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수 의족 제작 전문가인 시분흐엉 산사티 국립재활센터 부소장이 우돔싸이 주립병원 현장에서 환자의 의족 착용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 ACN아시아콘텐츠뉴스
깨우퐁마니(42)씨는 태어날 때부터 한쪽 손이 없었다. 성인이 된 뒤에는 사고로 다리까지 잃었다. 그동안 의수와 의족을 써왔지만 형편상 몸에 맞는 보조기구를 제대로 갖추기는 어려웠다. 맞지 않는 보조기구 때문에 일상생활에 불편이 컸고 통증도 따랐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지난 3월 23일 라오스 북부 우돔싸이 주립병원에서 만난 깨우퐁마니 씨는 이번에 자신의 몸에 맞는 새 의족을 지원받게 됐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라오스 보건당국, COPE(Cooperative Orthotic & Prosthetic Enterprise)가 함께 추진하는 '라오스 북부 지역 재활서비스 접근성 향상 사업'을 통해서다.
우돔싸이를 비롯한 라오스 북부 지역(우돔싸이·보께오·루앙남타·퐁살리)은 수도 비엔티안에서 차로 18시간가량 떨어진 산악지대다. 교통 여건이 열악한 데다 주민 70%가 소수민족으로 이뤄져 있다. 사용하는 언어도 제각각이다. 지리적 고립과 언어 장벽은 곧 의료 접근성의 한계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북부 오지 주민들은 기본적인 재활치료조차 제때 받기 어려웠다.

▲5살 레나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보조기구를 착용한 채 걸음 훈련을 하고 있다.뒤편에는 8살 언니가 레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ACN아시아콘텐츠뉴스
국제기구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서도 접근성이 낮고 수혜 인구가 분산된 지역은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쉬웠다. 이번 사업은 한국이 그동안 지원이 닿지 않던 라오스 북부 취약지역에 최초로 재활의료 지원을 본격화한 사례다.
이번 사업은 단순한 보조기구 지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동안 한국이 라오스에서 추진해 온 불발탄 제거 및 피해자 지원사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재활의료 전달체계를 현지에 정착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씨엥쿠앙에서 검증된 지원 모델을 더 열악한 북부 지역으로 확장한 것이다.
캄빙 홍다라 우돔싸이 주 보건국 부국장은 "우리 지역은 라오스에서도 의료 여건이 매우 열악한 곳"이라며 "라오스 북부 지역에서 처음 실시되는 이번 사업이 단순한 장비 지원을 넘어 지역 의료 시스템 전반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의수·의족 제작 장비를 실은 특수차량이 라오스 북부 산악지대 보건소에 도착해 있다. 의료진은 이 차량을 이용해 병원 접근이 어려운 마을까지 직접 찾아가 현장에서 보조기구를 제작하고 재활 지원을 제공한다. ⓒ ACN아시아콘텐츠뉴스
이번 사업은 3월 23일부터 25일까지 우돔싸이 주립병원과 지역 보건소에서 진행됐다. 사업의 핵심은 거동이 어려운 환자들이 있는 산간 오지를 찾아가는 '모바일 클리닉'이다.
우돔싸이 시내에서 32㎞ 떨어진 후암으암 보건소에는 모바일 클리닉을 위한 임시 진료소가 마련됐다. 산길을 따라 몇 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주민들에게는 이 현장 진료소가 유일한 재활 창구다. 의족·의수를 제작하는 데는 세 차례 방문이 필요하다. 대상자를 선정한 뒤 신체 치수를 측정하고, 최종 장착과 미세 조정까지 거쳐야 한다.
현장에서 만난 불발탄 피해자 아스캄디(64) 씨는 "의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생활에 큰 차이가 있다"며 "이제 농사일도 더 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8살 언니와 함께 이곳을 찾은 5살 레나도 치료와 보조기구 지원을 받은 뒤 걷기가 한결 편해졌다.

▲의수·의족 제작 전문가인 시분흐엉 산사티 국립재활센터 부소장이 불발탄 사고로 오른손을 잃은 피해자 아스캄디에게 의수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 ACN아시아콘텐츠뉴스
이번 사업은 물자 지원에 그치지 않고 라오스가 스스로 재활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라오스 전역에서 의수·의족 제작을 전문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인력은 많지 않다. 원자재 상당수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비용 부담도 크다.
KOICA는 2029년까지 총 880만 달러를 투입해 우돔싸이 주립재활센터 신축, 물리치료사·의수족기사 양성, 의료 데이터 관리 체계 도입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단기 지원에 그치지 않고 현지 인력과 시스템을 함께 키우는 방식이다.
시분흐엉 산사티 국립재활센터 부소장은 "고품질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체계 구축과 이를 다룰 전문 인력 확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KOICA 직원들이 라오스 북부 현장에서 의족 제작을 돕고 있다. ⓒ ACN아시아콘텐츠뉴스
장소명 KOICA 라오스사무소 부소장은 "2022년부터 불발탄 피해가 컸던 씨엥쿠앙에서 현지 NGO인 COPE의 사업 수행 역량을 키워왔다"며 "그 결과 현지에서 사업을 맡을 역량이 갖춰졌고, 이를 바탕으로 이번에 북부 지역까지 사업을 확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KOICA의 목표는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라오스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데 있다"며 "지속 가능한 재활서비스 체계를 현지에 남기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씨엥쿠앙에서 검증된 모델을 북부 오지로 확장한 이번 사업은 한국 ODA가 단순한 원조를 넘어 현지의 자립 기반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제부턴가 국제협력에서도 실리와 효율, 즉 '가성비'를 따지는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한국은 가장 소외된 현장에 가장 필요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보여주기보다 자립 기반을 남기는 방식은 한국형 ODA가 지향하는 방향을 보여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ACN아시아콘텐츠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