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D.C.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공화당 전국 하원위원회 연례 대통령 만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6.3.25 ⓒ AFP=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을 통해 미국과 이란이 적대 행위를 끝내기 위해 "매우 유익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며 이란의 발전소 및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을 5일간 유예한다고 밝혔다. 이란 외무부는 미국과 어떤 협상도 한 적이 없다며 즉각 부인했지만 이후 미국과 메시지가 오가는 상황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이제 세계의 이목은 며칠 내에 양국의 휴전 협상이 진행될 수 있을지에 집중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공격을 유예하고 협상 카드를 꺼낸 이유는 전쟁에서의 출구 전략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의 명분으로 꺼냈던 "임박한 위협"은 미국 정보기관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에 의해서도 부인됐다. 또 다른 명분이었던 이란의 정권 교체 또한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의 설득에 넘어가 전쟁을 시작했다는 의심은 거의 확신으로 바뀌었다.
전쟁의 명분이 부인당하고 있는 가운데 원유 가격 상승, 금융시장 불안, 물가 인상 압력 등으로 인한 미국 내 불만과 우방국들의 반발 및 따가운 시선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큰 부담이다. 이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건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지만 이란은 이를 미국에 대한 압력 카드로 적극 활용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사면초가를 넘어 자신의 정치적 생명 연장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출구 전략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흥미로운 건 트럼프 대통령 출구 전략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이란이라는 점이다. 공격 중단의 명분을 찾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풀기 위해서는 이란이 협상 제안에 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이란과 아무런 직접적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인데도 협상을 기정사실로 하고 심지어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선제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에 대한 이란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은 파키스탄을 통해 이란에 15개 항으로 된 제안을 전달했으나 상세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25일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기자 브리핑에서 언론을 통해 15개 항의 내용이 떠돌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며 기자들에게 섣부른 관측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생산적인 논의"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린 절대 당신 같은 사람들과 타협하지 않을 것"
백악관 대변인의 기자 브리핑 후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이란 국영 TV와 한 인터뷰에서 미국이 여러 중간자를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고 이란이 미국의 종전 제안을 검토 중인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우방국을 통한 메시지 교환이 미국-이란 간 대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의미하진 않는다며 현재 이란의 정책은 계속적인 "방어"고 "협상할 의도가 없다"라고 말했다.
아라그치 장관의 답변은 24일 나온 에브라힘 졸파가리 이란 합동군사령부 대변인의 말과 맥을 같이 한다. 그는 국영방송을 통해 공개된 영상에서 미국을 향해 "우린 절대 당신 같은 사람들과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내부적 분열로 인해 자신과 협상하는 지경에 이르렀냐?"라고 조롱하면서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이런 강경한 자세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공격에 대한 분노와 그로 인해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주장하는 강경파와 실세인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강경 방침이 미국과의 협상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군사력이 대폭 약화하고 정치·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이란으로서는 트럼프 대통령만큼 출구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란의 온건파와 강경파가 공감을 형성하는 한 가지가 미국과의 종전 협상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건 바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에 대한 깊은 불신이다.
