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어르신이 갑작스럽게 요양원으로 가셨다. 본인의 자율적인 의사로 결정한 것이 아니니 '끌려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어르신의 깊어지는 치매 증세에 더 이상 혼자 사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자녀들의 결정이었다.
이럴 때 사회복지사로서 나는 심경이 복잡하다. 열악한 환경에서 홀로 삶을 유지하는게 힘든 어르신한테는 차라리 잘 된 결정이라고 자위하다가도, 동의없이 어르신을 요양원으로 옮기는 상황에 동조했다는 죄책감도 느낀다. 결국 마지막 인사를 못했다. 어디로 가시든지 평안하게 잘 사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후유증은 어르신한테도 나에게도 꽤 오래 남을 듯하다.
주간보호센터에 오신 어르신들께 'A어르신이 어제 한 요양원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자녀 집 근처를 물색하다보니 수도권으로 가실 수밖에 없었다고. 어르신들은 고개를 끄덕이실 뿐 별 말씀은 없으셨다. 담담한 듯 보이나 'good news'보다는 'bad news'에 가까운 이야기를 듣고 기분 좋을 리 만무하다. 한 분이 살짝 다가와 귓속말로 이야기하셨다. "나도 언젠가는 가게 되겠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겠어. 이해는 해. 그래도 낯선 곳으로 가기는 싫어. 여기서 마지막까지 살고 싶어. 그러니 요양원을 지어. 여기 노인들 떠나지 않아도 되게."
농촌의 면 단위 시골 마을에서 어르신의 당부와 바람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나 피하고 싶지만 결국은 오고야 마는 예고된 결말을 바꾸기 위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하고 건강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이 깊어지는 요즘이다.
'사회적 관점'에서 건강을 바라보자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라는 좁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심신의 안녕과 행복(wellbeing)이라고 정의한다면 생물학적 요인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사회적 요인에 주목해야 한다. 예컨대, 도시에 비해 의료와 돌봄이 적절하고도 충분하게 제공되지 못하는 농촌에 거주하는 어르신이 소원하는대로 '사는 곳'에서 평화롭게 인생을 마칠 확률은 높지 않다. 고령화, 과소화 되어 시간이 갈수록 열악한 거주 환경에서 고립되는 처지에 놓인 노인들의 상황은 도시에 비해 매우 불리하다.

▲<건강할 권리> 표지. ⓒ 후마니타스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적 요인의 격차는 '건강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김창엽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은 책 <건강할 권리>(2013년 6월 출간)에서 "건강을 위협하는 사회적 요인에 대처하는 기반은 매우 허술하다"며 "사회적 결정 요인이라는 새로운 틀로 건강 문제를 들여다 봐야 한다"(22쪽)고 지적했다.
이 책은 보편적 인권의 하나로서 '건강권' 확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단순히 보건의료에 접근할 권리를 넘어 빈곤, 노동, 지역, 주거 등 건강과 관련된 사회적 요인을 결정하는데 참여함으로써 '건강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체적으로 어떤 병이 더 생기고 건강이 얼마나 나빠지는가보다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 있다. 경제 위기의 건강 효과가 사람을 차별한다는 사실이다. 어린이, 노인, 이미 질병을 가진 사람, 실직자 등 이른바 취약 집단이 주로 피해를 입는다. 그 결과, 건강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이 경제 위기의 두드러진 효과다."(73쪽)
지역 격차도 같은 맥락이다. 비수도권 지방에서는 분만 실적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산부인과가 폐쇄되는 등 분만 취약지로 분류된 지역이 100곳이 넘는다(보건복지부 발표 2025년도 분만취약지는 A등급 29개 지역, B등급 22개 지역, C등급 57개 지역이다).
실제로 산부인과가 없어서 병원 도착 전에 구급차 안에서 분만하거나 과다출혈로 위험한 상태에 놓이는 경우도 있다. 소아과 전문의가 없어서 응급실 야간 진료는 아예 불가능한 지역도 많고, 낮에도 소아과 진료를 받기 위해 '오픈런'을 불사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영국 사회주의의사협회 회장을 역임한 의사 튜더 하트는 '의료 제공 반비례 법칙'(inverse-care law)이 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은 건강한 지역에는 의사나 병원이 많고,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아서 의료가 더 필요한 곳에는 의사와 병원이 적은 불평등한 현실을 꼬집은 말이다. 이는 '자본주의와 시장 법칙에 충실한 보건 의료 체계'(78쪽)가 만든 필연적인 결과다.
