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6.03.20 12:02최종 업데이트 26.03.20 12:03

차이는 인정되고 권리는 보장되었는가

손인서의 <다민족 사회 대한민국>이 던지는 불편한 질문

 손인서의 <다민족 사회 대한민국> 책표지
손인서의 <다민족 사회 대한민국> 책표지 ⓒ 정병진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정부는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또는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여러 차례 지급하였다. 당시 광양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한 외국인 지인은 재난지원금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는 투자 비자로 입국해 20년 넘게 한국에 거주하며 소득세와 건강보험료 등 각종 세금을 납부하였다. 그럼에도 '전 국민'이라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같은 재난 상황에서 식당 운영을 중단해야 하는 등의 피해를 입었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

다행히 한 시의원이 이 같은 사실을 알고서, 이후 관련 조례를 개정해 사각지대에 있던 외국인들도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단적인 사례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들이 겪는 제도적 배제와 차별을 잘 보여준다.

AD
손인서의 <다민족 사회 대한민국>(2024년 12월 출간)은 한국이 '다문화 사회'를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다문화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문화주의의 핵심은 '동등한 권리 보장 위에서 문화 차이를 인정하는 것'인데도, 한국 사회는 권리의 평등 없이 차이의 공존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주민 정책은 다문화주의라기보다 '동화주의'에 가깝다. 말하자면 이주민을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하기보다 한국 사회에 적응·흡수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국제결혼 가족을 '다문화 가족'보다 '다민족 가족' 또는 '다인종 가족'으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이 책이 주목하는 또 하나의 개념은 '인종화(racialization)'이다. 이는 다수 집단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구분 짓는 과정이다. 그 결과 생겨난 구분이 '인종(race)', 이를 정당화하는 생각이 '인종주의(racism)'이다. 이는 단지 피부색 차이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가령 전문·비전문 인력을 나누는 한국의 이민정책은 백인 이주민에게는 '전문직' 이미지를, 동남아 출신 노동자에게는 열악한 노동환경을 자연스럽게 연결 짓게 만들고 인종주의적 편견과 차별의 관행을 낳게 한다. 저자는 이러한 구조는 존엄한 인격을 지닌 인간을 '인력'으로만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인종주의는 외국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화 <청년경찰>과 <범죄도시>가 묘사한 중국동포 거주지는 범죄 집단의 이미지로 쓰이고, 이는 실제 차별로 이어진다. 탈북민 역시 '동포도 난민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놓여 다양한 배제를 겪고 있다. 저자는 이들의 어려움이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인종이 '다른 존재'로 인식되는 데서 비롯된다고 본다.

이 책에 따르면 '이주민과의 공존'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종주의적 편견을 내려놓아야 한다. 문제는 문화 차이가 아니라, 이 땅의 이주민을 동등한 시민이 아닌 열등하거나 위험한 존재로 보는 시각과 제도에 있다. 정부와 내국인이 이주민들을 알고서든 아니든 하나의 인종으로 만들고 차별하는 '인종 기획(racial project)'을 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한편 다문화주의, 동화주의, 통합주의는 모두 이주민과의 '공존'을 지향하지만 그 방식은 서로 다르다. 다문화주의는 문화적 차이를 유지한 채 권리의 평등을 강조하고, 동화주의는 소수가 다수 문화에 적응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비해 통합주의는 공통의 사회 규범을 공유하면서도 문화적 차이를 일정 부분 인정하는 절충적 접근이다.

전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2010년 독일 집권당인 기독교민주연합 청년 조직 회의(포츠담) 연설에서 "다문화적 접근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독일 내 수백만 이민자, 특히 터키계 이주민들이 언어·교육·노동시장 참여 등에서 통합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불만과 문제 제기가 계속되자, 이민자들의 보다 적극적인 사회 적응 필요성을 강조한 발언이었다.

이처럼 어느 하나의 모델이 보편적 해답이 될 수는 없다. 각 사회의 역사와 규범, 현실을 반영하면서 갈등을 최소화하고 충실한 인권 보장이 가능한 균형점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

저자의 진단에 따르면 현재 한국은 여전히 동화주의적 경향이 강한 편이다. 그렇다면 이미 250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함께 살아가는 현실에서, 차이와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공공의 질서를 공유하는 방향의 '통합' 방향으로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러한 점에서 <다민족 사회 대한민국>은 불편하지만 반드시 마주해야 할 질문을 던지는 책이며,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거울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겨자씨신문에도 실립니다.


다민족 사회 대한민국 - 이주민, 차별, 인종주의

손인서 (지은이), 돌베개(2024)


#다문화#이주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수솔샘교회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