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로 인생 2막을 연 황용우 기타리스르 ⓒ 이민선
'미치도록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을까?'
누구나 한번 꿈꿀 법한 일이다. 그러나 산다는 게 맘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우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결국 상황과 처지에 맞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삶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도 말이다.
'황선생 기타교실'(
https://www.ezguitar.net/interres/main.asp)을 운영하는 기타리스트 황용우. 어쩌면 그는 평범한 이들의 삶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지난달 25일 경기도 용인으로 향했다. 기타 강습 사이트 하나로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기타를 메고 카페 문을 열어준 그는 영상을 통해 보던 모습보다 젊고 갸름한 외모였다. 5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해 보였다. '실물이 훨씬 잘 생겼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 말을 던지자 "그렇게 꼭 써달라"고 '쿨 하게' 받아줬다.
황선생 기타교실은 온라인 기타 강좌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친절하고 쉬운 설명으로 유명한 사이트다. 'EZ Guitar'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유다. 그는 "가장 쉽고 정확하게 가르치는 서비스로 인정받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황선생 기타교실은 지난 1998년 6월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악보와 간단한 그림, 글로 된 설명을 통해 강좌를 진행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 강의라는 게 신선했던 터라 방문자 수는 금세 늘었다. 연주 영상을 요청하는 이가 있어 실제로 연주 영상을 올렸더니 방문자 수가 더 늘었다. 접속자가 한꺼번에 몰릴 때는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가 발생할 정도였다.
그래서 대안으로 '오늘부터 기타'라는 부제를 붙인 유튜브 채널 '황선생 기타교실'을 개설했다. 현재 동영상 4천4백 개, 구독자 20만 명이 넘는 탄탄한 채널로 성장해 있다.
그의 주 수입원은 황선생 기타교실에서 판매하는 악보와 유튜브 광고 수익 등이다. "먹고 살 만한가요?"라고 돌직구를 날렸는데, 차분하고 진지한 대답이 돌아왔다.
"수입이 들쭉날쭉하긴 한데 평균적으로 보면 내 나이 때 직장인들 평균 임금은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몸 편하고 마음 편한 장점이 있어 만족할 만합니다. 큰 수익을 바라고 무리하게 일하는 그런 성향이 아니다 보니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합니다."
자신 있게 사표 던질 수 있던 이유
인터넷 기타 강의가 그의 전업이 된 것은 지난 2006년, 30대 후반 정도 나이였다. 어느 날 갑자기 인터넷 기타 강의로 돈을 벌어야겠다, 또는 직업을 바꿔야겠다 결심하고 회사에 사표를 낸 건 아니었다. 회사 생활에 지쳐서 더 하면 죽을 것 같다는 위기감을 느껴 직업을 바꾼 건 더더욱 아니다.
굳이 특별한 계기를 찾는다면, 회사 생활을 하면서 취미 삼아 만든 인터넷 홈페이지가 뜻하지 않게 잘 됐다는 것 정도다. 홈페이지 수입이 월급을 넘어서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퇴사하기 전 3~4년. 그때가 제 인생에서 돈벌이가 한창 좋았던 그런 시기였어요. 월급도 받고 홈페이지 수입도 짭짤했고. 그래서 자신 있게 사표를 던질 수 있었던 거죠. 물론 제 인생의 취미인 기타로 먹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회사 일이 못 견딜 정도로 힘이 든 건 아니었지만 몸이 피곤한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 하루 3시간 이상 걸리는 출퇴근 시간이 문제였다. 새벽에 일어나서 바쁘게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하는 일상이라 늘 피로에 찌들어 살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의 눈은 늘 충혈돼 있었다.
그는 "길바닥에 하루 3시간 이상 깔아야 하는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홈페이지에서 어느 정도 먹고살 금액도 나오니까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던 거죠"라고 기타로 제2의 인생을 연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피로에 찌들어 산 1막 역시 소중한 경험이라고, 무척 긍정적으로 회상했다.
"제가 대학(화학공학과)을 졸업하고 취업했던 때가 IMF로 온 나라가 어수선했던 그런 시기였어요. 급작스러운 회사의 부도로, 큰 꿈을 가지고 입사했던 첫 직장을 신입 사원 티를 벗기도 전에 그만둬야 했어요. 어렵사리 이직에 성공해서 10년 정도 회사 생활을 했습니다. 주 5일 제가 정착하기 전이라 늘 피로에 절어서 살아야 했어요.
하지만 회사 생활이 헛되다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일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을 회사 생활하면서 배웠으니까요. 영상과 악보에 들어가는 코드 그림을 설계 프로그램인 CAD로 만드는데, 회사에서 배운 거예요. 대학에서는 배운 적이 없습니다."
회사 그만두자마자... 몸이 먼저 변했다

▲유튜브 '황선생 기타교실'의 황용우 기타리스트 ⓒ 황선생기타교실
회사를 그만두고 기타로 인생 2막을 연 뒤, 우선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늘 벌겋게 충혈됐던 흰자위 핏기가 사라지고 어린아이 같은 맑은 눈빛으로 변했다. 일하고 싶을 때 집중해서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자유롭게 쉴 수 있어 몸과 마음 모두 편안해진 덕분이다.
