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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의 숫자가 3월 1일을 지나 며칠이 더 흐르면, 거리의 태극기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둘 자취를 감춥니다. 하지만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정의여자고등학교의 시간은 조금 다르게 흐르는 듯합니다. 9일 현재 학교 본관 정중앙에는 107년 전 그날의 외침을 증명하듯, 거대한 태극기가 여전히 봄바람을 타고 힘차게 펄럭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학교의 행정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입니다.

사실 이 기사를 쓰는 지금은 이미 3.1절이 며칠 지난 시점입니다. '뒷북'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념일의 요란한 함성이 잦아든 뒤에도 홀로 꼿꼿이 자리를 지키는 저 태극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묵직했기 때문입니다. 저 큰 태극기 아래에는 단순히 국경일을 기념하는 것을 넘어, 한 인물의 처절하고도 고결한 '거부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정의여자고등학교 본관에 설치된 대형 태극기
정의여자고등학교 본관에 설치된 대형 태극기 ⓒ 김주환

1919년 3월, 평안북도 대동군에서 기독교 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청년 윤기안은 학생, 주민들과 함께 거리로 나섰습니다. 일제는 3.1운동을 주도한 그에게 가혹하면서도 달콤한 제안을 건넸습니다. "다시는 만세를 외치지 않겠다"는 딱 한 줄의 각서만 쓰면 당장 자유를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살기 위해, 혹은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동료들이 하나둘 붓을 들 때도 선생은 끝내 거부했습니다. 배움이 없어 독립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평안북도에서 서울 마포 형무소로 강제 이감되어 1년 6개월간 차가운 옥고를 치렀고, 출옥 후에도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 평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민족이 교육받지 못하면 독립은 외침으로 끝날 뿐."

 윤기안선생 동상
윤기안선생 동상 ⓒ 김주환

선생은 분노를 깨달음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철창 너머를 바라보며 그는 결심했습니다. 지식이 없는 민족에게 독립은 일시적인 외침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결단은 수십 년이 흘러 선생이 70세가 되던 해에 비로소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교육에 내놓으며 정의유치원, 정의여중, 정의여고를 품은 '삼산학원'을 세웠습니다.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청년의 의지가 노인이 되어 '교육의 전당'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3.1절은 하루 뿐이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날짜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선생의 이야기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에서 현재진행형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봄바람에 펄럭이는 저 태극기를 보며 생각합니다. 기념일이 지났다고 해서 우리 마음속의 태극기까지 내려놓았던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때에 이 이야기를 기록에 남깁니다. 굴복하지 않는 마음이 어떻게 한 시대의 교육을 싹 틔웠는지, 저 펄럭이는 태극기가 여전히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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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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