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TN 마포사옥 ⓒ 이정민
민주주의에 입각한 사회 어디에서도 방송을 단순한 상업적 재화로 취급하지 않는다. 여론을 형성하고 권력을 감시하며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는 역할에 더 큰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방송을 사회의 중추적 신경망 혹은 공론 공간으로 대접하고 있다. 상법이라는 일반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법이라는 특별법을 별도로 제정해 다루는 것도 방송의 소중함 탓이다. 방송의 소유 구조와 지배 구조를 공적인 규제의 대상으로 삼고 엄격히 다루는 당위도 그 같은 특별함으로부터 비롯된다.
특별법이 존재하며 그가 우선된다는 '특별법 우선 원칙'은 단순한 법 기술적 슬로건으로만 취급할 일은 아니다. 이는 방송 영역의 사회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자본 논리나 효율성 논리로 방송의 민주적 가치와 공정성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만든 일반의지의 표현이다. 따라서 방송법을 위반하거나 그 취지에 어긋난 그 어떤 상거래와 소유권 이전도 다른 법률적 근거를 내세워 정당화될 수 없다. 방송법의 잣대 앞에선 '이미 이루어진 거래'라는 기득권적 주장도 허언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방송 행정 역사상 유례없는 사건
2023년 윤석열 정권 아래서 YTN의 최다액 출자자 변경이 이뤄졌다. 대한민국 방송 행정 역사 상 유례없는 졸속과 파행으로 속행된 사건이었다. 소위 '2인 체제' 하에서 이뤄진 의결은 합의제 행정기관인 방통위(방송통신위원회)의 존립 근거를 부정한 위법 행위였다. 법원은 2025년 1심에서 승인 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한 행정은 그 내용과 관계없이 원천 무효임을 천명한 결정이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심사 과정도 민주주의라는 정체를 부정하는 일탈적 행정의 연속이었다. 지원한 측은 며칠 만에 작성한 부실한 기본계획을 제출하였다. 그를 놓고 단 일주일 안의 의견 청취로 겉핥기식 심사를 행했다. 유진그룹이 제출한 변경 신청서 안 내용에는 표절 혐의에 가까운 타 문건의 인용도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원저자의 주장을 정반대로 해석하는 왜곡도 담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는 검증 과정이 아닌 통과를 목적으로 이뤄진 요식행위였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방통위가 직무 유기를 넘어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는 이유다. 부정한 신청과 심사에 더해 방통위원 2인에 의한 최종 결정이 이뤄졌으니 역사상 유례없었다는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새롭게 출범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는 이전 체제의 과오로부터 자유스러울 순 없다. 2025년에 이뤄진 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과거의 위법성을 인정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를 마련하긴 했다. 그러나 단순히 재판의 결과를 수용했다는 사실만으로 면책되진 않는다. 방미통위는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사안을 해결하려는 더욱 적극적 자세를 취할 의무가 있다. 이재명 행정부 대부분은 과거사라는 역사적 부채를 안고 있고 방미통위도 그 해결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롭진 않다.
문제를 풀기 위한 몇 가지 단계적 조처
문제를 풀기 위해선 몇 가지 단계적 조처를 해내야 한다. 우선 방미통위는 승인 과정에서 있었다고 비판받아 온 불비한 승인 요청, 졸속 심사와 최종 결정에 대한 철저한 자체 조사를 단행해야 한다. 책임져야 할 인사를 가려내고, 부당한 명령과 절차 생략을 밝혀내야 한다. 그런 다음 조사 결과에 따른 행정 처분을 내릴 필요가 있다. 이어서 국가 행정의 신뢰를 무너뜨린 위법, 탈법행위에 대해 시민 앞에 진솔하게 사과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자기반성과 과거 청산이 선행되어야 방미통위의 이후 행정 명령이 도덕적이고 실질적 권위를 갖추게 된다.
처벌과 사과라는 선결 과제를 마친 후 방미통위가 도달해야 할 결론은 명확하다. 위법한 절차와 부정한 신청서에 기반한 YTN 소유 구조 변경 승인을 최종적으로 무효화하고 YTN의 새로운 체제 수립을 도와야 한다. 이미 방미통위 위원 몇이 예상했듯이 그 같은 실천에는 엄청난 반발이 뒤따를 전망이다.
유진그룹은 상법을 내세워 사유 재산권과 거래의 안정성을 주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방미통위는 방송법의 취지를 더 부각하며 부정한 상거래의 지위 주장을 넘어서야 한다. 방송법을 어긴 소유권 이전은 정당화되기 어려우며 이를 바로잡는 것은 행정의 재량이 아니라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방미통위의 의무임을 재천명해야 한다.
최근 방미통위는 회의를 열어 YTN 의제를 주요 우선 안건으로 상정하였다. 신중을 기할 목적으로 법률 자문집단을 가동하는 등 적절한 처리를 꾀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위법한 과거를 바로잡고 방송의 공적 가치를 회복하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박수받을 만한 움직임이다.
지금보다 훨씬 과감하고 신속해야 한다
신중함과 함께 방미통위가 유념해야 할 사안이 있다. YTN 문제의 해결은 한 방송사의 문제 해결 이상임을 인식해야 한다. 문제의 해결이 한국 언론 생태계 전반에 막대한 파급효과를 끼칠 수밖에 없음을 놓쳐선 안 된다. 방미통위의 YTN 문제 처리 실력이 방송 4법의 실행과 연관될 개연성이 높다.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의 각종 사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방송을 매각, 매입하는 대상으로 받아들일 인식을 잔존하게 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 이처럼 YTN 문제의 원만한 해결은 방미통위가 앞으로 행할 방송행정의 순항과 미디어계 전체의 민주화 여정에 중요한 방향타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따라서 방미통위의 YTN 문제 해결을 위한 행보는 지금보다 훨씬 과감하고 신속해야 한다. 법률적 검토라는 명분 아래 지체하며 결정을 미루는 것은 자칫 또 다른 직무 유기로 비쳐질 수 있다. 방미통위는 단순히 사법부의 판단을 수동적으로 집행하는 기구가 아니다. YTN 해결 행보를 통해 방송법의 정신을 능동적으로 구현하는 책임 있는 행정기관임을 드러내야 한다.
행정의 정당성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등장할 정치계, 자본계의 저항에 흔들리지 않고, 방송법에 담긴 준엄한 법 원칙과 좋은 방송을 취할 국민의 권리를 방향타로 삼아야 한다. 역사는 지금 방미통위가 그 책임을 다하는지, 아니면 다시 회피하는지 시선을 집중해 모든 과정을 엄중히 기억하며 기록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동시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