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이다. 올해 벚꽃은 유난히 서둘러 만개했다가 4월 초 뒤늦은 꽃샘추위 바람과 함께 분분히 낙화했다. 동생과 나란히 걸었던 동네 공원에도 벚꽃잎이 떨어졌다. 지난 2018년 1월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8년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눈 앞의 시간은 숨막히도록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 문득 고개를 들어 뒤돌아 보면 과거의 일들은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미 내게서 멀어지고 있다.
동생은 온라인 교육업체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웹디자이너로 근무하던 중 장시간 과로와 직장내 괴롭힘으로 우울증이 악화해 과로 자살로 사망하였다. 동생의 죽음은 2019년 10월 업무상 재해로 산재 인정되었다. 사망 직전 동생은 최소 4명 몫의 업무량을 혼자 감당하느라 야근에 시달리며 직장상사의 괴롭힘에 가까운 가학적인 노무관리에 힘들어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직장내 괴롭힘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이라 불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2019년 7월에 들어서야 비로소 시행되었다. 올해로 법 시행 7년차인데, 직장내 괴롭힘은 사라졌을까?
답은 '아니오'다. 직장내 괴롭힘 문제는 여전하고 심지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2024년 10월 근로복지공단과 고용노동부에서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업무상 재해 승인 건수는 2019년 20건, 2020년 72건, 2021년 131건, 2022년 138건, 2023년 185건, 2024년 8월까지 129건으로 해가 갈수록 늘었다. 2019년 이후 직장내 괴롭힘으로 사망한 노동자에 대한 산재 신청은 29건이었고 이 중 16건이 산재로 인정됐다.1)
지난 2023년 12월 '2022년 산재 자살 현황 국회토론회'에서 자살 산재 신청 97건 중 85건에 대한 전수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자살 사유 1위는 직장내 괴롭힘/성희롱이 33%, 2위는 과로 26%인 것으로 나타났다.2) 통계청의 발표를 보면 2024년 한해 동안 1만 4872명이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2024년 자살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으로 한국은 20년 넘게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 중이다. 앞선 산재 자살 현황 분석에서 주요 사망 원인으로 꼽힌 직장내 괴롭힘과 과로 문제만이라도 우선적으로 해결한다면 자살률을 일정 부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25년 8월 이재명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자살은 사회적 재난이라는 관점에서 정책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우선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야 그에 맞는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 먼저 노동자 자살 통계자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2022년 산재 자살 현황 국회토론회 자료집의 경찰청 통계자료를 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연평균 495명이 '직장 또는 업무상 문제'로 자살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같은 기간 근로복지공단의 자살 산재 신청건수는 연평균 102건으로 나타났다. 즉,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재해로 집계되는 자살건수는 경찰청에서 집계한 수치의 약 1/5에 불과하며, 이것은 대부분의 '직장 또는 업무상 문제'로 인한 자살 산재가 은폐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5.9.7 교토에서 열린 일본과로사연구학회 컨퍼런스에서 일본, 대만, 한국의 아시아과로사감시팀 활동가들과 함께 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 장향미
또한 정부에서 공개하는 자살 통계 정보가 매우 제한적이고 늦다. 일본의 경우, 자살 통계자료 발표 주체는 경찰청이며(한국은 통계청), 전월 자살 통계 자료가 다음 달에 발표되고 자료의 범위도 상당히 넓고 세부적이다.3) OECD통계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 1999년 자살률 25.5명에서 2021년 15.6명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일본의 자살률이 낮아진 데에는 일본중앙정부와 지자체, 민간단체가 유기적으로 자살예방체계를 추진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있다.4) 그 밑바탕에는 정확하고 신속한 자살 통계 자료의 분석과 공표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정부 기관의 보다 적극적인 행정 대응 및 관리 감독 강화가 필요하다. 2025년 8월 한 시민단체에서 직장인 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해도 고용노동부 등 관계 기관의 대응이 소극적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약 59%였다.5) 법시행 7년차에도 여전히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주요 이유 중 하나에는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 역시 포함된다.
몇 년 전 TV에서 미국 뉴욕에 있는 911 테러 추모 공원을 본 적이 있다. 그곳의 여러 추모 시설 가운데 가장 마음 깊이 와닿은 것은 추모 분수대였다. 거대한 심연처럼 크고 깊은 사각형 속으로 쉼없이 물이 흘러들어가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느끼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슬픔을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이 심장 한가운데 화살이 날아와 꽂힌 듯 그대로 박혔다.
나는 앞으로 남은 시간을 끝내 채울 수 없는 공허한 슬픔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불행의 대물림은 막아야 한다. 더 이상 일 때문에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정부가 산재 문제 해결을 위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기를 촉구한다.
1) 조선비즈, 2024.10.22, '직장 내 괴롭힘' 작년 185건 산재 인정
2) 매일노동뉴스, 2023.12.13, 직장인 자살 이유 1·2위, 직장내 괴롭힘과 과로
3) 조선일보, 2021.05.24, 자살률 OECD 1위 한국… "통계 부실 때문에 대책 마련 역부족"
4) 뉴시스, 2025.12.11, '자살률 25.5명 → 15.6명' 뚝 떨어진 일본… 예방정책 공유
5) SBS 비즈, 2025.08.31,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자 59%, 노동부 등 조치 소극적 평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장향미 님은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 과로자살 유가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