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물포에 상륙한 일본군1894년 6월 13일, 인천 제물포에 도착한 와카노우라 마루와 일본 혼성여단의 선발대대. 청군이 동학군 진압을 구실삼아 조선에 들어오자 일본은 그 다음날 제1군 사령부 및 제3사단 주력과 후속부대를 조선에 상륙시켰다. 일본군은 청군을 물리친 뒤 동학군 소탕에 나섰다. 이 사진은 동학혁명기념관에 전시되었다. ⓒ 동학혁명기념관
일본 낭인패와 밀정, 군사들이 수집한 각종 정보는 주한 일본 영사관을 통해 즉각 일본정부에 보고되고 필요한 지침을 하달받아 이를 시행하였다.
다음에 인용한 '보고서'와 '지침'을 살펴보면 일본군의 동학농민군 학살에 따른 병력증원 등 한국침탈이 정확한 정보와 일본 정부의 치밀한 작전에 따라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1894년 10월 21일 주한 임시대리공사 삼촌준(杉邨濬)이 외무대신 육오종광(陸奧宗光)에게 보낸 보고서다.
기밀제205호 본124(機密第205號 本124)
동학당 진압을 위한 원병 파견 결정(東學黨 鎭壓을 위한 援兵 派遣 決定)
이 나라 경상·전라·충청 3도에서 동학당이 다시 봉기한 데 대해 지난번부터 계속 전보품신을 드렸습니다만 요즘에 와서 동학당의 기세가 더욱 창궐하여 끝내는 경성에까지 쳐 올라올 것 같은 형황(形況)이 현저하게 나타난 모양이므로 이 나라 정부의 제 대신 특히 개화파 인사들이 극심한 공포에 빠져 자주 우리에게 원병차견을 요청해 왔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전보 품신을 드린 끝에 재용산 병참부 소속 수비병 중에서 파견키로 결정을 보게 되었으므로 원병청구의 건으로 새삼 다시 공문으로 외무대신께 말씀 드렸었습니다. 그런데 대원군께서는 그전에도 보고 드린 바와 같이 처음부터 우리에게 원조를 요청하는 것은 물론 자국의 군대로 정토(征討) 하는 것 마저 그다지 원치 않는 것 같은 눈치여서 갑자기 결말이 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외무대신과 기타 인사와도 내적으로 타협을 본 다음 새삼 다시 이쪽에서 동학당 폭거의 사정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우리가 원조하기 위해 출병하게 되었다고 별지갑호 사본과 같은 조회를 보냈던 바 이에 대해 외무대신이 동당의 소행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 없어서 드디어 진무 차 출병하게 되었으니 동심협력의 원조를 해 주기 바란다고 별지 을 호와 같은 회답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지난 17일을 기해 재 용산 수비대 중에서 2개 소대 만을 출발시켰습니다. 단 부산방면으로부터는 현재 적정(賊情)을 정찰 중이어서 그 정찰 결과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접한 다음에야 2개 소대를 파견하게 될 것이라고 실전(室田) 총영사로부터 전보가 왔습니다.
이상 개략적인 전말을 말씀드립니다.
1894년 10월 21일
임시대리공사 삼촌준(杉村濬)
다음은 1894년 11월 9일 정상(井上) 전권공사가 이등(伊藤) 병참감에게 보낸 기밀문건이다.
기밀 제210호
금일자 귀 서한을 받아보았습니다. 동학당 진정을 위해 파견하는 제19대대에 부여할 훈령과 일정표를 보내오니 일람하시고 또 별지와 같은 저의 의견을 첨부해서 보냈사오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별지안 중 수정할 주요점은, 첫째, 우리 군대의 파견은 명분상 한국군을 응원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실제로 한국군의 진퇴와 행동은 우리의 지휘 감독 하에 두게 해서 우리의 지휘에 복종케 할 것.
둘째, 우리 군대는 전라도 깊숙이 들어가서 그 도의 적도들의 근거지라 일컬어지는 남원지방을 소탕할 것.
셋째, 적도들이 강원도와 함경도 및 경상도 3도 방면으로 도주하는 것을 엄히 방비할 것, 이 세 가지 점입니다.
그리고 셋째 점에서 염려하는 바는 만일 적도가 함경도로 도피해서 러시아 국경을 침범하는 일이 발생하여 장차 러시아와 한국 간에 곤란한 문제를 야기시키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며 경상도는 적도가 이미 진정되고 잔당이 모두 전라도로 퇴산해서 사민의 생업에 복귀, 안주하고 있다는 통지가 어제 재 부산 실전(室田) 총영사로부터 왔으므로 다시 그곳을 교란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나머지는 별지의 사연으로 양지하시기 바라며 또한 비도의 거괴(巨魁)들의 인명록은 당 공사관에서 조사한 것과 조선정부에서 조사한 것을 이미 보내드린 바 있으며 더욱이 동당에 관해 이 나라 군무대신 대리로부터 청취한 조목들은 추서로서 보내오니 파견할 각 부대장에게 시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조선정부에서 파견한 교도중대는 말씀해 오신 바도 있으므로 이들을 양지에서 머무르게 하여 중로로부터 진군해 가는 우리 중대를 기다리게 해서 모든 일을 협의한 후에 진군하라고 이곳 수비대 사령관이 백목(白木)·궁본(宮本) 두 위관에게 명령해 두었다 하오니, 이 말을 우리 중대장들에게 시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 교도중대 외에 전후로 분산 파견된 조선군대도 편의에 따라 각도로 진군할 우리 군대 사관의 지휘에 따라 행동시키도록 하는 것이 가장 긴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를 위해 따로 4명의 조선통변을 준비시켜 우리 병사의 용무에 충당하도록 조선정부 당국자에게 말해 두었사오니 이 일에 대해서도 역시 함께 시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회답삼아 말씀드립니다.
1894년 11월 9일
정상(井上) 전권공사
덧붙이는 글 |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