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지는 6월 3일은 ‘무주택자의 날’입니다. 지난 제21대 대통령선거 역시 같은 날 치러졌습니다. 선거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동네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세입자의 삶’을 중심에 둔 정책과 선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전세사기가 사회적 재난이 되어 대한민국을 휩쓴 이후,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동네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세입자들의 목소리를 한 사람씩 천천히 들어보고자 합니다. 이번 <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인터뷰 시리즈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약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입자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기록하고 전하고자 합니다. 이 시리즈는 민달팽이유니온과 서울시전세피해세입자연대가 함께 꾸린 '세입자의 목소리를 찾아서' 팀이 기획·제작했습니다.
신혼집을 준비하던 시기, 이사를 5일 앞두고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배우자가 2년간 살던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다세대주택. 임차권등기를 설정하려 했지만, 위반건축물이어서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다행히 공증(차용증)을 쓰고 약 5일 만에 이사를 나올 수 있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보증금 3000만 원은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저희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은해씨에게 '운'에 기대지 않고도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에 대해 물었다.
'내 동네'라는 감각이 생긴 동네

▲이은해씨가 옥바라지선교센터의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울시 서대문구 북가좌동에 사는 30대 이은해입니다. 옥바라지선교센터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고, 주말에는 사역하는 전도사입니다. 배우자가 지난 2022년부터 강서구 가양동 다세대주택에서 전세로 살고 있었는데, 결혼으로 신혼집을 구해 나오는 과정에서 보증금 95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어떤가요?
"집값이 저렴하고 6호선으로 사무실까지 갈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북가좌동에 오게 됐어요. 연고는 없었죠. 동네를 좋아하게 된 건 '큰 마트'가 아니라 작은 '야채 가게'가 있어서예요. 채소를 소분해서 파는데, 반만 필요하다고 하면 반만 주세요. 그렇게 장 보는 게 일상이 됐어요.
불광천에서는 밤에도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고, 빌라 이웃들과는 귤이며 떡을 나누는 사이가 됐어요. 처음으로 서울에서 '내 동네'라는 감각을 느꼈죠. 퇴근하고 야채 가게에서 장을 보고, 운동을 가고, 불광천에서 친구를 만나고, 동네 가게 사장님들과 얼굴을 트는 루틴이 생기면서 동네에 소속감이 생겼어요.
딱 2년 살았더니 안정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집주인이 바뀌어서 나가야 해요. 오래오래 살 줄 알았고, 그에 맞춰 여러 계획도 세웠는데 제가 원해서 가는 게 아니라서 아쉬움이 큰 이사예요."
- 세입자로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늘 불안정해요. 언제 이사를 가야 할지 모르고, 무엇보다 제 집을 제가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도 답답하죠. 못 하나 박아도 눈치를 보고요. 이번 집주인도 '절대 못을 박지 말라'고 했어요. 2년이든 6년이든 살 건데 '내 집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죠.
빌라 반상회에서도 거리감을 느꼈어요. 저희 빼고 다 집주인이 직접 살고 있거든요. 옥상에서 물이 새서 수리하자는 공고가 올라왔는데, 물이 새는 곳은 저희 집이었어요. 정작 피해를 받은 건 저희인데, 반상회에 들어가거나 단체 대화방에 낄 수도 없어요. 문에 귀를 대고 반상회를 들어본 적도 있어요. 사는 기간만이라도 껴달라고 했는데 '집주인들 방'이라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 배우자의 보증금 미반환 피해, 어떤 상황이었나요?
"강서구 가양동 다세대주택, 전세 9500만 원이었어요. 이사 3개월 전 나가겠다고 구두로 말했고, 1개월 반 전에는 문자로도 남겼어요. '알겠다'는 답장까지 받았고요. 그런데 이사 5일 전, 집주인이 찾아와서 '못 돌려주겠다'는 거예요.
저희는 이미 다른 집에 계약금을 넣어둔 상태였어요. 돌려주셔야 한다고 하니까 '내가 계약금을 줄 테니 그냥 여기서 살면 안 되냐'고 하더라고요. 그 자리에 마침 제가 함께 있었어요. 너무 뻔뻔하게 얘기하는 데 정말 분노가 치밀었어요."
- 5일 동안 어떻게 대응하셨어요?
"세입자 연대체인 민달팽이유니온에 지인이 있어서 연락했고, 법무사도 찾아갔어요. 그 과정에서 임차권등기를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돌아와 보니 문제가 있었어요. 그 집이 '위반건축물'이어서 건축물대장에 호수 자체가 없었던 거예요.
남편이 계약할 때 등기부만 보고 건축물대장은 확인하지 않았대요. 가족들과 함께 계약하러 가기도 했었고, 부동산에서 척척 진행해 주니 그런 생각을 못해봤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임차권등기 설정이 불가능했고, 집주인은 같은 건물 다른 호에 이미 임차권등기가 걸려 있어서 '그것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버텼어요.
