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노동과 젠더의 불평등을 짚어내고,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합니다.

▲영화 <세계의 주인> 스틸 ⓒ ㈜바른손이앤에이
최근 영화 <세계의 주인>을 만든 윤가은 감독이 제62회 백상예술대상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다. <세계의 주인>은 청소년인 '이주인'이 친족 성폭력 피해 이후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영화다. 영화에서는 주인이의 가족과 더불어 주인이의 학교 친구들, 그리고 비슷한 피해를 경험한 당사자들의 모임, 태권도학원 선생님 등 다양한 주변인들이 등장한다.
나는 영화의 첫 장면부터 주인이가 좋았다. 예상외의 장면에 깜짝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학교 쉬는 시간에 남자친구와 학교의 구석진 곳에서 햇빛을 받으며 대담하게 키스하는 장면은 청소년에 대한 고정관념,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와장창 깨면서 주인이에게 몰입하게 해 주었다.
'노 스포' 챌린지의 의미
주인이 주변에는 남자친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 중 주인이가 겪은 피해를 모르는 친구들도 많은데, 같은 반 친구 수호가 여기에 해당한다. 수호는 어린 여동생과 아버지와 함께 사는데, 우연히 아동 성폭력 가해자가 자신의 집 주변에 이사를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걱정되는 마음에 반대 서명을 주도한다.
수호는 주인이에게도 서명을 요구한다. 그러나 주인이는 자신은 성폭력 피해는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문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그 문구를 고쳐오면 서명을 해주겠다고 한다. 수호는 주인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며, 주인이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알게 되기 전까지 문구를 고치지 않고 "너만 서명하면 된다"라며 주인이를 압박한다. 수호는 주인이가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을 거라는 상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나는 수호가 서명을 자꾸만 요구하는 것이 주인이에게 '성폭력 피해자인 네 삶은 끔찍하고 회복될 수 없다는 데에 동의해'라며 주인이의 삶을 규정하려는 행위로 보였다. 주인이가 결국 수호에게 화를 내게 되는 과정은 그런 '규정의 폭력'에 대한 저항이었다.

▲영화 <세계의 주인>을 연출한 윤가은 감독과 서수빈 배우가 지난 3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서십자각 앞에서 열린 ‘2026년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제41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성평등 디딤돌을 수상한 뒤 기뻐하고 있다. ⓒ 유성호
윤가은 감독은 지난해 10월 언론시사회에서 기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주인이 과거에 겪었던 일을 유추할 만한 언급을 최대한 감춰주시기를 부탁'하였다. 기자들을 비롯해서 먼저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은 이러한 '노 스포(스포일러)' 챌린지에 동참하면서 리뷰에도 최대한 성폭력과 관련한 내용은 감추었다. 감독이 '노 스포'를 요청하고,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에 흔쾌히 동참했던 것은 아마 많은 이들이 영화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의 삶을 함부로 예단하고 규정하는 것의 폭력성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어떤 삶도 피해 이후를 직접 경험하고 살아보기 전까지는 '스포'가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이러한 '노 스포'챌린지, 즉 따뜻한 감춰주기는 마치 지난 10년간의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보여준 연대와 같았다. 2016년부터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미투운동, 버닝썬 사건 등 수많은 젠더폭력 사건들이 사회에 알려졌고 수많은 여성들은 온오프라인에서 피해자를 지지하고, 기억하고, 연대하며 이 후진 세상을 바꿔보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주인이들'에게 어떤 '세계'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지난 2025년 5월 17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9년 전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를 추모식이 진행됐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2016년 5월 17일 새벽 강남역 인근 주점 건물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일면식 없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사진은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행동 참가자들이 강남역에서 다이인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 연합뉴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는 폭력들도 곳곳에서 일어났다. 강남역 사건 이후에는 추모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과도한 요구를 한다며, 밤늦게 돌아다닌 여자 탓이라며 연대의 목소리를 입막음시키는 백래시(반격)를 겪어야 했다. 올해 5월 17일에 열리는 강남역 10주기 추모행동조차 '남성부'를 자칭하며 집회를 방해하고자 하는 한 남성 때문에 급하게 집회 장소와 시간을 옮겨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피해를 고발한 피해자를 두고 '이상한 사람이다', '너무 괜찮아 보이는데 사실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아는데 절대 피해를 당했을 리 없다'는 식으로 당사자의 경험을 부정하고 의심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그렇게 피해자를 특정한 틀에 가둠으로써 스스로가 안전하다고 느끼고 싶어했고 죄책감을 덜고 싶어 했다. 페미니스트를 자임하면서도 나 또한 '증거도 명백한 피해잔데 고소를 했어야지'처럼, 내가 바라는 피해자의 모습을 누군가에게 기대했던 적이 있었다.
주인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삶을 함부로 규정하는 세상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피해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미 목숨을 잃어서, 세상에 맞설 수 없었다. 그저 운이 좋아 살아남았음을 통감하면서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또래 여성의 죽음을 슬퍼했던 그 시기로부터 무려 10년이 지났지만, 어떤 청소년은 또다시 여자라는 이유로 거리에서 일면식도 없는 남자에게 살해당해야 했다.
또 어떤 청소년은 일터에서 성폭력을 겪고도 국가의 인정을 받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 청소년 시절에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여 결국 가해자를 감옥에 보낸 김현진씨도 최근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단 한 명의 여성도 더 이상 죽어서는 안 된다는 바람이 무색하게도 피해 이후의 삶을 경험할 수 없는 여성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다보니 피해 이후에도 삶은 이어진다고, 사건을 삶의 중심에 두면서 우리네 삶을 '스포'해버리지 말자고 하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10년 전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가 달라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는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우리들은 주인이에게 어떤 세계가 되어 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자신을 함부로 재단하는 세상에 발길질을 하고,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사랑하고, 무엇보다 서로를 지렛대 삼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남았다는 것이 세상이 바뀌었다는 증거가 되고 우리는 그 증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0주기를 맞이하여, 이 세상 모든 주인이들의 '노 스포' 삶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