이란은 미국과 핵협상을 진행하던 2025년 6월과 지난 2월 28일 두 차례나 미국의 공격을 받은 뼈아픈 경험이 있다. 심지어 2월 28일 공격은 3차 핵협상 결과에 대해 미국과 이란 그리고 중재국인 오만 모두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하고 며칠 후 있을 차기 회담까지 확인한 이틀 뒤 이뤄진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이란의 정권 교체를 목표로 한 전면전이었다. 이런 경험에 따라 미국에 대한 이란의 불신이 매우 높은데 트럼프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협상 진행을 언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동 배치 병력을 증강하면서 또 다른 불신을 만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24일 제82공수사단의 2,000명 규모 전투부대의 중동 파견 명령이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제안과 병력 증강의 양면 전략을 이란이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하고 동시에 이란에 협상 수용을 압박하는 현명한 접근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란은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단시간에 협상 성과를 보지 못하면 군사적 수단을 동원했던 행동을 반복할 가능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백악관 대변인의 발언 또한 이란의 불신이 전혀 근거가 없지 않음을 확인했다. 25일 기자 브리핑에서 레빗 대변인은 이란이 패배하고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협상 제안을 거부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옥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라며 이란을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고도의 협상 전략이라고 여기고 있는 압박과 회유 전술이 오히려 이란의 불신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고 이런 이유로 가까운 시일 내에 협상이 가능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는 곧 휴전 협상을 통한 트럼프 대통령의 출구 전략이 실패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다른 걸림돌, 미국이 제안한 15개 항

▲러시아산 원유를 실은 시에라리온 국적의 사라 스카이호가 바탄 주 리마이 항에 정박해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중동 전쟁으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한 지 며칠 만에 70만 배럴 이상의 러시아산 원유를 실은 선박이 필리핀에 도착했다고 소식통이 AFP에 전했다. 2026.3.26 ⓒ AFP=연합뉴스
이란을 협상장으로 불러내는 데 또 다른 걸림돌은 미국이 제안한 15개 항이다. 이와 관련해 <가디안>은 미국의 제안 대부분이 이미 작년에 미국이 제안하고 이란이 수용하지 않았던 내용의 "재탕"이고 그 후 협상을 통해 이뤄진 진전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는 미국이 협상에 진정성이 없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이 진행 중인 것처럼 보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현재 이란이 미국의 제안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듯하다. 15개 항에는 30일 휴전, 호르무즈 해협 개방, 이란의 중동지역 에너지 시설 공격 중단 등 새로운 내용도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이 미국의 제안에 부정적인 가운데 현재 협상 성패의 열쇠는 미국이 아니라 이란이 쥐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출구 전략 성패의 열쇠 또한 이란이 쥐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관심을 둬야 할 건 자신이 이란에 제안한 15개 항이 아니라 이란이 종전 조건으로 제시한 내용이다.
이란 국영 <프레스 TV>는 25일 "이란의 조건이 충족될 때 전쟁을 끝낼 수 있다"라는 "고위 정치-안보 관리"의 말을 보도했다. 해당 관리가 언급한 조건에는 이란에 대한 공격과 암살의 완전한 중단, 이란에 대한 전쟁 재개 방지 보장, 전쟁 피해 배상, 중동지역 저항 세력에 대한 공격 중단,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주권 인정과 보장 등이 포함됐다. 미국이 이런 조건들에 관심을 보여야 이란이 미국과의 협상에 나설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미국의 제안에 맞서 자국의 조건을 밝힘으로써 이란이 미국의 결정을 압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이란의 조건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회담은 성사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목할 건 첫 번째로 언급된 "공격과 암살의 중단"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출구 전략을 위해 휴전을 고민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이란 정권을 사실상 마비시키기 위해 전쟁 지속을 원하고 있고 이란 정부 및 군 인사 암살 의지 또한 표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란을 협상장으로 끌어내려면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설득하고 동의를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협상 구상에 대해 이스라엘은 부정적 반응을 넘어 반발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의 <채널 12>는 고위 당국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 당국이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주 토요일(28일) 갑자기 이란과의 휴전을 발표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이스라엘 고위 관리 등 여러 소식통을 인용해 네타냐후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전쟁 종식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이란이 우려해야 할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구상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발이고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통제 상실임을 말해준다. 이란은 설사 미국과 휴전에 합의한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이 휴전을 위반하며 계속 이란을 공격하고 정부 및 군 인사들을 암살할 가능성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헤즈볼라, 가자지구 하마스와의 휴전 협상을 반복적으로 어겼던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신뢰를 얻고 이란이 제시한 조건들에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이란을 협상장으로 불러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이스라엘을 설득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 휴전을 원하고 휴전이 지속되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을 설득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출구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