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에서 학교에 방문을 하면 당연한 듯 물어 보는 질문이 있다.
"작은 학교라 학생들끼리 갈등이 많지요?"
갈등과 혐오가 일상이 된 시대이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을 받으면 동백작은학교 교사들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우리 학교에는 왜 그런 갈등이 잘 보이지 않을까?"
몇 해 전 상담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학교를 찾아온 적이 있다. 학교에서 상담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배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막상 설명하려니 난감했다. 특별한 상담 프로그램도, 전문 상담사가 상주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소년들의 하루를 돌아보니 이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만들어 가는 시간 속에 답이 있었다. 동백작은학교는 하루에도 몇번씩 원을 만든다. 눈을 뜨자마자 요가, 산책, 달리기 등으로 몸을 깨우고 둥근 원으로 둘러 앉아 매일매일 평화의 노래를 함께 부른다. 기계음이 아닌 학생들의 기타 반주에 공동체의 화음이 더해진다.

▲공동체의 둥근원에 답이 있었다 ⓒ 이임주
이어지는 아침 수다 시간에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하루의 일정을 나눈다. 그리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학생들이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 시작된다. 이름하여 '들어봅써'라는 제주표현으로 '들어보세요'라는 뜻이다.
바쁜 일정에 지친 날이면 생략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학생들은 이 시간만큼은 꼭 지키자고 말한다. '들어봅써'는 바쁜 일상 속에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다. 고마움, 미안함, 서운함, 그리고 마음에 남았던 이야기들을 서로에게 전한다.
"저는 다올이 언니에게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아까 제가 기분이 안 좋아서 다올이 언니가 말 걸었을 때 친절하게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저는 태리형에게 말하고 싶어요. 점심시간에 내가 심심하다고 하니까 밖에 나가서 야구할래? 라고 말해 줘서 고마워요."
"저는 다숲샘에게 이야기 하고 싶어요. 오늘 제 옆에서 제 고민 들어주고 상담해 줘서 많이 홀가분해 졌어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전하다 보면 매일 하는 시간인데도 학생들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서로의 진심이 공동체의 온기를 다시 데우는 순간이다. 물론 좋은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서운했던 마음도 솔직하게 전한다. 다만 서로를 비난하지 않는다.
공동체의 원은 서로의 눈과 눈을 마주보며 말이 목에 걸리지 않는 솔직하고 진실된 시간이다. AI와 소통하고 스마트 폰에 시선을 빼앗기며 내 옆에 누가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서로에게 관심이 사라지는 삭막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의 갈등과 혐오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동백작은학교에는 흔한 '뒷담화 문화'가 거의 없다.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는 방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건 틀렸어" 대신 "그럴 수도 있겠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 어쩌면 교육에서 적극적으로 실현해야 할 진짜 교육이 이것일지도 모른다.
연일 들려오는 학교 붕괴, 학교가 더이상 즐겁지 않은 청소년들의 삶, 이들을 부적응아라고 규정짓는 사회, 청소년들의 평화로운 일상은 과연 어디에서 사라진 것일까?
'들어봅써'는 정답도 없고 규칙도 없지만, 그저 원으로 둘러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진실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평화는 시작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교육 해법이 아닌, 내 옆을 둘러 볼 수 있는 어쩌면 당연했던 그 일상이 절실히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동백작은학교는 제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생태, 인권, 평화의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청소년 민주시민 교육 공동체이다. 제주 뿐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14세~19세의 청소년들이 함께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배우고 실천하며 따뜻한 공동체를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평등한 통합교육을 지향하고 있으며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배움이 즐거운 '학교를 넘어선 ' 배움의 공동체를 꿈꾸는 곳이다. 2021년 3월에 처음 문을 열었으며, 전국에서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 https://www.dongbaekscho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