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달력의 숫자가 3월 1일을 지나 며칠이 더 흐르면, 거리의 태극기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둘 자취를 감춥니다. 하지만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정의여자고등학교의 시간은 조금 다르게 흐르는 듯합니다. 9일 현재
학교 본관 정중앙에는 107년 전 그날의 외침을 증명하듯, 거대한 태극기가 여전히 봄바람을 타고 힘차게 펄럭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학교의 행정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입니다.
사실 이 기사를 쓰는 지금은 이미 3.1절이 며칠 지난 시점입니다. '뒷북'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념일의 요란한 함성이 잦아든 뒤에도 홀로 꼿꼿이 자리를 지키는 저 태극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묵직했기 때문입니다. 저 큰 태극기 아래에는 단순히 국경일을 기념하는 것을 넘어, 한 인물의 처절하고도 고결한 '거부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정의여자고등학교 본관에 설치된 대형 태극기 ⓒ 김주환
1919년 3월, 평안북도 대동군에서 기독교 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청년 윤기안은 학생, 주민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습니다. 일제는 3.1운동을 주도한 그에게 가혹하면서도 달콤한 제안을 건넸습니다. "다시는 만세를 외치지 않겠다"는 딱 한 줄의 각서만 쓰면 당장 자유를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살기 위해, 혹은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동료들이 하나둘 붓을 들 때도 선생은 끝내 거부했습니다. 배움이 없어 독립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평안북도에서 서울 마포 형무소로 강제 이감되어 1년 6개월간 차가운 옥고를 치렀고, 출옥 후에도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 평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민족이 교육받지 못하면 독립은 외침으로 끝날 뿐."

▲윤기안선생 동상 ⓒ 김주환
선생은 분노를 깨달음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철창 너머를 바라보며 그는 결심했습니다. 지식이 없는 민족에게 독립은 일시적인 외침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결단은 수십 년이 흘러 선생이 70세가 되던 해에 비로소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교육에 내놓으며 정의유치원, 정의여중, 정의여고를 품은 '삼산학원'을 세웠습니다.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청년의 의지가 노인이 되어 '교육의 전당'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3.1절은 하루 뿐이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날짜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선생의 이야기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에서 현재진행형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봄바람에 펄럭이는 저 태극기를 보며 생각합니다. 기념일이 지났다고 해서 우리 마음속의 태극기까지 내려놓았던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때에 이 이야기를 기록에 남깁니다. 굴복하지 않는 마음이 어떻게 한 시대의 교육을 싹 틔웠는지, 저 펄럭이는 태극기가 여전히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