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려 백곡을 윤택하게 한다는 절기, '곡우'인 오늘(20일). 지리산 노고단 아래 구례에서는 그 어떤 날보다 경건하고 웅장한 천년의 의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바로 화엄사 입구 남악사에서 열린 지리산남악제 남악제례입니다.

▲지리산남악제 남악제례 ⓒ 임세웅
지리산남악제는 신라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서 깊은 산신제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토함산, 계룡산, 지리산, 태백산, 팔공산을 '오악'으로 신성시했고, 그중 남쪽에 자리한 지리산을 '남악'이라 불렀습니다.
신라 시대 천왕봉에서 시작되어 고려 시대 노고단을 거쳐, 지금의 화엄사 남악사로 이어지기까지 이 제례의 가장 큰 목적은 단 하나, 바로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시화연풍(時和年豊)'입니다.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며, 시절이 평화롭고 해마다 풍년이 들기를 천지신명과 지리산 산신에게 간절히 기원하는 국가 주도의 숭고한 의식이었습니다.

▲지리산남악제 남악제례 ⓒ 임세웅
구례는 인구도 가장 적고 면적도 작은, 어찌 보면 아담하고 소박한 고을입니다. 하지만 오늘 남악사에서 전통 복식을 갖춰 입은 제관들이 정성스레 제를 올리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고 조용한 이 고을 구례가,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이 대한민국 온 국민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가장 크고 무거운 책임을 묵묵히 이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 등 역사적 질곡 속에서 제단이 폐쇄되는 아픔도 겪었지만, 구례 군민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남악사를 새로 짓고 제례를 복원하여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구례가 품은 진정한 '헤리티지(유산)'이자 가장 빛나는 자부심입니다.

▲지리산남악제 남악제례 ⓒ 임세웅
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한가운데, 웅장한 지리산을 병풍 삼아 울려 퍼지는 제례악과 함께 헌공다례가 진행되는 모습은 경외감마저 자아냅니다. 향단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구례 군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땅에 평화가 깃들기를, 그리고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의 일상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두 손 모아 기원했습니다.
지리산의 맑은 기운을 가득 담아, 오늘 하루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