"회사 일이나 지금 제가 하는 일 모두 제 만족보다는 상사, 또는 고객이 만족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이 있어요. 출퇴근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건 차이점이고요. 작곡가가 심어놓은 여러 가지 포인트 중에서 기타를 배우는 사람들이 재밌어할 만한 포인트를 선정해서 악보를 만들고 영상 강좌를 제작하는데, 그 과정이 매번 흥미롭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단점요? 개인사업자다 보니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이 없어서 장기적인 경제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는 것 정도."
어린 시절 그의 꿈은 기타리스트가 아닌 과학자였다. 화학공학과를 선택한 이유다. 기타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기숙사. 이때 대학 가서 기타를 제대로 배우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음악 동아리에 가입해 대학 생활 대부분을 기타와 함께하게 된다. 기타와 함께하는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한때 창작자의 길을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작사, 작곡, 편곡 공부도 한동안 열심히 했다. 하지만 그는 그 꿈을 과감하게 접었다. 이유를 듣고 보니 그는 메타인지 지수가 굉장히 높은 사람이었다.
"이적, 김동률 (카니발) 이런 분들이 만든 노래를 들으면서 작곡자의 길을 포기하게 됐어요. 저와 비슷한 나이대였는데 들어보니 감동 포인트를 짚어 주는 능력이 정말 뛰어난 거예요. 충격적이었죠. 저는 스스로 흔한 느낌의 가요를 만들 정도의 수준일 뿐이지 정말 뛰어난 음악성으로 듣는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정도의 자질은 없다고 판단했어요."
무언가를 잘하고 싶다면? 나 자신을 알라
음악인으로 살기 위해 그가 선택한 길은 창작자도, 무대에서 노래하는 가수도 아닌 기타 선생님이다. 인터넷 시대에 맞춰 인터넷 강의실을 만들어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열었다. 간혹 오프라인 강의도 하지만 그의 주 종목은 인터넷 강의와 악보 판매다.
악보는 노래를 듣고 직접 쓴다. 그는 '악보를 쓴다'가 아닌 '그린다'로 표현했다. 갈고 닦은 음악 실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그의 악보는 기타를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질이 높고 연주하는 데 필요한 내용이 잘 포함돼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느지막하게 기타를 배우는 기자 역시 그가 그린 '쉬운 악보' 도움을 받고 있다.
또한 그의 설명은 친절하다. 기타 연주에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 꼭 필요한 것만을 선별해서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만 설명한다. 이유를 물으니 "제게 기타를 배우는 분들은 대부분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라 답한 뒤 구체적인 설명을 이었다.
"모든 악기의 연주를 하나의 오선지에 동시에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원곡에 나오는 리듬이나 멜로디 중에서 취해야 할 부분과 버려야 할 부분을 과감하게 정리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간단한 포인트 하나 살짝 얹어주면 멋진 연주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어렵고 복잡하게 하는데도 듣는 사람이 괴로운 연주도 있습니다.
제게 기타를 배우는 분들은 대부분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어렵게 연주하기 보다는 한 두 개 정도 포인트를 살려주고 나머지 부분은 단순하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방향으로 악보를 그리고 있고, 강좌도 합니다."
내친김에 기타 잘 치는 비법(왕도)을 물었더니 "기초부터 차근차근 연습하는 게 중요하고 또 내 연주를 들어보면서 최대한 좋은 소리를 낼 수 있게 신경 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듣고 보니 왕도는 없고 기초부터 열심히 연습하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이라는 말이었다. 한 가지 귀에 쏙 들어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메타인지와 연관된 것이었다.
"비법을 물으면 김연아 선수를 많이 비유하는데요. 늦은 나이에 스케이트를 타서 김연아 선수만큼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것처럼 기타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죠. 쉰 정도에 배워서는 유명한 기타리스트가 하는 화려한 연주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빨리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기타 처음 배우는 분 대부분이 화려한 연주를 목표로 삼고 어려운 걸 배우려고 해요. 그러다가 지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요. 이것이 제가 쉬운 것부터 하라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멋지고 어려운 기술을 배우기보다는 쉬운 한 곡을 안정적으로 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성취감도 생기고 실력도 늘게 되죠."
"'나한테 반했지' 하는 태도가 중요"

▲황용우 기타리스트가 말하는 '리즈 시절' ⓒ 황용우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자신감이다. 그는 자기보다 나이 많은 제자 이야기를 사례로 들어 자신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했다. 그 제자를 보며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코로나19 기간에 기타를 배워 가족 면회도 안 되는 요양병원 어르신들을 위로해 줬고, 지금은 천 번의 버스킹을 목표로 음악 활동을 하는 분이 있어요. 요양병원에서 일하는 분이죠. 이 분은 탈(자신감)이 좋아요. 똑같은 연주를 해도 연주자가 관객과 눈을 맞추면서 '당신들 나한테 반했지' 하는 표정으로 하면 실제 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연주를 잘해도 고개 숙이고 혼자 뚱땅거리면 못 하는 것으로 비치고요. 기타 연주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 않나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인생에서 자신감만큼 중요한 게 또 무엇이겠나.
그는 인생 2막을 준비하거나 염두에 둔 이들에게 "자신의 취미를 직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 직장에 매여 사는 것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사람의 일자리를 AI가 대체한다는 말이 있지만 기타나 스포츠, 낚시, 미술 등 흔히 취미 활동이라 불리는 것들은 예외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메시지다.
그가 음악이라는 취미를 직업으로 발전시킨 바탕에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메타인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인생 2막을 열 때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