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24년 9월, 우리를 애타게 했던 물떼새의 알
2024년 9월, 우리를 애타게 했던 물떼새의 알 ⓒ 보철거시민행동

 700일간 함께 싸워온 동지들
700일간 함께 싸워온 동지들 ⓒ 보철거시민행동

'700일'

아직 다가오지 않은 숫자이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과연 700일이 어떻게 다가올지 감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 지금의 마음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있을까. 내내 마음을 졸이며 이길 수 있기를 바랐고 동지들과 서로 웃고 떠들고, 기뻐하고 화를 내며 녹색둥지에 쌓은 700일의 시간은 결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지난 24일, 기후부는 시민사회와 합의한 4대강 재자연화 추진안을 발표했다. 연내 보 처리방안 용역을 추진하고 국가물관리기본계획에 반영하되, 빠른 시일 내 결론 도출이 가능한 보는 2027년 상반기 추진 가능하도록 한다. 더불어 낙동강 취양수장개선사업을 2028년 상반기 종료를 목표로 추진하고, 녹조가 심각한 하류 4개보 지역은 2027년 상반기 보 개방을 추진한다.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은 이재명 정부가 4대강 재자연화 시작을 알렸고, 더 구체적인 결과를 위해 함께 싸워나가기로 하고 천막농성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강을 사랑하는 '우리 모두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도저히 이 곳을 어떻게 떠나야 할지 가늠할 수 없도록, 그렇게 깊은 사랑이 이 천막농성장에 머물러 있다. 처음 농성을 시작하며 만났던 흰목물떼새와 조그만 알, 흰수마자와 수염풍뎅이, 수달과 고라니와 오소리, 너구리, 할미새와 물총새 등 강의 친구들과 눈을 맞추고 보낸 순간들도 생생하다. 지금도 그들의 소리가 강 위에 머무르고 있고, 봄을 맞아 새 둥지를 트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열린 세종보 재가동 중단과 4대강 재자연화를 위한 거리미사
마지막으로 열린 세종보 재가동 중단과 4대강 재자연화를 위한 거리미사 ⓒ 보철거시민행동

'입당성가 부르겠습니다'

AD
지난 3월 28일, 천주교대전교구 생태위원회 주관으로 열리는 '세종보 재가동 중단과 4대강 재자연화를 위한 거리미사'가 마지막으로 열렸다. 수문에 막힐 뻔한 세종보 금강을 2년 동안 매달 찾아주었고, 한 달에 한 번 이곳은 예배당이 되어 기도가 쌓였다. 오가는 길이 가파른지라 힘든 농성장 오는 길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잊지 않고 찾아주셨고 격려와 사랑을 아낌없이 나눴다.

마지막 미사에 찾은 이들은 그간 700일의 투쟁을 함께 한 활동가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함께 기뻐했다. 특별히 거리미사를 꾸준하게 이끌어주신 김대건 베드로 신부에게 대전충남녹색연합은 감사패를 드렸다. 세종보뿐 아니라 새만금, 삼척 석탄발전소 등 다양한 투쟁의 자리에서 거리미사로 연대해 왔기에 전국의 환경운동가들이 힘을 내고 끈질기게 싸워오고 있기도 하다.

봄바람이 부는 마지막 미사에서 농성장에 주변 나무들에서 돋는 작고 푸른 잎들을 보았다. 눈이 시리도록 날 것인 그 연두색을 보니 마음이 시큰해진다. 이곳을 지켜온 이들은 그렇게 작고 푸른 잎들이었다. 세상이 겨울처럼 황폐하고 어두울 때, 그 사이를 뚫고 기어이 푸른 잎을 무성하게 만들 그 작고 강한 이파리들. 오늘의 봄은 그들이 만들고야 말았다.

 시민들과 함께 그린 벽화
시민들과 함께 그린 벽화 ⓒ 황일수
 2024년 5월의 녹색천막.
2024년 5월의 녹색천막. ⓒ 박은영

마지막이 될, 700일의 일지를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하고 있다. 너무 많은 순간들이 이 녹색둥지 안에 쌓여있어 단 한 줄 시작하기도 벅찬 것도 사실이다. 그것을 다 꺼내면 정말 이 농성이 끝나버리는 것 같아서 차마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매일매일 일지를 쓰면서 머리를 싸매던 순간들은 그 감각을 기록하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이기도 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버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아무것도 쓰지 못할 때마다 '꾸준히 기록하는 이들'의 에너지는 보통 사람의 것이 아님을 새삼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써 내려온 100여 편의 기사는 그대로 소중한 기록이다. 마음의 펜을 가다듬고 다음의 투쟁을 위한 기록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천막을 걷고 다른 방식으로 싸워나가자고 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다. 환경부가 실제 약속을 이행할 것인가, 이제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결국의 승리'를 이끌어낼 것인가, 불확실한 전망들에 여전히 머릿 속은 복잡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했다. 우리를 끈질기게 버티게 한 것은 오직 '생명'이었음을. 앞으로의 길도 그것 하나만 생각하고 걸어나가자, 생각하며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다.

#세종보#금강#4대강재자연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초췌은영의 세종보 천막농성 투쟁일지

박은영 (bravoey) 내방

환경운동가, 글쓰는 사람. 남편 포함 아들 셋 키우느라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