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 느린학습자에게 자립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는 가득하지만, 이들의 속도를 이해하고 기다려 주는 일터는 많지 않다. 느린학습자 청년들은 취업뿐 아니라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일상을 꾸려가는 과정에서도 자주 어려움을 겪는다. 이렇게 혼자 버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음 단계를 상상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런 고립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 새로운 모습의 자립을 그리는 사람들이 있다.

▲정현석 대표는 경기 고양시에서 사회적 농장 '뜨렌비팜'을 운영하며 느린학습자 청년들과 만나고 있다. ⓒ 느린IN뉴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농장 '뜨렌비팜'도 그중 하나다. 뜨렌비팜은 '뜰엔 비가 내리는 농장'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곳은 메마른 땅을 적시는 단비처럼 농장에 방문하는 누구나 머물며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정현석 대표는 농장에서 느린학습자 청년들과 함께 일하며 스스로 살아갈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뜨렌비팜이 그리는 자립의 종착지는 취업률 같은 수치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청년들은 이곳에서 흙을 만지고 싹을 틔우며 '내 손으로 생산적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감각을 쌓는다. 이렇게 농부로서 흘린 땀은 이들이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
정 대표는 농장에서 시작된 활동이 지역사회로 이어지고, 결국 마을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가족'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느린학습자와 함께 가꿔가는 정현석 대표를 만나 그가 제시하는 자립의 새로운 이정표를 따라가 보았다.
-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경기도 고양에서 커피농장 '뜨렌비팜'을 운영하는 농부 정현석입니다. 뜨렌비팜은 사회적 농장이나 농촌돌봄농장이라고 설명하는데요, 지역사회 취약계층을 보듬는 농업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취약계층을 위한 돌봄서비스나 농업교육,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사회네트워크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고요.
농장에서 만나는 취약계층을 특정 기준으로 나누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흔히 말하는 취약한 사람들 중에서도 법적 보호 바로 위에 있는 분들이 가장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해요. 느린학습자가 바로 이런 경우죠. 뜨렌비팜은 농작물을 생산하는 개인사업자이고, '주식회사 사탕수수'라는 별도 법인을 통해 느린학습자를 비롯한 지역사회 취약계층 프로그램과 외부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권칠승 국회의원(오른쪽)이 느린학습자 청년 고용 지원 방안을 살펴보기 위해 경기 고양시 뜨렌비팜을 방문해 정현석 대표와 농장을 둘러보고 있다. ⓒ 권칠승의원실
최근 느린학습자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외부 단체나 기관과 만날 때 느린학습자 청년과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을 꾸준히 요청하고 있기도 합니다. 다른 지역에서 농촌돌봄농장 운영이나 느린학습자를 지원하는 데 관심 있는 분들이 저희 농장을 찾아오시기도 하고요. 경기 북부 지역에서는 뜨렌비팜이 유일하게 사회공헌을 하고 있는 농장인데요, 앞으로 이런 농장들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런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있나.
"이전에는 28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어요. 회사를 다니다 보면 누구나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하게 되잖아요. 저도 40대 중반부터 그런 고민하던 중에 막연히 '사회복지를 공부하면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어 복지 영역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됐죠.
처음 사회복지를 공부할 때만 해도 청소년보다는 노인 복지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로 청소년쉼터로 실습을 가게 됐죠. 여기에 오는 친구들 가운데 특히 18~24세 후기 청소년들은 가정 복귀가 안 되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안정적인 일자리와 머물 공간이 필요했고요.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불안한 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을 한 번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농장을 운영하게 된 이유도 궁금하다.
"제가 만나던 청소년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그나마 덜 보고, 쉽게 적응할 수 있을 수 있는 직종이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농업이 떠오르더라고요. 그중에서도 숙련된 농업인들과의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분야를 찾다가 당시 트렌드를 고려해 열대작물을 선택하게 됐죠.
처음 시작은 커피나무였어요. 한국인은 3천 원짜리 라면으로 식사를 해도 후식으로 5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잖아요. 2009년부터 커피를 연구하고 재배하기 시작해, 2012년에 파주 민간인통제구역 바로 앞에 온실하우스를 만들었어요. 이후 2014년에 두 번째 농장인 이곳에 둥지를 틀었죠."
