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만경강에 대규모로 월동해 온 큰기러기와 쇠기러기 무리를 만났다. 봄이 성큼 다가온 듯하지만, 다시 찾아온 꽃샘추위 속에서도 기러기들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북쪽 번식지로 떠날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강 위에서는 집단으로 목욕하며 깃털을 손질하는 기러기들이 눈에 띈다. 물속에 몸을 담갔다가 힘차게 날개를 퍼덕이며 물기를 털어내고, 이어 부리로 깃털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고른다. 조류에게 깃털 관리는 일상적인 '세수' 그 이상이다. 깃털 사이에 공기층이 잘 형성되어야 체온을 유지할 수 있고, 비행 효율도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목욕중인 쇠기러기의 모습 ⓒ 이경호
기러기들이 꼬리 기부에 위치한 기름샘에서 나오는 유분을 부리에 묻혀 깃털에 고루 바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야 하는 철새들에게 방수와 방풍 기능을 갖춘 깃털 상태는 곧 생존과 직결된다. 이러한 행위를 프리닝(preening)이라 부른다.

▲목욕하는 큰기러기의 모습 ⓒ 이경호
먹이 활동도 쉴 틈이 없다. 강 주변 농경지와 습지를 오가며 풀뿌리, 씨앗, 그리고 논에 떨어진 낱알을 부지런히 삼킨다. 이 에너지는 긴 비행을 버티는 연료이자, 북극권 툰드라에 도착하자마자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울 소중한 자산이 된다.
큰기러기와 쇠기러기는 우리 곁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겨울 손님이다. 시베리아와 북극권 툰드라에서 번식하고 겨울을 나기 위해 동아시아로 내려오는 이들은, 매년 같은 장소를 다시 찾는 강한 회귀성을 가졌다. 특히 V자 대열로 하늘을 가르는 이들의 비행은 앞선 동료가 만들어낸 상승기류를 이용해 에너지를 절약하는 지혜로운 협력 비행이다.

▲이동을 준비하는 기러기떼 ⓒ 이경호
봄바람이 불수록 만경강의 기러기 무리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이미 마음은 고향 땅 북쪽 하늘을 향해 있을지 모른다. 떠나기 전까지 이곳은 그들에게 마지막 안식처다. 강 위에서 물방울을 흩날리며 몸을 터는 기러기들의 모습은, 수만 번의 날갯짓을 앞둔 비장한 출정식과도 같다.
만경강은 이제 다시 조용해질 것이다. 하지만 내년 겨울, 이 강을 기억하는 기러기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그들이 마음 놓고 내려앉을 논습지와 깨끗한 강물이 그대로 남아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수천 km 이동 전 마지막 준비 큰기러기와 쇠기러기
새와 사람의 이야기 / 새랑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