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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 담그기 미니어처 인형미니어처 코너를 꾸며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이끌어 냄 ⓒ 윤태정
"와, 선생님! 이 딱딱한 돌덩이에서 발고락 냄새가 나요!"
아이들이 신기한 듯 메주를 에워쌌다. 단단하고 못생긴 이 '돌덩이' 같은 게 맛있는 된장이 된다고? 좀체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일주일에 하루, 초등학교 5학년 시간 강사로 아이들을 만난다. 지난 20일,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 이날은 아주 특별한 수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장 담그기 체험 학습'이다. 교직에 오래 몸담았으나 아이들이 학교에서 장을 담그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활동 보조에 나선 내 마음도 아이들 만큼이나 설렜다.
'전통식문화 발효 학교'
과학실 TV 화면을 가득 메운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가슴에 '장류조리설계사'라는 이름표를 단 강사가 온화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 조상은 장 담그기를 1년 농사 만큼 중요하게 생각했답니다."
"장은 발효 음식이라 좋은 기운을 받아야 잘 익는데 오늘 날씨가 딱 좋네요."
장 담그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도중에 한 아이가 질문을 했다.
"선생님, 된장 항아리에 금줄은 왜 치는 건가요?"
"금줄은 나쁜 액운을 막아준다는 뜻이에요. 옛날에 아기가 태어나면 건강을 지키기 위해 금줄을 쳤던 것과 똑같아요. 집안의 보물인 된장을 귀하게 보호하려는 우리 조상의 마음이지요."
된장 항아리에 버선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귀신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옛날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정화와 살균 작용을 하는 숯의 쓰임새까지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몸에 좋은 발효 음식을 만든 선조들의 과학적인 지혜에 푹 빠져든 모양이었다.
소금물 농도 맞추기 위해 달걀을 넣는 이유
이론 수업이 끝나자 모두 앞치마에 수건을 쓰고, 위생 장갑까지 꼈다. 바깥에 나오니 장 담그기를 도와주실 학부모 자원봉사자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메주와 소금물, 고추와 대추, 숯이 한 줄로 이어져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커다란 대야에 소금을 녹이는 작업부터 이루어졌다. 소금물 농도가 중요한데, 달걀을 넣어 오백 원짜리 동전 크기만 하게 뜨면 적정 농도 18%가 되었다. 기계 대신 달걀로 농도를 맞추는 방식에 아이들은 연신 신기해 했다. 또 한쪽에서는 농도 측정기를 사용하여 정확히 18%를 확인해 보기도 했다.
단단하게 마른 메주를 직접 손으로 만져보는 코너로 이동했다. 아이들이 커다란 메주를 손에 들고 요리조리 살피면서 쿰쿰 냄새를 맡았다. 교실에서 하는 국어, 수학 시간보다 아이들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나 보였다. 곰팡이가 핀 겉면은 돌덩이처럼 딱딱했으나 안은 촉촉했다. 그때 강사가 재치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여러분, 요즘 유행하는 '겉바속촉'의 원조가 바로 우리 메주라는 걸 알고 있었나요?"
아이들은 재미있다는 듯 손가락으로 메주 속을 여기저기 쿡쿡 눌러보기 시작했다. 마지막 코너로 발걸음을 옮기니 메주와 소금물이 담길 커다란 항아리가 서 있었다. 아이들은 조심조심 메주를 항아리에 집어 넣었다. 소금물 그릇을 들어서 살그마니 붓고 그 위에 마른 홍고추와 숯, 대추를 띄웠다. 마지막 단계로 항아리 뚜껑을 덮은 뒤 둘레에 금줄을 쳤다. 자신들의 손길이 닿은 메주가 된장으로 변할 생각에 아이들의 표정은 뿌듯해 보였다.
소금물에 뜬 메주가 벌써 미생물과 함께 발효를 시작하는 듯했다. 이 상태로 잘 보관하면 된장과 소금물이 멋지게 섞일 것이다. 60여 일이 지나면 된장과 간장으로 나누는 '장 가르기' 시기가 온다. 아이들은 다시 '장 가르기 체험'이 있을 거라는 말을 듣자 환호를 질렀다.
"한 항아리에서 된장과 간장 두 가지 맛을 뽑아내는 기술은 우리나라만이 가지는 비법이랍니다."

▲된장 항아리의 금줄된장을 담그고 병균을 물리칠 수 있도록 항아리에 금줄을 쳐줌 ⓒ 윤태정
"우리의 고유한 맛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 음식에 대한 긍지가 싹텄기 때문일까. 오늘날 K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아이들의 표정이 유난히 밝아졌다. 미니어처 전시 코너에 빙 둘러선 아이들은 된장 만드는 순서를 다시 한번 익힐 수 있었다. 나는 현장을 누비는 김향숙 강사님께 몇 가지 질문을 드렸다.
- 처음 어떤 계기로 이런 교육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희는 약 5년 전, 서울 양천구청에서 모집한 '장류조리교육'에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되었습니다. 이후 스무 명 남짓이 심화 과정을 계속 밟아 지금은 강사로 활동하고 있지요. 양천구 보건소에서 장 담그기에 종사하는 우리에게 공간을 내준 게 이 교육의 시초였습니다."
- 어떤 마음으로 학교에서 교육을 진행하시나요?
"저희는 우리만의 고유한 맛을 반드시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라져 가는 우리의 전통 음식을 살려서 어린이들의 건강을 지키고 싶습니다."
학교를 순회하며 우리 전통 음식의 맥을 잇는다는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장 담그기협회'에서 이런 행사를 주최하는 목적은 하나다. 우리 선조의 지혜로움을 깨닫고 전통 음식의 소중함을 알리는 것. 이번 체험 학습으로 식생활 습관은 어릴 때부터 잡아주어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이 뜻 깊은 행정이 다른 지역에도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들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이동하는 중에 김 강사님의 마지막 말씀을 되새겼다.
"우리 고유의 음식을 살리는 체험 학습은 구에서만 진행할 게 아닙니다. 어린이들의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도 신경을 써주면 좋겠습니다."
이런 좋은 혜택이 모든 학교에 골고루 돌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람직할 것 같았다. 다가올 11월, 숙성된 된장 통과 간장 병을 손에 쥐고 "내가 직접 만든 거야!"라고 외칠 아이들의 환호성이 벌써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