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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프랑스의 평온한 가정집에서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던 친구가 올봄에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활기차고 영민 하지만 벌써 80에 가까운 나이다. 게다가 70대 친구랑 4명이 한 팀으로 온다니 날짜가 다가올수록 내 머릿속이 음식이며 이부자리며 특히 일정 짜기로 분주해졌다. 어떤 음식을 내놓을지,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을지, 무엇보다 적지 않은 네 명의 일행에 그들의 체력을 고려한 최적의 동선을 짜느라 머릿속은 연일 복잡한 설계도를 그려댔다.
그녀가 봄에 오기로 결정한 것에는 봄 꽃 특히 벚꽃 보는 것을 마음에 두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서 날씨를 살피고, 개화 시기를 확인하고, 혹시라도 타이밍이 어긋날까 마음을 졸였다. 드디어 친구 일행이 도착하여 경주와 부산을 거쳐 내가 사는 마산에 이르기까지 나는 미리 인근의 벚꽃 명소를 체크하며 답사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내 눈엔 우리 동네 벚꽃이 제일이었다. 연세 있는 친구들의 보폭에 맞춰 일정을 거듭 다시 조절했다.

▲마산 문화동소하천 벛꽃 ⓒ 김성례
첫날 밤, 광화문 BTS 공연에 관심을 보이던 친구들을 위해 영상을 틀었다. 방탄소년단의 '아리랑 월드 투어' 이야기를 나누다 급기야 다 함께 '아리랑'을 합창했다. 손주가 열 명이라는 파리지엔 할머니는 손녀들이 좋아한다며 블랙핑크를 청했고, 싸이의 말춤을 흉내 내며 아이처럼 깔깔거렸다. 케이팝에서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레 한글과 세종대왕으로 이어졌고, 나는 기꺼이 그 밤의 'K-컬처 전도사'가 되었다.
이튿날엔 '창원의 집'에서 우리네 제사상과 돌상의 의미를 전하고, 마산 창동 예술촌과 어시장을 돌았다. 전복과 굴, 대게 같은 싱싱한 해산물이 지천인 어시장에서 일행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점심으로 회덮밥을 먹었는데 한국식으로 푸짐한 밑반찬과 매운탕 등 상차림 덕분에 맛있고 포만감 있게 먹었다.
드디어 여정의 하이라이트인 문화동 '연애다리'로 향했다. 소하천 산책로를 따라 양옆으로 흐드러진 벚꽃 터널은 마산이 숨겨둔 보석 같은 곳이다. 3.15 해양누리공원까지 이어진 데크 길을 걸으며 바다 조망을 즐긴 뒤, 해안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 밤 벚꽃은 낮과는 또 다른 황홀경을 선사했다.
친구는 밤에 보는 벚꽃에 또 감탄하며 자기 평생에 이렇게 벚꽃을 많이 본 것은 처음이라고 연방 다시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녀가 벚꽃을 보러온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날씨와 일정을 마음 졸이며 체크 했다고 고백했다. 그녀가 올 때까지 꽃잎이 버텨주기를, 초록 잎이 나오기 전에 눈꽃 같은 화사함을 꼭 보여줄 수 있기를 기도하는 심경이었다고. 그녀가 실컷 그 원을 풀었으니 마음이 놓인다고 하니 그녀는 웃으며 "벚꽃아, 이제 너는 네 역할을 다 했으니 편히 떨어져도 돼"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프랑스친구 창원방문창원의집 ⓒ 김성례
국제 서바스(Servas) 여행 모임에서 시작된 인연이지만, 나이와 국경의 차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삶을 대하는 열정과 호기심의 결이 같다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흩날리는 꽃비 아래서 확인했다.
그녀가 공항 리무진을 타러 가는 이른 아침, 남편과 함께 배웅 나간 자리에서 결국 눈시울이 붉어졌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지만,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깊게 껴안았다. 그녀와 일행들의 남은 제주 여행도 무탈하기를, 지금처럼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빌며 나는 아파트 주차장 벚꽃 나무 아래서 멀어져 가는 차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제 꽃은 져도 되지만, 내 마음 속엔 지지 않는 분홍 빛 추억이 하나 더 새겨진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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