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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제물포항 상륙 1894년 동학농민혁명 진압을 명령 받고 제물포항에 상륙한 일본군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동학농민혁명 일본지역 현지답사 자료집(한국일보자료사진)에 실린 사진이다.
일본군 제물포항 상륙1894년 동학농민혁명 진압을 명령 받고 제물포항에 상륙한 일본군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동학농민혁명 일본지역 현지답사 자료집(한국일보자료사진)에 실린 사진이다. ⓒ 동학혁명기념관

일본군은 6월 21일(금) 자정 동소문에 불을 지르고 경복궁을 침입하여 왕을 연금하고 운현궁으로 물려가 대원군을 강제로 입궐시켰다. 고종을 협박하여 모든 정무를 대원군에게 맡긴다는 교서를 받아냈다. 그리고 친청파 대신들을 섬으로 유배시키고 친일내각을 발족하였다. 일본군은 남산의 왜성대에 대포 6문을 설치하고 종로에도 포대를 만들어 시민들을 위협,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용산에 군영을 설치하였다. 이때 일본군이 설치한 용산의 외국군 기지는 최근까지 미군기지로 이용돼왔다.

일본군은 정부에 내정개혁안 20개조를 제시했는데, 그 중에는 "각 아문은 정교하고 숙달한 고문관을 외국에서 초빙하여 채용할 것."이라는 조항을 두어 일본인의 내정개입을 법제화하는 치밀함을 드러냈다. 뒷날 '고문정치'의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정부는 친일내각으로 바뀌고 일본군은 황실을 보호하고 정국을 안정시킨다는 구실로 동학농민군의 학살을 자행하였다. 한편 정부를 장악한 일본은 7월 26일 친일정부를 상대로 '양국맹약'을 맺었다. 그 내용은 청일전쟁에서 조선이 일본군에 협력하고 일본군에 필요한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농민군이 재봉기하면 일본군이 관군과 협력하여 이를 '토벌'한다는 내용도 들었다. 이로써 종주권이 청국에서 일본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고, 일제의 침탈이 본격화되었다.

전국 각처에서 동학농민군이 속속 일어났다. 전봉준은 전주에서, 손화중은 광주에서 일어나고, 경기도 죽산과 안성에서도 농민군이 궐기하였다. 이에 앞서 충청도에서는 4월에 회덕·진잠·목천에서, 6월 이후에는 홍성·공주·청주·보은·옥천·청주 등지에서 봉기하였다. 경기도에서는 7~8월에 남양만·죽산·안성·이천에서, 강원도에서는 같은 기간에 원주·영월·평창·정선에서, 경상도에서는 대구·진주·사천·곤양·합천·신영·경주·황간·의흥·성주 지방에서 동학농민군이 봉기하고 예천에서는 농민군이 한때 관아를 점령하였다. 이 시기에 일본군은 관군과 협동으로 동학농민군 학살전을 펴서 전국 각처에서 수많은 동학농민군이 학살되었다. 9월 재봉기 때의 동학군 진용과 군세는 다음과 같다.
9월 재봉기 동학군 진용과 군세 9월 재봉기 동학군 진용과 군세
9월 재봉기 동학군 진용과 군세9월 재봉기 동학군 진용과 군세 ⓒ 김삼웅

전봉준은 이와같은 상황에서 더 이상 방관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남·북접 사이에서 비교적 중도의 위치에 있던 오지영을 최시형에게 보내어 타협의 길을 모색하게 하였다. 그리고 남·북접 연합군의 편성을 이끌어냈다. 마침내 최시형은 각 두령들에게 교도들을 거느리고 청산(靑山)에 모이도록 하는 <초유문(招諭文)>을 반포하기에 이르렀다.

초 유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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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易經)에 이르기를 큰 것은 건원(乾元)이라. 만물이 여기서 비롯하고, 곤원(坤元)에 이르러 만물이 자생(資生)하는데 인간은 그 사이에 있어서 만물의 영(靈)이 되었다. 아버지가 살리고 스승이 가르치고 임금이 기르니 그것은 보수(報酬)의 의에 있다. 생을 가지고 삼사(三事)의 도가 있는 것을 모르면 어찌 사람이라 하겠는가? 선사(先師)는 경신년에 명을 받아 창도하여 인류의 기강을 밝히고 장차 도탄에 빠진 영생을 구하고자 하다가, 도리어 위학(僞學)의 지목을 받아 조난귀천하여 아직도 그 설욕을 펴지 못한 것이 31년이라.

오직 하늘의 도움으로 이 도(道)가 끊어지지 않고 서로 심법(心法)으로 전하여 전국 교도가 수십 만 명에 달하게 되었거니와 망령되이 사은(四恩)의 보(報)를 생각하고 오로지 육적(六賊)의 욕(欲)을 섬기고 척화를 자칭하여 기식(氣息)이 다해 가나 전발(傳鉢)의 은혜를 생각하니 눈물이 옷깃을 적실 뿐이다.

생각다못하여 여기에 다시 통문을 내니 바라건대 여러분들은 이 늙은이의 마음을 이해하여 극기회집하여 성의를 다하여 하늘 아래 크게 부르짖어 선사의 숙원(宿冤)을 풀고 종국(宗國)의 급난에 다 같이 나아가기를 바라는 바이다.(오지영, <동학사>)

보은 수비대를 격파하고 회덕에 이르러 관군과 싸워 이들을 물리치고 논산에 도착하였다. 논산에 동학농민군의 대본영을 설치하였다.

덧붙이는 글 |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횃불#촛불#응원봉#동학농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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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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