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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사격 모습 이 사진은 청일전쟁사진첩에 나오는 일본군 사격 모습으로, 동학혁명기념관에 전시했었다.
일본군의 사격 모습이 사진은 청일전쟁사진첩에 나오는 일본군 사격 모습으로, 동학혁명기념관에 전시했었다. ⓒ 동학혁명기념관

다소 늦은 감이 있었으나 북접이 남접 중심의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은 천군만마를 만난 격이었다. 최시형은 각포 두령들에게 9월 18일 보은의 청산(靑山)으로 모이라는 동원령을 내렸다. 그리고 <초유문(招諭文)>을 발령했다.

초 유 문

주역에 이르기를 대재(大哉)라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자시(資始)하고 지재(至哉)라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자생이라 하니 사람이 그 사이에 만물의 영이 된지라. 부모는 낳고 스승은 가르치고 임금은 기르나니 그 은혜를 갚는데 있어 생삼사일(生三四日)의 도(道)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면 어찌 사람이라고 이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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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先師)께서 지나간 경신년(庚申年) 천명(天命)을 받아 도를 창명하여 이미 퇴폐한 강상(綱常)을 밝히고 장차 도탄에 빠진 생령(生靈)을 구하고자 하더니 도리어 위학(僞學)이라는 지목을 받아 조난순도(遭難殉道) 하였으니 아직도 원통함을 씻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31년이라. 다행히도 한울이 이 도를 망(亡)케 하지 아니하여 서로 심법(心法)을 전하여 전국을 통한 교도가 몇 10만인지 알 수 없으되 사은(四恩)을 갚을 생각은 없고 오로지 육적(六賊)의 욕을 일삼으며 척화를 빙자하여 도리어 창궐을 일으키니 어찌 한심하지 않으리오.

돌아보건데 이 노물(老物)이 나이가 70에 가까운지라 기식(氣息)이 엄엄하되 전발(傳鉢)의 은혜를 생각하면 눈물이 옷깃에 차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도다. 이에 또 통문을 발하노니 바라건대 여러분은 이 노부의 마음을 양찰하고 기필코 회집하여 비성을 다하여 천위주광(天威黈纊)의 아래 크게 부르짖어 선사의 숙원을 쾌히 펴고 종국(宗國)의 급난에 동부할 것을 천만 바라노라.(오지영, 앞의 책, 243~245쪽, <동학혁명백주년기념논총> (상), 동학혁명 100주년기념사업회)

최시형은 이 자리에서 하늘의 뜻에 이르렀음을 지적하면서 북접이 남접의 전봉준과 합세하여 무력항쟁에 나설 것을 명령하였다. 이로써 동학혁명은 남북접이 함께 봉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혁명 참여를 결정한 최시형은 신속하게 진영을 갖추도록 했다. 전경주의 포를 선봉, 정규석 포를 후군, 이종훈 포를 좌익, 이용구 포를 우익, 손병희를 종군통령으로 임명하여 각 포를 총지휘도록 하였다. 손병희는 북접군 총사령이 된 것이다.

북접 동학농민혁명군의 지역과 주도인물은 다음과 같다.(<천도교백년약사>(上), 250쪽, 천도교중앙총본부)
북접 산하 각지의 기포상황 북접 산하 각지의 기포상황
북접 산하 각지의 기포상황북접 산하 각지의 기포상황 ⓒ 김삼웅

때를 기다리던 북접 소속 동학도들은 9월 18일 각포 두령들의 지휘 아래 청산으로 모였다.

9월 18일에 신사(神師) - 교도참살의 보(報)를 듣고 각포 두령을 소집하여 청산에 모이게 하니, 이때에 장석(丈席)에 모인 자 수만인이었다. 이때까지 북접 각 포에서는 아직 신사의 명교(命敎)를 기다리고 동(動)치 아니하였더니 이때에 손병희ㆍ손천민 등이 장석에 거의(擧義)하기를 청한대 신사 가로되 "인심이 곧 천심이라 차는 곧 천운 소치(所致)니 군 등이 도중을 동원하여 전봉준과 협력하고 사원(師寃)을 신(伸)하며 오도의 대원을 실현하라" 하시고 손병희에게 통령기(統領旗)를 주어 일제히 전선에 서게 하였다.(이돈화, <천도교창건사> 제2편, 65쪽, 천도교중앙종리원)

손병희는 북접 소속의 통령이 되어 10만 명에 이른 동학농민군을 지휘하는 위치가 되었다.

해월은 손병희를 중군통령으로 삼고 동학농민군을 총지휘하게 하였다. 이로부터 진군을 시작하여 돈론촌(敦論村)에서 보은 수비병과 일전하여 크게 이기고 다음 날에는 전군을 2대로 나누어 1대는 영동·옥천에서 논산에 이르러 전봉준과 합세하고, 2대는 회덕 지명시(芝明市)에 이르러 청주 관군과 싸워 이들을 물리치고 논산에 이르러 전봉준의 남접 산하 동학농민군과 합세하였다.(앞의 책)

손병희가 북접의 중군통령으로 임명되어 직립 동학혁명의 최전선에 참여한 것은 그의 생애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 동학에 입도하여 수행과 포교 그리고 교조신원운동의 중견간부에서 이제 비록 훈련받지 않은 오합지졸이지만 보국안민·척왜척양의 기치를 든 혁명군의 리더로 바뀌었다. 중국 청대의 홍수전(洪秀全) 등 역사상 종교지도자가 혁명가로 변신한 경우는 적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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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동학농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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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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