하지만

 2026년 청와대 시무식 장면.
2026년 청와대 시무식 장면. ⓒ 청와대

올해 초, 청와대 시무식 뉴스에서 본 대통령의 말 한 마디가 내 가슴에 와서 콕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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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는 퇴근 시간이 없다."

물론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를 강조한 뜻인 줄은 알지만 울컥한 심정이 들었다. 필요 이상의 일 중독으로 하루를 버겁게 버티는 아들한테 절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기에. 매일 밤 퀭한 눈으로 들어오는 아들한테 '무한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평일에도 퇴근이 늦어 여자친구라도 생겼나, 넌지시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똑같다.

"야간 근무했어요."

주말에도 일이 못 미더운지 사무실로 출근하는 아들에게 다시 묻는다.

"정말로 여자친구 생긴 거 아니야?"

아들은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주말에 밀린 업무를 조금이라도 해두어야 다음 주에 겨우 숨통이 트여요, 엄마."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는 순간, 아들을 맞이하는 건 밤새 수북하게 쌓인 공문들이다. 업무 시작하자마자 민원인을 상대하느라 숨 돌릴 틈이 없다. 점심시간도 넉넉히 누리지 못한 채, 오후 업무에 빠져들다 보면 시계는 어느덧 여섯 시를 가리킨다.

공무원 세계의 여섯 시란 절대 퇴근을 알리는 종소리가 아니다. 민원인이 떠난 자리에 남긴 서류 더미가 '진짜 업무'의 시작을 알려 준다. 물론 맡은 직책이나 역할에 따라 일의 경중이야 다르겠지만 처지는 거의 비슷하리라 본다. 각종 보고서와 씨름하는 동안, 가족과 함께할 따뜻한 저녁 시간은 공중분해 된다.

공무원의 자살이나 퇴사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뜨끔해진다. 내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요즘 공무원들은 참 힘들다. 이런 고충을 말하면 시쳇말로 '누가 칼 들고 협박했나?(누칼협)'이라는 냉소적인 댓글이 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행정 시스템이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다. 자고 나면 새로운 정책이 탄생하고, SNS 발달로 민원인의 요구사항도 세밀해져 공무원의 어깨는 날로 짓눌린다.

내가 활동하는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에도 공무원의 고충을 설파하는 젊은 작가들이 많다. 그들이 쓴 공무원 사회의 생생한 모습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내 아들이 쓴 글인가 싶을 정도로 공감이 간다.

공무원은 출퇴근 시간이 정확한 직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건 큰 오해다. 그건 밖에서 보이는 환상일 뿐이라고 나는 꼭 알려주고 싶다. '안정'이라는 달콤한 꼬리표 뒤에 막중한 업무량과 책임감, 박봉이라는 큰 경제적인 문제가 숨어 있다.

아들이 퇴근하여 저녁을 함께한 횟수를 세어보면 일주일에 한 번도 어렵다. 우리나라 사람의 가족 동반 저녁 식사 횟수는 주당 평균 1.6회라고 알려져 있다. G20 국가 중 혼밥 빈도가 가장 높다는 것도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나라를 위해 경제의 효율성을 따지고, 속도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의 행복'이라는 기본 가치도 소중하다.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라도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을 권장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연휴 마지막 날, 퇴근 하지 않은 아들

 청와대는 4일 이재명 대통령이 사회 각계각층에 전달한 설 선물을 공개했다. 내용은 '5극 3특' 권역의 특색을 반영한 집밥 재료와 그릇·수저 세트이다. 2026.2.4 [청와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청와대는 4일 이재명 대통령이 사회 각계각층에 전달한 설 선물을 공개했다. 내용은 '5극 3특' 권역의 특색을 반영한 집밥 재료와 그릇·수저 세트이다. 2026.2.4 [청와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연합뉴스

올해 대통령실에서 사회 각계각층에 보낼 설 선물을 마련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이번 선물은 '밥그릇과 수저 세트'였다. 사진으로 보는 선물 상자 속에는 그릇 한 벌과 수저 세트, 각 지방에서 나온 갖가지 농산물이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비록 내 손에 들어올 선물은 아닐지라도 그 따뜻함은 국민의 한 사람인 내게도 배달된 느낌이 들었다.

선물에 담긴 의미와 메시지를 곰곰이 새겨보았다.

'편안한 집밥이 일상이 되고, 소박하지만 따뜻한 한 끼가 국민 모두의 삶에 평온과 위로가 되길 바란다.'

행정 시스템의 가장 낮은 자리, '말단 공무원'에게는 정작 편안한 집밥이 일상이 될 수 없다. 공직자의 무한 헌신을 강조하는 대통령의 말도, 국민의 평안한 일상을 비는 그 선물도 모두 귀하다. 하지만 말단 공무원 아들을 둔 엄마의 가슴은 안쓰럽다. 국가가 보내주는 그 '따뜻한 한 끼'에 왜 내 자식의 자리는 비어 있는지 안타깝다.

연휴 마지막 날, 어스름 노을빛이 거실에 내려앉는 지금까지도 아들은 퇴근하지 않았다. 아마 배달 음식으로 저녁을 뚝딱 해결하고, 평가를 위한 준비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소망한다. 대통령의 선물 상자에 담겼던 그 다정한 메시지가, 행정 시스템을 돌리느라 정작 식탁 앞에 앉지 못하는 이 땅의 모든 '말단 공무원'들에게도 골고루 와 닿을 수 있기를. 지금은 텅 빈 아들의 자리지만 언젠가 함께 웃음으로 채워질 시간을 꼭 마련해 주기를.

나는 아들을 기다리며 다시 한번 대통령의 선물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본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따뜻한 밥상을 함께 나누길 바랍니다.'

#공무원#퇴근시간#저녁밥#집밥#대통령의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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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참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며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흐뭇한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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