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허균의 맛> 앞표지 ⓒ 글항아리
누구에게나 자신이 제일 좋아하고, 때로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 하나 쯤 있을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 부딪혀 힘들고 지쳤을 때,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그러한 음식을 '영혼의 음식(소울 푸드)'이라고 부른다.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입맛은 사람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어릴 때부터 집에서 먹었던 어머님의 손맛이 담긴 음식을 가장 익숙한 맛으로 여기고, 자라면서 즐겨 먹었던 음식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기억은 자기만의 추억이 서려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다양한 음식을 접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새로운 음식들도 맛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 지식인 허균(許筠)은 자신이 경험했던 음식들을 열거하고, 각각의 음식들에 대해 개인적인 맛 평가나 그에 관한 내용들을 기록한 <도문대작(屠門大嚼)>이라는 문헌을 남겼다. 자신의 상상력만으로 떠올린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들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 그는 가장 먼저 외가인 강릉에서 먹었던 '방풍죽'에 대한 기억을 첫머리에 내세우고 있다. 몸의 일부 혹은 전부가 마비되는 증상인 '풍(風)'을 예방하는 효과로 잘 알려진 방풍을 재료로 하여 죽을 끓이는 음식이라고 한다. 이어지는 '석이버섯떡'과 차를 마실 때 곁들여 먹는 '다식' 등 다양한 떡 종류를 비롯해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의 소개가 이어진다.
'<도문대작>, 조선 미식선비의 음식 노트'라는 부제의 <허균의 맛>이라는 책에서는 허균의 저작인 <도문대작>의 해석과 더불어,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음식에 대한 관련 기록들과 함께 저자 자신의 미식에 대한 체험을 덧붙여 소개하는 내용이다. '도문(屠門)'이란 가축을 도살하여 고기를 팔았던 푸줏간(도살장)을 뜻하며, '대작(大嚼)'은 입을 크게 벌려 음식물을 씹는 행위를 일컫는다. 따라서 허균의 책 <도문대작>은 '푸줏간 앞에서 크게 입을 벌리고 음식을 씹는 시늉을 한다'는 표현으로, 음식을 실제로 먹을 수는 없으나 상상으로나마 먹는 체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그 제목을 통해서 허균이 상상력으로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들을 떠올렸으며, 그와 관련된 음식들에 대한 내용들을 기록으로 남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허균이 과거 시험관으로서 부정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유배형에 처해져, 전라도 함열에 머물러 있을 때 이 문헌을 저술했다고 알려져 있다. 죄를 짓고 유배형을 당한 처지에서, 허균은 당시에 먹을 것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하여 '귀양의 현실을 극복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는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이었고, 그동안 자신이 먹었던 음식들을 떠올리며 그에 관해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을 것이다. 아마도 그가 평소에 다양한 음식을 먹어본 경험이 있던 미식가였기에, 당장 먹을 수는 없을지라도 상상으로나마 마음의 허기를 채우고자 하는 행위라고 이해된다. 일반 서민들과 달리 사대부의 신분이었기에 그동안 다양한 음식들을 맛보았을 터이고, 그로서는 그동안 먹었던 음식들을 떠올리며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써 위안으로 삼고자 했을 것으로 이해된다. 그는 서문에서 음식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내가 죄를 짓고 바닷가로 유배되었을 적에 쌀겨마저도 부족하여, 밥상에 오르는 것은 상한 뱀장어나 비린 생선, 쇠비름, 들미나리 등이었고 그마저도 끼니를 걸러서 굼주린 배로 밤을 새웠다. 그럴 때면 매양 지난날 먹던 산해진미도 물려서 물리치던 때를 생각하고 침을 흘리곤 했다. ...... 마침내 종류별로 나열하여 기록해두고 때때로 보면서 한 점 고기로 여기기로 했다. 쓰기를 마치고 나서 <도문대작>이라 명명했다. 이는 세속의 현달한 자들이 입에는 사치스러움을 다하고 함부로 낭비하여 절제할 줄 모르니, 부귀영화는 이처럼 무상할 뿐이라는 것을 경계하려 함이다." - '도문대작인 (屠門大嚼)引'에서
허균의 <도문대작>을 토대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덧붙여 서술하고 있는 내용으로 이 책을 꾸미면서, 저자 역시 그 저술 동기를 "힘들고 지쳐 있을 때 그리운 고향을 생각하면 그 때 먹었던 음식이 떠오르기 마련"이고, "음식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유배지에서 과거에 맛보았던 음식들을 떠올려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을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실상 <도문대작>의 원문은 그리 길지 않고, 이 책의 말미에 첨부된 원문이 불과 10면 정도에 불과함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도문대작>에 소개된 음식이나 식재료들을 하나의 표제로 제시하고, 원문에 대한 소개와 함께 해당 음식에 관한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다양한 기록들과 저자 자신의 경험을 덧붙여 내용을 풍부하게 채우고 있다. 모두 65개 항목에 걸쳐 소개된 식재료와 음식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은 온전하게 오늘날의 미식가들에게도 충분히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도문대작>에는 다양한 음식들이 한자로 기록되어 있어, 간혹 해당 음식이나 식재료가 무엇을 뜻하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저자 역시 한자 표기로 인해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음을 토로하면서,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한시나 산문 기록에 나타난 표현들과 비교하여 해당 음식의 정체를 추적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예컨대 자색 껍질의 작은 조개로 소개된 '제곡(齊穀)'에 대해서, 강릉에 사는 지인들에게 탐문하여 그 정체를 알아내고자 노력햇던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하여 여전히 그 정체를 분명하게 밝히지는 못하지만, '째복'으로 불리기도 하는 민들조개이거나 혹은 섬진강에서 잡히는 '재첩'이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도 서식하였기에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이처럼 허균이 소개한 음식이나 식재료를 접했던 저자의 경험을 근거로 <도문대작>에 기록된 음식들에 대한 개인적 감상과 느낌을 덧붙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구성은 단순히 원문과 번역을 제시하면서 주석을 붙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선시대의 기록은 물론 현대의 기록과 저자의 경험 등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방증 자료를 토대로 <도문대작>에 기록된 음식들에 대한 내용을 풍부하게 서술하고 있기에, 독자들에게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도문대작>이라는 문헌과 그 내용을 나 역시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특히 해당 문헌에 "차 : 순천(順天)에서 나는 작설차(雀舌茶)가 가장 좋고, 변산(邊山)의 것이 그 다음이다"라는 구절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직장을 순천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발견한 이 구절로 인해, 차 생산지로 잘 알려진 인근 지역 보성의 차가 아니라 순천의 작설차를 최고로 꼽는 것이 흥미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차에 관한 내용 외의 다른 항목들도 그저 해당 음식과 식재료들에 대한 단편적인 기록임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도문대작>의 원문에 제시된 단편적인 기록들을 토대로 해당 항목에 관한 다양한 기록들을 찾아서 덧붙이고, 해당 음식에 관한 자신의 미식 경력을 풀어내면서 다채로운 방식으로 소개하는 내용이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의 뒷부분에는 <도문대작>의 번역과 원문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따라서 흥미로운 내용으로 채워진 이 책이 음식에 대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이자, 이 분야에 관심을 지닌 연구자들에게도 참고서로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