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충북 음성 '예은추모의 집' 충북 음성에 있는 추모관은 구에서 운영하는 봉안당 시설임
충북 음성 '예은추모의 집'충북 음성에 있는 추모관은 구에서 운영하는 봉안당 시설임 ⓒ 윤태정

미국에 사는 막냇동생이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 엄마를 간호한다는 목적으로 3개월 유급휴가를 받고 귀국한 것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흔쾌히 승인해준 미국인 직장 상사가 참 고마웠다. 이런 좋은 제도가 있다니 미국이라는 나라도 '효도' 앞에서는 너그러운 모양이었다.

동생은 아버지가 계실 적에 달러를 많이 보내드리던 효녀 중의 효녀였다. 동부에 살다가 몇 해 전에 시애틀로 이사한 것도 최단 거리에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뵈려는 이유였다. 돈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웃게 해드리기 위해서 돈을 번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버지가 요양병원에서 숨을 몰아쉬며 사경을 헤맬 때도 만 달러를 손에 들고 귀국했다. 아버지를 부르며 오열했으나 아버지는 그 돈을 만져보기는커녕 애타게 부르는 막내딸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

AD
아버지가 떠나신 때는 장미꽃 분분한 5월이었다. 기일은 아직 멀었으나 동생의 귀국에 맞춰 찾아뵙기로 의견을 모았다. 엄마는 '주, 과, 포(술, 과일, 육포)'만 간단히 놓자고 하셨지만 아버지 뵈러 가는데 너무 썰렁할 것 같아 음식을 조금 장만했다. 삼색 전과 두부를 부치고, 아버지가 잘 잡수시던 산자도 준비했다. 목적지는 2023년도에 입주하신 충북 음성 예은추모공원의 '추모의 집'이었다. 우리 오 남매를 포함한 여덟 명은 엄마 집에 모여 다 같이 출발했다.

서대문구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추모의 집'은 민간인 시설에 비해 저렴하게 운영된다. 서대문구 주민이던 아버지는 이곳에 엄마와 살 곳을 미리 신청해 놓았다. 최초 15년을 계실 수 있고, 5년씩 3회 연장할 수 있다. "20만 원에 30년이나 집세 걱정 없이 편케 살 수 있으나 얼마나 좋으냐?"면서 웃으시던 아버지 얼굴이 떠오른다. 구에서 관리를 철저히 해주는 덕택에 신경 쓸 일은 없어도 거리 상 자주 찾아뵐 수 없다는 건 아쉬운 점이다.

'추모의 집'에 도착하니 입구에 서 있는 벚꽃 봉오리가 우리를 반겼다. 하늘은 쪽빛 바다처럼 푸르고 뒷산의 나무들은 초록빛이었다. 귀에 익은 목탁 소리는 비록 방송이지만 영혼을 달래주는 의식처럼 들렸다. 제단에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차려놓고 절로 예를 올리기 시작했다.

큰딸이 먼저 절을 할 수 있는 특별 대우에 내가 먼저 절을 올렸다. 나머지는 합동으로 올렸는데 막냇동생한테는 따로 절을 올릴 수 있는 특혜를 주었다. 두 손을 모으고 옆에 서 있던 엄마는 입으로 계속해서 극락왕생을 읊으셨다. "많이 잡수셔라", "가져가서 동무들과 나눠 잡수셔라"라는 말씀도 곧바로 이어졌다.

제단 유가족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마련된 장소가 깔끔하고 쾌적하게 조성되어 있음
제단유가족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마련된 장소가 깔끔하고 쾌적하게 조성되어 있음 ⓒ 윤태정

제사를 마치고 옆에서 도와주신 분들께 과일과 산자를 드리고 아버지가 계신 3층으로 올라갔다. '서대문구'라 쓰인 문패 쪽으로 들어서자마자 아버지가 계신 방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계약서에 서명하던 그 날, 아버지는 눈높이에 딱 맞는 '로열층'을 제대로 골랐다며 흐뭇해하셨다. 아버지 방 밑으로 예약해둔 엄마의 방도 한눈에 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작년에 왔을 때는 빈방도 많더니 그새 방이 많이 채워진 걸 보고 마음이 숙연해졌다.