이후 집주인이 '공증을 서자'고 해서 차용증을 썼어요. 2025년 12월 31일까지 9500만 원을 돌려주고, 그전까지는 매달 월 5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어요. 이후 일부 금액을 돌려받았지만, 3000만 원은 아직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2026년부터 받고 있는 월 50만 원은 남은 3000만 원에 대한 법정 최고 이자로 책정해 받고 있어요."

▲은해씨가 인터뷰이의 질문을 듣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피해자의 옆에서, 함께 흔들린 시간
- 피해자의 배우자로서 함께 겪은 시간은 어떠셨어요?
"저희는 이미 신혼집에 맞춰 가전·가구를 다 계약하고 인테리어 계획까지 짜둔 상태였어요. 이사를 못 가면 이걸 어디에 놓지, 계약금을 날려야 하나, 그 불안이 가장 컸어요. 5일 동안 남편은 거의 아무 일도 못 했고 양가 부모님 집도 난리가 났죠. 저는 옆에서 '별일 없을 거다'하고 위로했지만, 사실 제 마음도 롤러코스터였어요. 아침엔 다 잘될 것 같다가 저녁엔 같이 욕하며 화를 냈다가, 다시 '괜찮아질 거야' 했어요.
정보를 얻는 것도 힘들었어요. 유튜브, 변호사 블로그, 피해자 블로그 등 정보가 다 다르기도 했고, 제 상황에 딱 맞는 정보를 찾기는 어려웠어요. 저는 그나마 믿을 만한 활동가들이 주변에 있어서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에 확답을 얻었지만, 그런 인맥이 없는 사람들은 뭘 믿고 판단해야 할까 싶었어요."
- 이번 일로 바뀐 게 있나요?
"전세에 살고 싶지 않아 졌어요. 월세가 높더라도 보증금은 낮추고 가자고 둘이 약속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월세가 거의 없고 반전세가 대부분이에요. 이런 피해가 많아지니까 결국 '내 부담'을 지는 선택을 하게 되는 건데, 안전장치가 있으면 두렵지 않을 텐데 그게 없으니 제가 부담을 진다는 결론에 이르잖아요.
이번에 집 구할 때도 민달팽이유니온 활동가들에게 등기부와 건축물대장을 보내고 '안전한 집인지 봐 달라'고 부탁했어요. 전문가가 '괜찮아 보인다'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불안을 잠재우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은해씨가 세입자에게 필요한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 ⓒ 민달팽이유니온
"주거권을 말하는 후보가 있으면 좋겠어요"
- 세입자에게 어떤 정책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당장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일상 회복 자금'이 가장 현실적인 도움이에요. 저희도 집주인과 협의해 월 5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컸거든요. 그게 없었으면 이사를 못 갔을 거예요. 보증금 못 받고 그 집에 머무르는 선택은 너무 우울했을 거고요.
그다음으로는 가까운 곳에서 받을 수 있는 '세입자 상담' 창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혼자 서울에 온 사회 초년생과 청년들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조차 막막하니까요. 전문가가 "괜찮다"고 말해주는 확답이 정말 큰 도움이 되거든요.
무엇보다 보증금이 안전하게 묶일 수 있는 제도가 있었으면 해요.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리잖아요. 보증금이 계약 기간 동안 안전하게 보관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월세든 전세든 불안하지 않을 텐데요. 오래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도 많아졌으면 해요. 국가가 있는 이유가 이런 거 아닐까요."
- 6월 지방선거, 어떤 후보에게 투표하고 싶으세요?
"주거권을 말하는 후보가 있으면 좋겠어요. 집은 취미가 아니잖아요. 필수적인 조건이고 모두가 집에 살아야 하는데, 주거권 자체를 말하는 후보가 잘 없어요. '청년에게 집을 공급하겠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정작 문제 해결은 안 하는 후보 말고,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정책을 말하는 후보요.
지금 '주거 정책'이라고 할 만한 게 대출, 대출 이자 지원밖에 없어요. 이조차도 선착순으로 지원을 하더라고요. 집을 사지 않아도 세입자로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효능감'이 느껴지는 정책이 나왔으면 해요."
은해씨는 인터뷰 내내 "그래도 저희는 운이 좋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임대인과 연락이 끊기지 않았고, 공증을 승낙받았고, 협의한 월 50만 원이 꼬박꼬박 들어왔기에. 그러나 '운'이 세입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사회는 안전한 사회가 아니다.
운이 좋으면 보증금을 돌려받고, 운이 나쁘면 집과 목돈을 잃는다. 집을 계약할 때 '집주인이 돈을 안 주면 어디를 찾아갈지'부터 상상해야 하는 세입자의 자리. 세입자가 자기 집에서 '방어'를 계획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보증금이 안전하게 묶일 수 있는 제도,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공임대, 그리고 '주거권'을 말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은해씨의 바람처럼, 운에 기대지 않고도 안전할 수 있는 세입자의 자리를, 이번 선거에서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