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6.05.06 09:30최종 업데이트 26.05.06 09:30

'거지방' 다룬 소설 읽고 되돌아본 것

[서평] 21명의 작가들이 연재한 <소설, 한국을 말하다>

최근 <소설, 한국을 말하다>(2024년 8월 출간)라는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책은 <문화일보>에서 2023년 가을부터 2024년 봄까지 21명의 유명 소설가들이 한국사회에 대해 매주 돌아가며 연재한 4천 자 안팎의 소설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저자들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진단하는데, 주제와 소재는 자유롭게 선정했다. 이들은 고물가, 다문화, 자연인 등 특정 주제에 대해 각자의 상상력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소설들이 우리 모습을 담고 있어 이해하는 데 막힘이 없다. 이야기는 대부분 현상을 넘어 문제 의식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책 가운데 두 개의 소설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소설, 한국을 말하다> 책표지, 21명의 유명 소설가들이 한국사회의 여러 현상과 문제를 짚어내고 있습니다.
<소설, 한국을 말하다> 책표지, 21명의 유명 소설가들이 한국사회의 여러 현상과 문제를 짚어내고 있습니다. ⓒ 이혁진

이서수 소설가의 <우리들의 방>은 처음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다. 여기서 방은 20~30대들이 모인 '거지방'을 일컫는다. '거지방'은 알뜰하다 못해 아끼고 절약하는 젊은 청춘들이 자신들의 어려운 경제 생활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공유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다. 이를테면 버스비를 아끼려고 몇 정거장 거리는 기본으로 걷고, 헬스장 등록비가 없어 산스장(산에 있는 공짜 헬스장)을 이용하는 등 알뜰한 생활을 서로 격려하는 곳이다.

AD
<우리들의 방>은 MZ세대인 주인공이 언니와 동거인 해영 두 사람과의 간극을 보여주고 있다. MZ세대는 이전 세대가 자신들의 상황과 가치관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인공은 거지방이 거지 근성을 기르는 곳이 아니라 합리적 소비를 하는 청년들의 연대라며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목숨 걸고 돈을 아끼고 있다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중략) 재미있는 놀이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혼자 아끼는 것보다 타인과 연대하여 절약하면 미션을 수행하는 기분이 들어 외로움이 한결 줄어들었다. 낙관적인 미래를 조금씩 꿈꾸게 되는 효과도 있었다."(51~52쪽)

거지방이라는 표현에 당혹 했지만 젊은이들의 어려운 현실로 이해됐다. 사실 나 같은 베이비부머 세대는 가난한 시절에도 궁핍을 내색하는 것은 또 다른 수치로 생각했다. 이심전심 서로 연민을 느꼈지만 요즘 MZ세대처럼 궁핍한 생활을 드러내놓는 행위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다.

경제적 빈곤 청춘들이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다. 문제는 젊은이들의 암울한 상황이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 되리라는 전망이다. 이에 기성세대로서 이들에게 올라갈 사다리를 제대로 만들어주지 않고 나약함을 탓하기 바쁘지 않았는지 반성했다.

한편, 정이현 작가의 <남겨진 것>은 우리들과 함께 사는 반려동물을 다루고 있다. 우경과 영민은 평범한 부부로 아홉 살 딸 솔이의 반려동물 분양을 고민하다가 우경이 친정에서 키우는 강아지 우동이를 떠올린다. 재작년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우동이는 아버지와 더 가까워지고 서로 의지하는 사이다. 독거 노인 친정아버지와 강아지 우동이와의 일상을 묘사하는 장면은 반려견과 인간과의 유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아버지와 우동이는 그렇게 둘이 살기 시작했다. 뒷산을 매일 오르고, 당근과 고구마와 닭가슴살을 삶아 나누어 먹고, 천변 산책로를 오래 걷고, 일일 드라마와 축구 중계방송을 같이 보고, 한 침대에서 잠들었다 일어났다. 꽃이 피었다 지는 길도, 이슬비가 오는 길도, 함박눈이 내리는 길도 함께 지났다."(187쪽)

어느 날 아버지마저 급성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는데, 가족들은 동시에 우동이의 안위를 걱정한다. 우경과 솔이는 한가족이나 다름없는 우동이가 있는 집으로 향한다. 반려견 우동이의 돌봄은 아버지의 입원만큼 중요한 문제다. 소설은 우동이가 가족 만큼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암시하고 있다.

이외에 19명의 소설가들도 다양한 필치로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 있다. 책을 덮으면서 요즘 세상을 바꾸고 있는 인공지능(AI)에 대한 소설가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AI를 바라보는 소설가들의 상상력과 통찰력에서 독자들은 새로운 영감을 길어 올리고 희망과 용기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우리들의 '자화상'이며 여러 생각할 거리를 담고 있다. 특정 주제에 대해 콕 집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콩트 같은 짧은 소설은 소설가들의 자신의 작품과 그 결이 달라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소설, 한국을 말하다

장강명, 곽재식, 구병모, 이서수, 이기호, 김화진, 조경란, 김영민, 김멜라, 정보라, 구효서, 손원평, 이경란, 천선란, 백가흠, 정이현, 정진영, 김혜진, 강화길, 김동식, 최진영 (지은이), 은행나무(2024)


60대 이상 시민기자들의 사는이야기
#소설한국을말하다#거지방#반려견#이서수#정이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