아버지가 계신 방 둘레로 하얀 장미가 빼곡했다. 둘째 여동생이 장식해 놨을 텐데 그 옆으로 엄마와 찍은 사진도 몇 장도 보였다. 아들을 서울대학에 입학시킨 남동생이 가져다 놓은 합격증도 자랑스럽게 세워져 있었다. 아버지도 분명히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좋아하셨을 거다. 비록 아무 말씀은 안 하셔도 우리가 왔다는 건 이미 다 알고 계실 터였다.

몇 년 전에 건강이라면 자신하시던 아버지가 갑작스레 허리 통증으로 입원하셨다.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엄마 걱정을 많이 하셨다.

"내가 없으면 앞으로 엄마 약은 누가 챙겨주나?"
"내가 없으면 앞으로 누구랑 병원에 다니나?"

걱정과 한탄으로 요양병원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이던 때가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유리문 안에 편안히 잠들어 계신 아버지한테 말을 건네며 그동안의 가족 근황을 전해드렸다. 무엇보다 엄마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안심하지 않으셨을까 상상해 보았다.

아버지가 추모의 집으로 오신 지 얼마 안 되어 두 여동생의 시부모님도 이곳으로 모셨다. 사돈끼리 같은 극락의 세상을 살고 계시는 거였다. 온 김에 다른 방들도 한번 둘러보았다. 어느 항아리이건 생(生)의 년도와 졸(卒)의 년도가 나란히 쓰여 있었다.

나이 순서로 세상을 떠나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 났다. 성급하게 떠난 사람은 왜 그리 많을까. 사후 세계에 미니어처 술상을 차려놓은 걸 보면서 술을 좋아했던 분이라고 짐작했다. 바둑으로 여생을 보냈는지 바둑판을 넣어드린 방도 여럿 보였다.

'하늘로 보내는 편지'를 전시한 벽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왔다 가는 마음을 정성스럽게 손 편지로 남긴 사연을 보자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는 깨달음이 전해져 왔다. 급작스러운 이별에 안타까움을 통곡으로 표현한 편지를 읽을 때는 가슴이 시린 듯했다. 한번 가면 다시 못 올 이승과 저승. 얼마나 큰 슬픔을 사이에 두고 강을 건넜을지 콧날이 시큰했다.

'아들아! 사랑했었고, 사랑하고, 사랑할게. - 엄마가'라고 쓴 편지 앞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문득 '오늘은 어제 누군가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하루다'라는 문장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하늘로 보내는 편지' 못다 이른 사랑을 편지로 써서 하늘로 부치는 마음들
'하늘로 보내는 편지'못다 이른 사랑을 편지로 써서 하늘로 부치는 마음들 ⓒ 윤태정

나 없이는 외로울 거라는 엄마, 나도 사실 엄마 없이는 못 살 것 같아 두렵다. 엄마와 나 사이에 반드시 오고야 말 이별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오늘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동행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걸 안다. 우리네 인생이 유한하니 그저 주어진 날들을 알뜰히 챙기는 수밖에. 하루하루 좋은 추억이 쌓이도록 시간을 차곡차곡 채워나가야겠다.

막냇동생은 어리광을 부리듯 아버지 방 유리문을 한번 쓰다듬더니 조용히 입을 뗐다.

"아버지, 장미 꽃다발을 한아름 안고 다시 찾아뵐게요."

우리는 푸른 오월, 아버지의 기일에 맞춰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아버지의 집'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은 아까보다 더 짙어진 봄볕이 우리 가족을 포근히 감싸 안아주는 듯했다.

#아버지#추모원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참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며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흐뭇한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독자의견6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