'로제토 효과'와 지역사회통합돌봄
'사는 곳'이 건강해야 내 삶도 건강할 수 있다. 이 단순한 진리가 통하지 않는 현실을 바로 잡고, 어디에 살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 '지역사회통합돌봄'의 취지이다. 저자는 '로제토 효과(Roseto Effect)'에 대해 설명하며 건강한 삶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지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1950년대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작은 마을 '로제토'의 심장병 사망률과 노인의 사망률이 미국 평균보다 훨씬 낮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 의학계가 연구가 집중되었고 예기치 못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답은 '공동체'였다.
"원인은 의학의 범위를 넘어서는 사회 그 자체였고, 상호존중과 협동을 기초로 하는 공동체가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덕분에 미국에서는 공동체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되었으며, 사회적 연결망과 사회적 지지, 그리고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다. 사회적 연결망과 응집력 그리고 사회자본이 건강을 설명한다면, 지역의 효과는 건강에만 나타날 리 없다.
사람들의 생활은 지역사회를 매개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로제토 효과는 건강에만 그치지 않았다. 연구가 진행되던 당시에 이 지역의 범죄율은 0이었고 공공부조를 신청한 사람도 전무했다. 대학진학률은 경제 수준이 비슷한 다른 지역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았다. 이런 결과가 가리키는 것은 명확하다. 로제토 효과가 건강 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영역에 걸친 통합적 효과라는 것이다."(297쪽)
비슷한 연구는 국내에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1년에 발표한 <노인 건강결정요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거주하는 지역사회의 물리적, 사회적, 정책적 요인이 노인의 신체적 건강과 우울, 인지장애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매우 중요하다.
지역 주민과의 신뢰와 지지, 연대와 같은 사회적 자본은 심리적 안정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지역 내 서비스 자원 접근성을 높여 건강을 증진하는데 기여한다. 사회적 자본은 의료서비스 이용과 접근성, 물리적 자원 관리 능력, 지역사회 돌봄, 심리 상태 및 스트레스, 인지 장애 등과 유의미하고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생애주기별로 필요한 의료-돌봄이 적절하고도 충분하게 제공되는 사회가 된다면 '딴 곳에 가서 죽어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불안감은 사라질 것이다. 지역사회 안에서 생애말기까지 '돌보는 재택 의료'가 확립되어야 한다. 차별없이 존엄하게 삶을 지속한 결과로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마을이어야 개개인의 '건강할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3월부터 전면 시행되는 '지역사회통합돌봄'의 취지이기도 하다.
'사는 곳'이 건강을 결정하는 시대이다. 지역사회통합돌봄은 지역사회 안에서 존엄한 자립 생활이 가능하도록 대한민국 의료-돌봄의 체계를 개편하는 것이며, 지역공동체를 회복하고 주민들이 호혜적 상호관계망 속에서 공생하는 마을을 만드는 일이다.
모두의 'good goodbye'를 위해
저자는 "'지역 보건'의 '지역'을 좁게 해석한 지리적 공간을 넘어 다양한 공동체(직장, 학교, 종교, 모임, 사회단체 등)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303쪽)고 설명한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해지면서 한국 보건의료분야에서 '지역'이라는 토대는 지속적으로 해체되어 왔다. 한국사회에서 '지역 보건'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다. 농촌지역만 하더라도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진료소라는 공적 보건의료는 축소되거나 형해화 되었고, 그 마저도 사라지는 추세다. 이 구조적인 불평등을 바로잡아야 할 시간이다.
'건강한 지역 만들기'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정치사회적 과제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건강 불평등과 부정의에 속해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지역기반의 비전과 전망을 세워야 한다. 동시에 공공성의 약화와 민영화, 시장화의 확산으로 야기되는 문제들에도 지속적으로 맞서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쉽게 낙관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어쩌면 저자 스스로 밝혔듯이 '비관주의자'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는 "크든 작든 변화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343쪽)고 강조한다. '기초부터 변화의 토대를 만들어야 일상적 변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상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요청이다. 더구나 궁극적인 비전의 틀 속에서 일상을 실천하는 것은 더욱 소중하다. 어렵지만 감당해야 할 일이다. 실천의 내용은 건강 불평등과 건강 정의, 공공성, 민주적 참여를 중심으로 건강 레짐의 모든 요소를 아우른다."(344쪽)
"삶의 터전에서 구체적인 맥락과 조건에 맞는 실천을 만들어 내자"는 저자의 제안에 많은 사람들이, 많은 공동체가 호응하길 바란다. '건강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에서 마지막까지 존엄하게 살고 싶다는 어르신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모두의 'good goodbye'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