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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도 좋은데 우리 걸어서 시장 갈까?"
"좋지!"
남편과 나는 어깨에 가방을 하나씩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나는 대형마트에서 장 보는 것을 좋아했다. 쉬는 날이면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마트로 달려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면 한 자리에서 아이들을 배불리 먹고 마시게 한 다음 카트에 태워 먹거리와 마실 거리, 입을 거리를 한 차 가득 싣고 오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땐 시장에 가는 게 불편하고 싫었다. 시장은 어둡고 컴컴했다. 주차장도 없어서 아이 둘을 안고 걸려 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비라도 오면 아이들이 구정물을 밟을까 걱정하느라 제대로 장을 볼 수가 없었다. 소심했던 나는 물건을 고르지도 못하고 값을 깎지도 못했다. 동네 엄마들이 시장에 가면 싸고 좋은 물건이 많다고 해도 내겐 그저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명절 무렵에 남편이 온누리 상품권 열 장을 주었다. 모임에서 선물로 받았다며 시장에 가면 쓸 수 있다고 했다. 마트도 백화점도 아닌 시장이라는 말에 난감했지만, 가뜩이나 돈 들어갈 일이 많은 명절에 십만 원이라는 거금을 그냥 쥐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남편은 요즘 시장이 많이 바뀌었다며 주차장도 있을 거라고 했다.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상품권을 챙겨 남편과 함께 시장으로 갔다.
우리 시장이 달라졌어요

▲우리동네 부평시장주차장 쪽에서 바라본 시장 입구 ⓒ 김효숙
남편 말대로 시장에 주차장이 생겼다. 5층 규모의 주차 타워 형태였다. 물건을 사고 상인들에게 주차권을 받으면 한 시간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명절을 앞둬선지 차가 많아서 꼭대기 층에 간신히 주차하고 시장으로 들어섰다.
어두울 거라 짐작했던 시장 골목이 환했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예전에 있던 시커먼 가림막은 사라지고 투명 덮개를 통해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비가 와도 걱정이 없겠다 싶었다.
가게 앞과 바닥도 깨끗하게 청소해 놓아서 물이 흥건히 고여 있는 곳도 없고 걷다가 가게 앞에 내놓은 물건에 발이 걸리는 일도 없었다. 더러 여전히 지붕 공사가 되지 않은 골목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예전에 비해 훨씬 깔끔해 보였다.
처음엔 동서남북으로 이어진 골목마다 비슷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어 도무지 어디서 무얼 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여유를 갖고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며 채소와 과일을 구경하다 보니 값싸고 싱싱한 녀석들이 눈길을 끌었다.
어서 데려가 달라고 온몸으로 신호를 보내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렇게 실한 녀석들로 장바구니를 채우면 마트에서 하나씩 포장된 식품을 카트에 싣고 올 때와 다른 매력을 느꼈다. 주인장과 눈인사하다 단골이 되면 덤을 얻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시장 상인들이 선심 쓰듯 물건을 담아 주는 까만 비닐에는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서 쌓이는 각종 포장재만큼은 아니지만 호박 하나, 가지 하나도 따로 담아 주는 그들의 인심을 다 받아안으면 부엌 싱크대가 까만 봉지로 덮일 정도였다.
재활용 분리배출할 때마다 쌓여있는 '비닐봉지산'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봉지를 다시 사용하기로 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장바구니나 집에서 가져간 봉지를 내밀면 상인들은 별사람 다 보겠다는 얼굴로 쳐다보기 일쑤였다.
몇 년 전 농수산물 시장에 갔을 때다. 주인장들은 매번 까만 봉지를 꺼냈다. 나는 손을 가로로 흔들며 까만 봉지를 거절하고 장바구니에 과일과 채소를 담았다. 시장을 나서려다 느타리버섯이 하도 탐스러워 보여 한 바구니 달라고 했더니 주인은 역시 비닐봉지 꾸러미로 손이 갔다.
내가 장바구니에 담아달라고 하자마자, 가게 주인은 내게 '왜 그렇게 유난을 떠느냐'라며 큰 소리로 면박을 주었다. 그리곤 까짓 비닐 한 장 더 쓴다고 세상이 망하지 않는다고 나를 비난했다. 나는 그와 싸우기 싫어 바지런히 버섯을 장바구니에 담고 셈을 치렀다.
해가 바뀌면서 상인들도 많이 변했다. 비닐 때문에 악담을 쏟아내는 이들은 보기 힘들다. 나는 그때 경험 때문에 부러 집에 비닐이 너무 많아 처치 곤란이라 그런다며 너스레를 떨 때가 많다. 상인들은 '그렇지 그래'라며 맞장구치고 더러는 내 장바구니를 반기기도 했다.
고마워요, 고마워!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남편이랑 이른 저녁을 해 먹고 집을 나섰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 도착한 시장엔 저녁 준비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상인들은 날이 저물기 전에 하나라도 더 팔려고 떨이를 외쳐댔다. 나는 싱싱한 미나리부터 찾았다. 지난주에 소금물에 살짝 데쳐 조물조물 무쳐 먹은 미나리의 향을 잊지 못해서 오늘도 한 단 사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미나리보다 먼저 내 코끝을 간질이는 녀석이 있었다. 깻단이다. 깻잎 순이라 해야 하나? 엄마는 봄에 들깨 여린 가지에 새순이 뭉텅이로 달리면 끓는 물에 데쳐 들기름에 볶아 나물을 해주셨다. 이제는 사시사철 깻잎이 흔하고 깻단도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지만 봄에 나오는 깻단은 유난히 고소해서 눈에 띄기만 하면 한 바구니씩 담아 온다. 오늘도 그냥 갈 수 없다.