- 느린학습자 청년들과는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됐나.
"'느린학습자'라는 사람들에 관해 원래부터 알고 있던 건 아니었어요. 2017년도쯤 청소년쉼터를 이용하는 후기 청소년들과 농장에서 활동을 했는데, 조금 눈에 띄는 아이들이 있더라고요. 흔히 말하는 '4차원'같은 느낌이었죠. 나중에 그 친구에 관해 이야기하니 다른 사회복지사분이 '느린학습자를 아느냐'라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느린학습자라는 개념을 접하게 됐어요.
사회복지 공부할 때까지도 느린학습자라는 건 들어보지 못했었거든요. 이들에 대해 알게 되고, 관심을 가지다 보니 '이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들을 도와주기 위한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근데 '위한다'는 건 '내가 그들보다 낫기 때문에 뭔가 해준다'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는 거잖아요. 실제로 느린학습자들을 만나다 보니 점차 이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 농장에서 느린학습자 청년 자립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들었다.

▲뜨렌비팜에서 운영되고 있는 자립지원 프로그램 소개 배너. ⓒ 느린IN뉴스
"농장에서는 '자립 돌봄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느린학습자 청년들을 만나고 있어요. 학교가 교실 안에서 사회를 배우는 공간이라면, 이곳은 흙을 만지며 몸으로 사회를 배우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년들은 열대작물 재배를 중심으로 파종과 작물 관리, 농산물 가공 같은 다양한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처음 느린학습자들과 농장 프로그램을 시작한 건 2021년이었어요. 당시 (사)DTS행복들고나가 운영하는 예룸·예하예술학교에서 먼저 제안이 들어왔던 게 계기가 됐죠. 이후에는 고양 지역에서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느껴 느린학습자 대안학교인 '이루다학교'를 찾아가 농업활동을 제안했고, 2년 정도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했습니다. 지금은 기관 연계 없이 자체적으로 청년 참여자를 모집해 진행하고 있고, 청소년들은 지역 복지관 의뢰를 통해서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자립 돌봄 학교에는 느린학습자라고 불리는 청년들이 함께하고 있는데요, 복지카드* 유무 여부를 가리지는 않습니다. 보통은 복지카드 유무에 따라 장애인 지원과 느린학습자 지원이 나뉘는데, 현장에서는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농장 안에서만큼은 그런 경계를 크게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만 복지카드가 있는 청년들과 없는 청년들의 취업률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해요. 느린학습자를 양육하는 부모님 가운데는 지적장애 범주에 어떻게든 편입되기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기준에 포함되지 못한 사람들은 분명히 있잖아요. 결국 제가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경계선에 있는 이들이고, 그런 청년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복지카드: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발급되는 장애인등록증으로, 법적으로 등록된 장애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증명 수단의 역할을 한다. 실제로 발급되는 장애인등록증에는 '복지카드'라고 표기돼 있어 현장에서는 두 명칭이 함께 사용된다.)
- 요즘 청년들에게는 농사를 짓는 일이 낯설 수도 있을 것 같다.

▲정현석 대표가 온실하우스 내부 열대작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 느린IN뉴스
"농장에 오는 모든 청년들이 농업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닙니다.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경우도 있고요. 심지어 지렁이나 나비를 보고 비명을 지르거나 도망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청년들이 막연하게 갖고 있는 농업에 대한 인식을 친밀하게 바꾸는 활동부터 시작합니다. 농사를 '일'이 아니라 '놀이'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특히 느린학습자 청년들 가운데는 소근육 활동을 어려워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에 가장 쉬운 일부터 시작하죠. 농장에서 하는 활동을 지켜보며 농업 생산물을 가공하는 과정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하도록 하고, 생산한 농작물을 재료로 먼저 시범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 농업활동에서 나온 부산물로 요리를 하거나 음료를 만들기도 해요. 이것 역시 농사거든요. 저희는 주로 열대작물을 활용한 에스닉푸드를 만들고 있는데요. '8천 원의 가치를 가진 열매로 1만2천 원짜리 요리 열 그릇을 만들 수 있어'라고 이야기하면, 청년들이 무척 신기해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금전적인 가치를 배우고, 가공을 포함한 농업 활동이 생산물을 더 풍부한 가치로 만들어준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청년들은 때때로 '이것도 농업이에요?'라고 묻기도 하는데요, 사실 농업은 모든 산업의 근간이기 때문에 다양한 영역과 연결돼 있습니다. 농장에서 청년들이 학교나 가정에서 늘 신경 써야 했던 '결과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길 바라요. 이곳에는 이들을 평가하는 시선이 없고, 또래와 함께 대화하고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 있거든요. 청년들이 아프지 않은 한 빠지지 않고 농장에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직접 키운 작물을 수확하고, 상품으로 만드는 게 특별한 경험일 것 같은데.

