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원 광한루 ⓒ 이완우
지난달 30일, 제96회 춘향제가 시작되는 날. 남원 광한루원을 찾았다. 광한루원 잔디밭에 400년 수령의 팽나무가 5월의 신록을 머금고 있었다. 광한루원 광한전 누각을 지나서, 춘향사당을 찾아갔다.
춘향제의 상징적 주체는 '춘향'이다. 광한루원 춘향사당에 춘향의 영정이 봉안돼 있다. 그런데 춘향사당이 조용하다. 춘향제의 핵심인 춘향 제사를 이곳 춘향사당에서 거행하지 않고, 광한루원 무대에서 위패를 설치하고 진행하기 때문이다. 춘향사당이 춘향제의 중심 공간으로 충분히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춘향제에 담긴 독립운동 성격과 정체성
춘향제의 태동 과정에는 항일 민족문화 운동의 성격이 담겨 있었다는 평가가 있다. 1931년 일제강점기 시절, 남원의 유지들과 권번 기생(최봉선 등)이 주도하여 춘향사당을 건립하고 춘향제를 시작했다.

▲남원 광한루 470년 수령의 팽나무 ⓒ 이완우

▲남원 광한루 춘향사당 ⓒ 이완우
1931년 최초 춘향제는 춘향의 절조와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제사(제향)가 중심이 되었고, 이후에는 예인(판소리 명창, 국악인, 권번의 기생 등)을 중심으로 한 향연(공연과 판소리 등)이 베풀어졌다.
춘향제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민간이 주도하여 해마다 명맥을 이어오며 전국적인 민족 문화 축제로 성장했다. 일부 향토사 연구자들과 문화계 인사들은 초기 춘향제를 일제강점기 민족문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광한루원과 요천변, 춘향테마파크 등 8곳의 무대 공간에서 6일간 진행되는 춘향제 동안 112개의 행사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그러나 춘향제 96년의 역사를 살펴보거나, 춘향제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목적의 행사는 프로그램 안내 팜플릿 목록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춘향제 프로그램 안내 팜플릿의 1500자가 넘는 내용 중에 춘향제의 제의와 직접 관련된 설명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남원 96회 춘향전 무대 한 곳 ⓒ 이완우
광한루원 정문과 요천변의 승월교 부근에는 '최초춘향영정복위시민연대'의 현수막이 펼쳐져 있었다. "민족의 혼을 담은 최초 춘향 사당 복원과 최초 춘향 영정을 봉안 후 100주년을 맞이하라"는 목소리가 춘향제의 시작과 함께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곳 현수막에는 최초 영정(1931~1961), 두 번째 영정(1961~2020.9)과 세 번째 영정(2024.5~현) 사진이 나란히 비교돼 있었다. 최초 영정과 세번째 영정 중에서 관광객들이 스티커를 붙이는 '춘향 영정 선호도' 이벤트가 진행 중인데, 최초 춘향 영정에 더 많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최초 춘향 영정 복원을 희망하는 문구를 쓴 노랑 리본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남원 광한루 정문 옆 최초 춘향 영정 춘향사당 복위 주장 현수막 ⓒ 이완우

▲남원 요천변 춘향 영정 복위 주장 스티커 판. (왼쪽 영정, 1961~2020.9. 중앙 영정, 1931~1961, 오른쪽 영정, 2024.5~현재) ⓒ 이완우
시민단체의 최초 춘향 영정의 복원 주장에 대하여, 남원시는 몇 년째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남원시는 '기존 영정 논란 이후 전문가 자문과 시민 의견수렴 등을 거쳐 새 영정을 봉안했다'라는 입장이다.
유네스코 무형유산 추진, 시민 참여 부족 논란

▲최초 춘향 영정 봉안 주장 선언서 낭독하는 시민단체 (2026.4.29. 남원 시청 앞) ⓒ 최초춘향영정복위시민연대
춘향제가 시작되는 광한루원에서 지리산 구룡폭포 방향으로 3.5km 위치에 있는 남원스위트호텔을 찾아갔다. 지난달 30일, 이 호텔에서 '남원 춘향제 국제포럼(2차년도)'이 열렸다. 춘향제를 유네스코 무형유산 모범사례로 등재하기 위한 목적이라 했다.
남원시는 춘향제가 국내 지역축제 중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축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춘향가를 기반으로 전승성과 공동체 참여라는 무형유산의 핵심 가치를 축제 형태로 구현해 왔다는 점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원 춘향제 국제 포럼. (2026.4.30. 남원 스위트호텔) ⓒ 이완우
이에 따라 남원시는 추진단을 중심으로 춘향제의 역사와 전승 체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학술 연구와 기록화 작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포럼 관계자는 "춘향제의 역사성과 공동체 전승 구조를 국제 기준에 맞춰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국제포럼은 공식 춘향제 행사 프로그램 안내 팜플릿에는 홍보되지 않았다. 1931년부터 춘향제는 민간이 주도한 축제였다. 일부 시민단체는 시민 공론화 과정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시민은 "최초 춘향 영정조차 외면하는 남원 춘향제가 과연 유네스코 무형유산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는가"라고 묻고 있었다.
춘향제의 뿌리이자 정신인 '최초 춘향 영정'을 외면한 채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는 과정을 일부 시민단체는 문제 삼고 있었다. 춘향제 국제포럼 행사장에서 김태윤 시민운동가가 말했다.
"유네스코 등재를 말하기 이전에, '우리는 이 축제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냐'라고 묻고 싶어요. 춘향제 1회부터 지금까지의 기록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가? 수많은 조선 백성들의 참여와 성금 모금 등의 자료는 데이터로 충분히 남아 있는가? 일제강점기의 춘향제 자료는 적극적으로 발굴 보존되고 있는가? 오늘 포럼을 보면서, 자료가 없고 정리가 안 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춘향제는 등재 대상이기 이전에, 먼저 복원해야 할 공동체 삶의 역사입니다."
춘향제 100주년을 위한 올바른 준비
앞으로 4년 뒤면 춘향제 100주년을 맞이한다. 일부 남원 시민들과 문화계 인사들은 국가나 지자체의 일방적인 주도에서 벗어나, 전국 단위의 민간 주도 기념 사업회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김양오 역사동화작가는 말했다.
"춘향제는 전국의 여성 예술인들이 연대하여 문화 예술활동으로 일제에 저항한 민족 운동입니다. 신분 해방을 지향한 실천적 운동이었다고 봅니다. 춘향제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여성과 민간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결성되기를 희망해요. 전국의 예술가와 역사학자들이 연대하여 춘향제에 담긴 독립운동과 여성 예술가의 저항 정신을 인류 보편의 가치로 승화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봐요."

▲남원 광한루 방장정 천정 단청 학 문양 ⓒ 이완우

▲남원 광한루 400년 수령의 왕버들 ⓒ 이완우
다시 축제 현장인 광한루원으로 돌아왔다. 방장정 천정에 단청으로 그려진 백학이 무리 지어 하늘을 향해 힘차게 비상하는 듯했다. 광한루원 춘향사당 앞에 수백 년을 버텨온 400년 수령의 왕버들이 긴 세월의 풍상을 견디고 있었다.
자연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역사를 증언하는 듯하다. 춘향제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둘러싼 논의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