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가 쓴 글을 매일 고치고 다듬는 사람의 이야기. 인공지능(AI)이 쓰고 고치는 시대에, 인간이 쓰고 고치는 마음을 찬찬히 담아 봅니다.
해본 적은 없지만 복싱의 재미를 굳이 찾는다면 '때리는 맛'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건 지난해 방송된 <무쇠소녀단2> 복싱 편을 보면서다. 배우 박주현이 실전 스파링 후 소감을 말하는 걸 들었는데 그 내용이 굉장히 의외였다.
감독 : "오늘 주현씨는 정말 침착하게 했어요. 정말 침착하게 끝까지 (상대의 눈을) 보고 딱 하면 툭 때리고 안 들어온다 싶으면 잽으로 툭 치고 이런 건 너무 잘했다."
주현 : "쾌감 한 번 있었어요. 주먹을 여기(얼굴 바로 앞) 정도에서 딱 한 번 피했어요. 그거 봤어요?(감독, 네) 그때 와... 내가 스스로 우와, 우와, 안 맞았어. 그런 느낌이 한 번 있었어요. (감독을 치며) 와, 그거 맛있더라. 와, 그거 너무 맛있더라고요."(감독, 절대 그 맛을 잊으면 안 돼)
코치 : "선수들은 그 상대 선수 주먹이 날아갈 때 그 주먹이 가르는 소리까지 들리면서 약간 슬로우로 느껴질 때, 약간 쾌감이 있어요."
글에서 주먹이 느껴질 때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이미지. ⓒ 오마이뉴스
'주먹을 피했다'는 쾌감, 방송 화면 아래로 흐르는 '회피의 맛' 자막을 읽으며 나는 퇴고를 떠올렸다. 글 안에 가득한 주먹을 피하는 것, 퇴고도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주먹이 뭔지 이제부터 그 이야길 해보겠다. 아랫글을 보자.
처음엔 선생님이 아무리 권유한다고 해도 아이들이 과연 낭독을 하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 나는 낭독이 요즘처럼 집중력이 떨어진 시대에 어쩌면 책을 읽힐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이 반복되고 '생각이 들었는데'와 '생각이 든다'가 겹칠 뿐만 아니라 한 문장이 너무 길다. 처음 원고를 봤을 때는 이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그냥 맞았다. 다시 보니 피했어야 했다. 어떻게? 이렇게.
처음엔 '선생님이 아무리 권유한다고 해도 아이들이 낭독을 하려고 할까?' 의심했다. 그런데 요즘처럼 집중력이 떨어진 시대라면, 낭독이 책을 읽힐 수 있는 적절한 방법 같기도 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를 '의심했다'로 고치고 긴 문장을 끊었다. 중복되는 '요즘'과 '낭독', '생각이'를 피하니 문장이 간결하고 전달하는 바가 분명해졌다. 원고 안에서 이런 공격은 수없이 많다. 다음 공격도 보자.
9회말 투아웃에서 터진 역전 홈런에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다. 아이들이 선수들의 사인볼을 받기 위해 글러브를 들고 펜스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치킨과 맥주를 들고 친구들과 함께 응원가를 부르며 경기를 즐기는 것이다.
이번 공격은 '것이다'이다. 여러분들도 한번 이 공격을 피해 보시길 바란다. 나는 이렇게 피했다.
9회말 투아웃에서 터진 역전 홈런에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들은 선수들의 사인볼을 받기 위해 글러브를 들고 펜스 앞으로 달려 나갔다. 또 다른 사람들은 치킨과 맥주를 들고 친구들과 함께 응원가를 부르며 경기를 즐겼다.
하나의 원고에서 공격의 종류는 복싱에서 펀치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불필요한 접속사나 쉼표가 난무할 때, 같은 서술어가 반복될 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야 할 말로 지적하는 ~것, ~적, ~의 등의 사용, 오자나 비문, 긴 글인데 중제가 하나도 없거나, 너무 많은 중제가 남발하는 글을 보면 사방에서 주먹이 날아오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힘들어도 공격을 다 피했을 때, 나도 복싱선수가 느끼는 약간의 쾌감을 느낀다.
문단 나누기가 필요한 이유
문단을 나누지 않고 통으로 들어오는 글도 주먹이다. 묵직한 스트레이트 펀치 같은. 그런 원고를 볼 때는 숨이 턱턱 막힌다. 빈 틈 없이 빡빡히 채워진 글을 마주하면 비장한 마음까지 생긴다. 책상 어느 쪽엔가 붙은 A4 종이에 '읽어야 한다' 글씨가 써 있거나, "숨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고" 요가 선생님의 이런 구령이 들리는 것 같다.
그럴 땐 편집에 들어가기 전, 나부터 읽기 편한 호흡의 글로 문단을 대강 정돈한다. 내용이 바뀔 때도 그렇지만 한 템포 쉼이 필요할 때, 짧은 환기가 필요할 때 등 읽어 나가면서 문단을 끊을 부분에서 탁탁, 엔터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마지막 문장, 마침표가 끝날 때까지 그 일을 반복한다.
나는 업무상 어떤 글이든 반드시 읽어야 하는 사람이라 최선을 다해 읽을 방법을 찾지만 독자는 다르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글이 아니면 안 읽어도 그만인 사람이 독자다. 읽기 힘든 글을 참고 견디는 인내심 많은 독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독자의 시간을 붙들려면 문장만큼이나 문단도 친절해야 한다. 쓸 때부터 읽는 사람을 배려해야 하는 마음으로 써야 하는 이유다.
산문인데 시처럼 문단을 나눈, 한두 줄이 한 문단(글의 흐름상 꼭 필요한 의도한 경우는 제외)인 글도 정돈의 대상이다. 빽빽한 글도 그렇지만 공백이 많은 느슨한 글도 읽는 몰입을 방해한다. 잦은 빈 틈이 독자에게는 나가도 되는 문처럼 보일 수 있다. 독자의 기사 체류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왜 안 그러겠나. 사람들은 바쁘고 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인데. 그러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가능한 이탈자 없이 끝까지 읽어주길(결코 쉽지 않은 목표) 바라는 마음으로 독자가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문단을 만들어 나간다. 요리로 치면 재료 다듬기 정도의 공정이다. 재료 정리가 끝나면 요리가 시작되듯 나도 본격 편집에 돌입한다. 숨 막히는 글이든, 여백이 많은 글이든 문단을 정돈하면서 어떻게 편집하면 좋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나 직관적으로 제목이 떠오르기도 하니 100% 고된 시간만은 아니다.
글쓴이의 입장 보면 어떨까.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문단의 의도와 맥락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글쓴이다. 글을 쓸 때부터 의도에 맞게 문단을 나눠 쓰는 훈련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좋다. 글을 한번 쓰고 말 게 아니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