▲뜨렌비팜의 농장 모습. ⓒ 느린IN뉴스
"느린학습자 청년들을 만나면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들면 되도록 자란 경우가 많습니다. 외부에서 상처를 받거나 폭력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가정에서 보호 중심으로 양육을 하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렇게 되면 청년들은 안전하게 준비된 것만 해야 하고, 결국 그것만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머무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희 농장에서는 작은 일이라도 직접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처음 온 청년들은 작은 트레이판에 씨앗을 심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일부러 바로 도와주기보다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기다리죠. 씨앗을 심고 싹을 틔우는 과정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느끼게 하려는 겁니다. 싹이 나면 모종으로 키워야 하는데, 자신의 손으로 싹을 틔우고 화분에 옮겨 심는 과정에서 얻는 성취감이 생각보다 큽니다. 누군가에게는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는 게 당연한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청년들에게는 그 자체가 큰 희열인 거예요.
작년에는 공동텃밭 옆에 청년들이 각자 돌보는 개인 텃밭을 만들었습니다. 아침에 농장에 오면 공동텃밭은 쳐다도 안 보고 자기 텃밭부터 확인해요. 그만큼 스스로 만들어낸 것에 대한 애착이 크다는 의미겠죠. 저는 이런 경험이 청년들이 자신의 일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힘과 동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 청년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필요한 조건이 있다고.
"작년부터 자체적으로 자립 돌봄 학교를 진행하면서 청년들을 모집했는데요. 조건은 청년과 부모님이 함께 면담에 와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면담을 거쳐 참여자를 정하고, 5명의 청년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마치게 됐습니다. 부모님들과의 소통 창구를 만들고, 따로 만나 정기적으로 미팅도 하면서 청년들에 대한 문제나 앞으로의 계획을 함께 살피고 있어요. 실제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한 청년은 농산물을 판매하는 유통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해서,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농장 근처로 이사오기도 했지요.
저는 농업을 가르치고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걸 넘어서 청년들의 자립을 위해 함께 이루고 싶은 꿈이 있거든요. 이전에 학교들과 연계해 청년들을 만났을 때는 부모님을 한 번도 만날 수 없었고, 제가 이들과 함께 꿈을 그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느꼈어요. 기관마다의 정체성이 있고 그게 제가 그리는 미래와는 다르기 때문이었겠지요. 그게 제가 프로그램에 조건을 둔 이유입니다."
- 농장에서의 경험이 실제 자립으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뜨렌비팜에서 느린학습자 청년 부모 모임이 이뤄지고 있다. ⓒ 뜨렌비팜
"가정에서의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부모님들도 직접 농장에 와서 청년들의 활동을 보셔야 하고요. 부모가 참여하지 않는 이 프로그램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청년들은 농업활동을 통해 수확한 작물을 집에 가져가곤 합니다. 하지만 집안 상황에 따라 공들여 키운 농작물이 처리하기 힘든 애물단지가 되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열심히 만들어도 집에서 반겨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예 가져가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청년들이 농장에 오는 건 일주일에 한 번입니다. 이곳에서 좋은 경험을 쌓았다면, 그 경험이 가정에서도 이어져야 해요. 하지만 부모님들은 오랜 시간 돌봄을 이어오며 너무 지치셨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청년들도 회복하고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느린학습자를 만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
"지난해 농장을 찾은 연인원은 1300명에 달합니다. 많은 청년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이들을 하나의 틀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보통 느린학습자라고 하면 단순히 평균보다 지능이 낮은 집단으로 이해되지만,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입니다.
