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4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2024 서울 하프마라톤 참가자들이 출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사 수정: 2026년 3월 10일 오전 9시 34분]
"봄이나 가을 주말 아침에는 (소음 때문에) 창문도 못 열어요."
서울 여의도공원 인근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아무개(33)씨는 마라톤 대회가 있는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발생하는 소음 탓에 창문을 열기도 어렵다고 호소했다. 여의도공원이 마라톤 출발지로 자주 지정되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서울 도심을 장악하는 마라톤 대회로 시민 불편이 커지고 있다. 마라톤 정보 사이트 '마라톤 온라인'에 따르면, 올 3월부터 5월까지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마라톤 대회는 모두 52건이다(8일 기준). 이 중 13건은 공원이나 한강, 하천변이 아닌 도심에서 개최된다.
특히 서울 중심부를 차지하는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출발하는 대회가 많다. 이 곳은 유동인구가 많고 거리가 좁다. 봄이 되면 수천 명에서 1만 명 가까이 참가하는 마라톤 대회가 거의 매주 열리면서 인근 주민들과 시민들이 소음과 교통체증 등으로 불편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마라톤 참가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국민생활체육조사'를 보면, '주로 참여하는 체육활동'을 묻는 문항에서 응답자의 7.7%가 '달리기(조깅, 마라톤 포함)'를 꼽았다. 전년 대비 2.9%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박씨는 러닝 열풍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지만, 생활권 안에서 반복적으로 열리는 대회에 피로감이 쌓인다고 토로했다. 그는 "운동이 유행하는 건 건전한 흐름이지만 인구가 밀집한 서울 도심에서 꼭 열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주말 출근이 잦은데, 도로가 통제되는 날에는 버스보다 걸어가는 게 더 빠를 때도 있다"고 말했다.
증가한 '도심 내 마라톤'은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도로 통제로 인한 교통 체증, 코스 주변 상인들의 불편 등 관련 민원 또한 증가세를 보인다. 서울특별시 120다산콜센터에 접수된 마라톤 관련 민원은 2021년 40건에서 2024년 434건으로 10배 넘게 늘었다.
광화문에 거주하는 고아무개(30)씨는 마라톤 및 러닝 행사 후 버려진 쓰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개를 키우는 고씨는 매일 동네를 산책하는데, "행사가 끝난 주말 오후에 산책 나가면 온통 지뢰밭"이라며 불만을 표했다. 이어 "버려진 초콜릿 포장지, 종이컵, 배번호 고정용 옷핀 등은 주민들에게 불쾌감을 준다"며 "마라톤이 자주 열리는 기간에는 일부러 다른 동네까지 산책하러 간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내놓은 '쉬엄쉬엄 모닝런',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시민 불편이 커지자 서울시는 러닝 수요를 분산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정기적으로 도로를 개방해 운동 공간을 제공하는 상설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특정 마라톤 대회에 인파가 몰리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말레이시아의 '카 프리 모닝'을 참고한 '쉬엄쉬엄 모닝런'은 오는 3월 14일과 22일, 29일 주말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두 시간 동안 시범 운영한다.
여의도 문화의마당에서 출발해 여의대로를 지나 마포대교까지 이어지는 약 5㎞ 구간을 원하는 만큼 순환해 달릴 수 있는 방식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쉬엄쉬엄 모닝런의 시행 목표는 자발적인 아침 운동 문화 확산"이라고 말했다. 특정 대회에 참가하지 않아도 시민들이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마라토너들 사이에서는 일반 도로에서 달리는 경험만으로는 '수요 분산'이라는 정책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9년 차 마라토너 한재혁(34)씨는 "(쉬엄쉬엄 모닝런은) 도로를 달릴 수 있다는 장점 외에는 큰 메리트가 없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공식 대회가 주는 긴장감과 완주 뒤의 성취감까지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는 의미다.
올봄 마라톤 출전을 계획 중인 김은지(28)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4년째 러닝을 즐겨온 김 씨는 "한 번쯤 공식 대회에 나가 개인 최고기록을 확인해 보고 싶은 로망이 있다"라고 말했다. 거리를 늘리고 기록을 단축하는 과정 자체가 동기부여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쉬엄쉬엄 모닝 런'은 장거리 코스를 완주해 공식 기록을 내는 마라톤과는 성격이 다르다.
또한 일요일 아침에도 서울 도심에는 일정 수준의 통행 수요가 존재한다. 특히 오전 6~8시는 대형 종교시설을 중심으로 이동이 집중되는 시간대다. 서울의 한 대형 교회 관계자는 "본당 좌석만 1만 석이 넘는다"라며 "예배 참석을 위해 이동이 가장 활발한 시간에 교회 인근 주요 도로가 통제될 경우, 교인들의 이동에 불편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쉬엄쉬엄 모닝런'의 집결지인 여의도 문화의마당에서 직선거리로 670m 떨어진 곳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곳은 한국 교회 중 가장 규모가 큰 교회로 꼽힌다.
장거리 이동에 참여 망설이는 이들도

▲쉬엄쉬엄 모닝런 코스 소개 이미지. ⓒ 서울시
시민들 사이에서는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만 20회 이상 마라톤에 참여한 임훈택(39)씨는 '쉬엄 쉬엄 모닝런'에는 참여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 차량 일부만 통제된 상태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참가 선수가 크게 다친 사례를 언급하며, 이번 행사 역시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 씨는 "한정된 도로 공간에서 자전거, 킥보드, 보행, 러닝이 동시에 이뤄지면 기록 측정을 목적으로 속도를 내는 러너들에게는 결코 안전한 환경이 될 수 없다"라고 전했다.
'접근성' 면에서도 격차가 뚜렷하다. 서울 외곽 지역 거주자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 이상 이동해야 여의도의 '쉬엄쉬엄 모닝런'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마라톤이 여의도뿐만 아니라 서울 전역에서 열리는 것에 비하면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김태욱(23)씨는 "운동하러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20분이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오전 7시 여의도공원에 도착하기 위해선 지하철과 버스로 최소 1시간 이상 이동해야 한다. 운동 시설 접근성은 참여도를 좌우하는 요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 국민생활체육조사'를 보면 자주 이용하는 체육시설을 선택한 이유로 '거리상 가까워서'라는 응답이 38.7%로 가장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