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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좀 해줄래?"
고2 딸에게 화장을 부탁했다. 첫 번째 면접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왜 떨어졌을까? 거울을 보니 답이 나왔다. 퇴사 후 1년 8개월 동안 자연인처럼 살았다. 나는 언어재활사다. 이 직업도 서비스업이라서, 대상자의 주의를 끌기 위해 관리가 필요하다. 두 번째 면접은 좀 더 화사한 모습으로 가고 싶어 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면접 준비에 힘쓴 날들
아이는 능숙하게 내 얼굴에 붓질을 했다. 셰이딩으로 턱을 깎아 갸름하게 만들고, 블러셔로 얼굴에 생기를 주었다. 하이라이터로 코 가운데와 콧방울을 강조해 오뚝하게 세웠다. 아이의 섬세한 붓질과 진지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오랜만에 딸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언제 이렇게 컸지? 딸이 화장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같은 반 남학생들에게 학교폭력을 당한 이후였다.
"엄마, 나 화장해 볼까?"
상처 난 마음이 회복될 수만 있다면 못 해줄 게 무엇이랴. 나는 아이가 원하는 화장품을 잔뜩 사주었다. 딸은 종종 화장 놀이가 하고 싶을 때 나에게 여러 차례 구애했지만, 그때는 색조 화장이 어색해서 피해 다녔다. 3년이 지나자 아이의 화장 실력은 메이크업 아티스트 못지않게 발전했다. 구직활동을 하면서부터는 오히려 내가 아이를 조르게 되었다.
사려 깊은 딸은 안구건조증이 심한 엄마를 위해 가루 날림이 심한 아이섀도는 최대한 간단하게 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피부색을 밝혀주는 연한 분홍색 립스틱을 집어 입술에 칠해주었다. 엄마를 도와주었다는 생각에 딸은 뿌듯한지 신나 보였다. 공주 구두를 신고, 물뿌리개로 앞머리를 흥건하게 적시며 깻잎 머리를 만들던 꼬마가 이제 숙녀가 되어있었다.
화장을 마치고, 면접용으로 구입한 정장을 입었다. 헐렁한 운동복으로 가리고 다니던 살들을 어깨에 각이 잡힌 재킷에 끼워 맞추고, 허리와 골반에 꼭 맞는 치마 정장 틈으로 밀어 넣었다. 살이 삐져나오지 못하도록 몸에 긴장을 유지해야 했다. 오랜만에 배에 힘을 주고, 등을 편 채 걸어 온몸이 피곤했지만, 건강한 자극에 기분이 좋기도 했다.
애써 준비한 두 번째 면접을 무난하게 마쳤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또 낙방이었다. 40대 후반, 정규직은 욕심일까? 꽉 찬 연차가 부담스러운 것일까? 입사만 가능하다면 연차 파격 세일도 가능한데. 프리랜서나 새로운 일을 준비해야 할까? 고민하며 세 번째 면접을 준비할 무렵, 뉴스에서 남편의 회사 소식을 접했다. 급여 미지급과 희망퇴직자 공고. 나는 마음이 더 분주하고 불안해졌다. 이번 면접은 내 자아실현이 아닌, 가족의 생계가 달린 면접이었다. 최선을 다해 면접에 임했지만, 조바심 때문인지 세 번째 면접 결과도 좋지 않았다.

▲취업 준비 ⓒ 박이연
회사를 관두지 말았어야 했을까? 재작년 7월 친정엄마가 작고한 지 3개월 만에 퇴사를 했다. 엄마에 대한 상실감보다, 17년 근무 경력보다 내 아이를 지키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첫째는 학교폭력 이후 근근이 버티고 있었지만, 주 양육자였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우울증과 무기력감이 더욱 심해져 등교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외할머니와 유독 사이가 돈독했던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도 심한 무기력증으로 호소하며 집에서 잠만 잤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었을 때, 일하던 엄마 모습이 익숙했던 둘째가 물었다.
"엄마, 회사 왜 그만둬? 우리 이제 치킨 못 먹어?"
아이들에게 엄마의 퇴사는 어색하고 불안한 것이었다. 두 아이 모두 나와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해 했다. 아이들은 매일 같이 내가 언제 출근하는지 관심이 쏠려 있었다. 친정엄마가 두 아이를 돌봐준 덕분에 17년 동안 '워킹맘'으로 살 수 있었지만, 모순되게도 그 때문에 나는 가짜 엄마여야만 했다. 내가 엄마의 자리를 찾으려 하면, 친정엄마는 상실감에 힘들어했다. 더 이상 챙길 가족도 없던 친정엄마에게는 내 아이들이 전부였다. 힘겨루기도 지쳤다. 나는 일에 집중했다. 나 자신을 위한 타협이기도 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주말에 질적으로 놀아주면 되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친정엄마가 작고하시고 그 평화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상실감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일상이 무너졌다. 지난 1년 8개월 동안 내 커리어는 멈췄지만, 나는 가정에서 진짜 엄마로 경력을 쌓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처럼,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저 곁에 있어 주었다. 함께 밥을 먹고, 병원 갈 때 동행하고, 친구가 집에 오면 간식을 챙겨주었다. 오며 가며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을 치며 아웅다웅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아이들에게 진짜 엄마가 되었다.
다시 내 일과 사랑에 빠질 준비
퇴사 초반에는 내가 처한 상황들이 억울해서 화가 나기도 했다. 나는 일을 좋아했고, 온 힘을 다해 일하는 나 자신을 사랑했다. 그 일을 할 수 없는 상황들이 그저 힘들었다. 잉여 인간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집에서 힘들어하는 내게 남편은 글쓰기를 권유했고, 나는 내 안에 갇혀 있던 이야기를 글로 쏟아 냈다. 내 글을 가족들에게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집에 있으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도 마음이 편안했을까?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 의지하고 아픔을 나누며 다시 단단해졌고, 일상을 회복했다.
나는 나의 일을 사랑했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때로 사랑하는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처럼 나도 나의 자리를 찾아 움직일 시간이 되었다. 첫째의 도움으로 화장법을 바꾸자 화사해졌고, 내 기분도 좋아졌다.
그 덕분일까? 나는 1일,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한다. 다시 내 일과 사랑에 빠지는 두근거림을 안고 낯선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한다.
"잘 부탁드립니다. 언어재활사 박이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