농장에서 프로그램을 하면서 타고난 인지특성뿐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후천적인 어려움을 함께 안고 있는 청년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런 어려움은 대부분 학령기에 학교 안에서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됐죠. 성인이 된 지금까지 우울이나 불안 등으로 인해 신경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는 청년들도 많고요. 그렇다 보니 현장에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피고, 돌발행동이나 정서적인 어려움에도 대응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프로그램에 함께하는 활동가들이 소진되는 문제가 생기기도 했죠."
- 마을카페 '페어살롱'에서도 느린학습자 청년들이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일산시장 내 위치한 커뮤니티카페 '페어살롱'. ⓒ 느린IN뉴스
"페어살롱은 '커뮤니티카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일산시장 한가운데 위치해 있고요. 외국인 이주민과 어르신들이 함께 살아가는 동네 특성을 살려서 주민 누구나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올해 초 문을 열었습니다.
청년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부모님들은 생업 때문에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다고 말씀하세요. 다 큰 청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걱정을 하는 상황을 보면서 청년들에게 학교 같은 공간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가 일터에 나가 있는 동안 청년들이 사회성을 기르고, 일을 계속 배울 수 있도록요. 이런 고민 끝에 페어살롱을 만들게 됐어요.
이곳은 마을 주민들이 드나드는 커뮤니티 카페이면서, 느린학습자 청년들에게는 사회성을 훈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크게 카페 공간과 가공실, 교육실, 사무실로 이뤄져있는데요, 각 공간들에서 청년들이 할 일을 만들어주는 게 저의 일입니다. 청년들은 이곳에서 일하며 농장에서 생산물과 이를 가공한 제품, 음식을 판매합니다. 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보조강사로 참여하기도 해요. 그동안 배운 게 있으니까 아예 모르는 사람보다는 훨씬 많이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강의를 할 때 도울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죠.
페어살롱은 지역 어르신들이 편하게 찾아와 머물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교통이 불편한데도 일부러 찾아오는 이유는 어르신들이 말벗이 필요하고, 일상이 무료하니까 여기까지 오시는 거예요. 청년들은 음식을 만들어서 내어드리면서 어르신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맺게 됩니다. 어르신에게는 손주처럼, 청년들에게는 할머니나 할아버지처럼 서로를 대하도록 일러두었는데요. 이러한 관계를 저는 '사회적 가족'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마을 안에서 다른 구성원과 서로 연결될 수 있을 때 청년들도 더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고, 이런 시도가 쌓여 마을이 회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앞으로 꿈꾸는 뜨렌비팜의 모습이 있다면.
"큰 성장까지는 바라지 않고요. 오래전부터 꿈꿔온 것은 '자립형 생활 공동체'를 만드는 일입니다. 독일의 도시텃밭 '클라인가르텐'처럼 일과 삶이 함께 이어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청년들뿐만 아니라 부모님들, 특히 은퇴를 준비하는 분들과 함께 생활 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하나의 방향이 될 수 있겠죠. 청년 당사자와 부모가 함께 생활 기반을 만들어가는 방식으로요. 부모가 더 이상 돌볼 수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청년들은 살아가야 하잖아요. 그 기반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느린학습자만 모여 사는 마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느린학습자가 아닌 사람들도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적 가족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정부에서 보조해준다면 물론 좋고요. 인구 소멸 지역을 중심으로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면 실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올해는 안식년을 계획하고 농업 외적인 일은 모두 내려놓을 생각이었습니다. 농업활동을 통해 연을 맺었던 외국인 친구들의 나라에 방문해서 그들의 삶 속에서 잠시 머무르려고 했거든요. 결국 그렇게 못하게 됐지만요. 대신 뜨렌비팜은 앞으로 온난화 대응 농업을 기반으로, 이국적인 분위기의 농장을 만들어 갈 계획입니다. 그 안에서 청년들과 함께 일이 곧 놀이가 되는 삶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