▲바구니에 담긴 봄나물두릅과 엄나무순. 봄냄새가 그득한 봄나물. ⓒ 김효숙
참두릅은 한 바구니에 오천 원이란다. 데쳐서 초장 찍어 먹어도 좋고, 부침가루에 쌀가루를 조금 섞어 데친 두릅으로 전을 부치면 그 맛도 일품이다. 그 옆에 '나 여기 있소!'라고 외치며 나를 끌어당기는 미나리도 한 줌 고른다. 된장찌개에 나박나박 썰어 넣으면 달큼한 맛이 제격인 애호박도 거부할 수 없다.
오늘은 장바구니가 온통 초록이다. 봄은 봄인가 보다. 장바구니 한가득 채소를 담았는데 만 원이 채 안 된다.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간다. 녀석들을 담을 때마다 까만 봉투를 꺼내려는 주인장에게 손을 홰홰 내저으며 집에서 가져온 봉지를 꺼내니 주인장이 반색한다. 갑자기 고개를 숙여 고맙다고 깍듯이 인사했다.
"고마워요. 진짜 고마워. 요즘 전쟁 때문에 비닐값이 얼마나 비싼 줄 몰라. 날마다 오른다니까. "
주인장은 거스름돈을 내주면서도 연신 고맙다고 했다. 미국과 이스라엘 주도록 시작된 중동 전쟁은 우리에게 석유 위기를 절감하게 해주었다. 쓰레기봉투 사재기 대란이 일어나고 병원에서는 주사기와 수액 주머니가 부족해 난리가 났다. 시장에서는 그동안 당연하듯 푹푹 뽑아 쓰던 비닐봉지가 귀하신 몸이 되었다.
'비닐 한 장이 뭐 대수냐'라고 나를 다그치던 그 상인이 이제는 그 비닐봉지를 마다하는 이에게 감사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나는 오늘도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간다.

▲장바구니에 담긴 시장 풍경집에서 가져간 비닐봉지에 깻단과 미나리, 두릅을 담아 장바구니에 차곡차곡 담고 호박을 올려놓았다. ⓒ 김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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