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수산 상봉 ‘왕의 기도터’ 앞 풍경 ⓒ 이완우
지난 22일, 임실 성수산 '왕의 숲'은 겹겹이 이어진 산 능선마다 연두색 새싹 물결이 일렁이며 봄의 숨결과 생명력으로 가득하였다. '왕의 기도터'로 알려진 성수산 상봉의 '황룡바위'를 찾아갔다. 상이암(上耳庵)에서 지장재를 거쳐 기도터에 이르는 길은 산벚꽃이 지면서 야생화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왕건과 이성계가 이 산에서 기도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이후 고려와 조선의 건국 설화와 관련되어 지역에서 '왕의 숲'으로 불려왔다.
조선 후기 임실군수를 지낸 박시순(朴始淳, 1848∼1907)은 〈운불일기(雲紱日記)〉를 남겼다. 이 일기는 그가 임실군수로 재직하던 시절(1895~1897)의 기록을 담은 관직일기다. 제명인 '운불'은 임실의 옛 지명인 운수(雲水)의 '운'과 관인(인장)을 뜻하는 '불(紱)'을 합친 것으로, 곧 임실의 고을 관장을 상징한다.
박시순 임실군수가 남긴 〈운불일기〉에는 1895년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임실군수가 수행하는 관속들과 함께 상이암으로 행차하는 사흘의 여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일기에서 9월 13일에 사찰의 옛 자취를 상고하며 성수산 상봉의 '왕의 기도터'를 언급한다.
昔 麗太祖與道詵師 祈禱於寺後上峰(석 려태조여도선사 기도어사후상봉)
옛날 고려 태조가 도선사(道詵師)와 사찰 뒤에 있는 상봉에서 기도하였다.
經三七日 山上若有呼萬歲者三 及登寶位 創建此寺(경삼칠일 산상약유호만세자삼 급등보위 창건차사)
삼칠일이 지나 산 위에서 만세(萬歲)를 세 번 외치는 것 같았다. 마침내 보위에 오르고, 이 사찰을 창건하였다.

▲성수산 상봉 '왕의 기도터' 황룡바위 ⓒ 이완우

▲조선 태조 기도터 표지석 ⓒ 이완우
상이암 입구에서 약 2.4km의 거리에 있는 성수산 상봉의 '왕의 기도터'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상이암까지 직선거리로는 약 600m 남짓. 하지만 깎아지른 계곡의 너덜지대 지형 탓에 별도의 등산로가 없어, 깃대봉에서 지장재를 거쳐 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우회하여 이곳 '왕의 기도터'에 닿을 수 있었다.
기도터에는 '朝鮮太祖高皇帝祈禱處'(조선태조고황제기도처)라고 후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비석이 서 있었다. 임실군수 박시순이 〈운불일기〉에서 '왕건이 절 뒤의 상봉에서 기도하였다'는 기록 속 '상봉'이 현재 이 일대로 추정된다고 한다.
'왕의 기도터'에 우뚝 서 있는 칼로 자른 듯 반듯한 '황룡바위'는 웅장한 자태였다. 높이 8m, 길이 8m, 두께 1.5m 크기의 직육면체 화강암 바위는 거대한 성벽 같았다. '황룡바위' 아랫부분의 바위틈에 길이 7m, 원통형 지름 1.0m의 황룡을 닮은 화강암 암맥이 꿈틀거리는 듯한 모양이었다.

▲성수산 상봉 ‘왕의 기도터’ 황룡바위 하부 황룡 형상으로 보이는 암맥 노두 ⓒ 이완우

▲성수산 상봉 ‘왕의 기도터’ 황룡바위 하부 황룡 형상으로 보이는 암맥 노두 ⓒ 이완우
4월 하순의 봄, 기도터의 '황룡바위' 주위에는 아직 나뭇잎이 충분히 돋아나지 않았고 풀숲이 무성하지 않아 시야가 트였다. 험한 지형이지만 '황룡바위' 주위를 돌아보며 더 살펴보았다.
'황룡바위' 상단에서 60도 각도로 오른쪽 방향으로 아래로 내려오는 직경 1m의 화강암 암맥이 보였다. 이 바위 아래에 약 30도 방향으로 아래로 뻗어내린 직경 1m 길이 7m의 황룡 형상 암맥과는 다른 암맥이었다.

▲성수산 상봉 ‘왕의 기도터’ 황룡바위 상부 황룡 형상으로 보이는 암맥 노두 ⓒ 이완우

▲성수산 상봉 ‘왕의 기도터’ 황룡바위 중부 황룡 형상으로 보이는 암맥 노두 ⓒ 이완우
자세히 살피니 '황룡바위' 상단에서 보이는 암맥은 중단을 거쳐 아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단의 생동감 넘치는 암맥에 비하면 그 흐름이 완만했으나, 상단에서 중단을 지나 하나로 연결된 8m 길이의 암맥은 아래쪽 7m의 선명한 암맥과 맞닿아 있었다.
15m에 달하는 황룡 같은 형태의 암맥이 '황룡바위'의 정수리부터 바닥까지를 힘차게 내려오는 모습이었다. 상단에서 60도 경사로 내려오다가 중단에서 다시 30도 각도로 몸을 틀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듯한 역동적인 'ㄴ'자 형상이었다.
'왕의 기도터'에서 지장재로 되돌아와서 성수산 깃대봉을 거쳐서 약 1.7km 거리의 연화봉에 이르렀다. 연화봉에서 구룡쟁주 형세의 산줄기들이 상이암과 여의주 바위로 굽이치며 내려오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산줄기들의 능선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연초록 색감의 '왕의 숲'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성수산 연화봉에서 본 구룡쟁주 산세 ⓒ 이완우

▲성수산 야생화 산작약 ⓒ 이완우
연화봉에서 약 1.2km의 상이암 입구에 이르는 숲속 산행은 야생화를 마주하는 여정이었다. 숲속에서 뜻밖에 산작약을 만났다. 순백의 꽃잎이 겹겹이 감싸 안은 노란 수술과 붉은 암술의 대비가 선명하였다.
족두리꽃은 땅에 바짝 붙어 짙은 자줏빛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봄의 인사였다. 연달래는 키를 곧게 세우고 연초록 잎사귀와 분홍 꽃잎이 산행길을 훤하게 밝혀주었다.

▲성수산 야생화 족두리꽃 ⓒ 이완우

▲성수산 야생화 연달래 ⓒ 이완우
성수산 상봉의 황룡바위 일대 '왕의 기도터'는 지역 설화와 역사 기록이 겹겹이 쌓인 문화경관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운불일기〉와 같은 사료 기록과 민간 전승이 함께 전해지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자연경관을 넘어 인문·역사 자산으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성수산을 탐방할 때 일부 구간은 경사가 급하고 너덜지대와 암반 능선이 이어지는 험지로, 등산객의 주의가 필요하다. 성수산 '왕의 숲'의 바위 표면과 암맥 노두, 주변 식생은 한 번 훼손되면 복원이 어려운 만큼, 탐방객의 자발적인 보존 의식과 함께 체계적인 관리 방안 마련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