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칭찬하며 관계의 방향을 뒤집었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 역시 내면에 숨겨진 힘을 발견하며 성장했다. 지난 4일과 11일에 걸쳐 EBS <다큐프라임>에서는 어린이날 특집으로 '아이의 시간' 2부작을 방송했다.

지난 4일에 방송된 '1부. 부모님을 칭찬한 적 있나요?'는 아이와 부모의 관계 방향을 완전히 뒤집는 실험에서 출발한다. 비밀 칭찬 일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기도 양주 덕정초등학교 아이들은 50일 동안 부모님을 몰래 관찰하며 칭찬하고 기록하는 '관계의 주도자'가 된다.

11일 방송된 '2부 '으랏차차! 씨름소년단'은 경남 창원의 교방초등학교 씨름부를 6개월간 밀착 기록하며, 몸을 통해 세상을 익히는 아이들의 시간을 조명했다. 이번 다큐를 연출한 빈정현 PD를 지난 13일 경기도 고양시 EBS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빈 PD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칭찬보다 과정이 더 중요"

 EBS <다큐프라임>의 한 장면
EBS <다큐프라임>의 한 장면 ⓒ EBS

- 방송 끝낸 소회가 어떤가요?
"70여 명의 아이들과 복작거렸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저출생, 아동 인권, 학교 교육, 이주민 문제 같은 사회적 문제를 비판적 시각으로 다루거나 해법을 모색하는 다큐를 해왔다면, 이번엔 6개월 가까이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을 관찰자 시점에서 담았습니다. 아이들의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만드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AD
- 1부는 아이들이 부모 칭찬하는 걸 다뤘고 2부는 한 초등학교의 씨름부 이야기를 다뤘더라고요.
"지난해 9월 '시민 미완' 다큐가 끝날 무렵 회사에서 어린이날 특집 다큐 제안이 있었고, 2부작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1부 '부모님 칭찬 일기'는 함께 작업했던 김미지 작가님과 고민해 온 아이템이었어요.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친 김상복 선생님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십 수년간 수행 평가로 '부모님 칭찬 읽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이를 책으로 엮었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의 어려움이 대체로 가정에서 시작된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프로젝트였는데, 그 책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언젠가 꼭 다뤄보고 싶었던 아이템이었습니다. 1부가 말과 표현을 통한 아이들의 성장을 담았다면, 2부는 몸을 통한 성장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칭찬 일기를 50일 동안 쓰는데, 왜 50일인가요?
"김상복 선생님은 아이들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최소한의 기간을 두 달 정도로 봤어요. 현실적으로 겨울 방학 직전까지 확보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100일 프로젝트로 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촬영이 촉박하게 진행되는 측면이 있어서요. 다행히 덕정초등학교 서선경, 황유정 선생님께서 커리큘럼을 잘 짜주시고 많이 애써주신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빈정현 PD
빈정현 PD ⓒ 빈정현 제공

- 칭찬이 왜 중요할까요?
"제목은 칭찬이지만 칭찬 자체보다 칭찬하기 위한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칭찬하려면 먼저 관찰해야 하거든요. 칭찬 일기에는 세심하게 관찰해서 칭찬할 것, 반복된 칭찬을 지양할 것이라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50일 동안 매일 다른 칭찬을 찾아야 하니 아이들은 부모님의 새로운 모습을 계속 발견해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존재를 관찰하는 연습이 나중에 친구나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작은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칭찬은 말로 표현해야 합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요즘 아이들은 익명성에 기반한 디지털 환경에서 혐오 표현이나 조롱에 쉽게 노출돼 있습니다. 긍정적인 언어를 직접 말로 내뱉어 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 칭찬 프로젝트가 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 방송 보니 아이들이 처음에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 거 같더라고요.
"이 프로젝트는 아이들이 부모님을 칭찬하는 거잖아요. 칭찬은 대체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건데, 그 반대를 하죠. 그래서 저는 이 프로젝트를 역발상 프로젝트라고 불렀습니다. 칭찬을 받아본 아이든 받아보지 않은 아이든 모두에게 쉽지 않은 숙제였습니다."

- 아이들에게 브이로그 숙제도 내줬더라고요.
"3주쯤 지나니 아이들이 살짝 흥미를 잃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선생님들이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아이들의 특성을 살려 브이로그 과제를 제안하셨어요. 칭찬 장면이 정확히 찍히지 않아도 되지만 칭찬 상황의 오디오와 앞뒤로 어떤 칭찬을 할 건지, 칭찬 후 소감을 담는 방식이었습니다. 브이로그를 보니 아이들이 부모님을 칭찬하는 말투가 정말 어색했습니다. '엄마 오늘 뭐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는데, 그게 얼마나 낯선 경험이었는지 느껴졌어요. 선생님들께도 의미 있는 자료가 됐습니다. 학교와 가정의 연계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브이로그를 통해 아이들이 부모님과 어떻게 대화하는지 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선생님도 아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 부모님은 프로젝트를 모르는데, 아이들 집에 가서 촬영하기도 했더라고요.
"제작하는 입장에서 그 부분이 어려운 지점 중 하나였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님을 숙제로 하는 건지 모르게 칭찬해야 하는데, 저희가 그 비밀 원칙을 깰 수는 없었거든요. 그래서 부모님께는 '아이들의 성장을 보는 학교 프로젝트인데 아이가 열심히 하고 있어서 집에서의 대화 모습이나 인터뷰를 담고 싶다'고 두루뭉술하게 설명했습니다. 섭외가 쉽지는 않았어요."

"아이들은 정말 비밀을 잘 지켰어요"

 EBS <다큐프라임>의 한 장면
EBS <다큐프라임>의 한 장면 ⓒ EBS

- 마지막에 부모님이 교실에서 칭찬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 나눴잖아요. 이렇게 한 이유가 있었나요?
"김상복 선생님의 원래 커리큘럼에도 있는 부분이기도 했고, 저 개인적으로도 이 단계까지가 프로젝트의 완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혼자 일기를 쓰면 끝이 아니라 부모님께 전달되고 반응을 끌어내는 것까지 해야 했어요. 칭찬 일기는 아이의 일기이기도 하지만, 부모님 자신에 대해 써준 기록이기도 하니까요. 흥미로운 건 아이들이 비밀을 정말 잘 지켰다는 겁니다. 대부분의 부모님이 영문을 모르고 오셨어요. 방송에 담지는 않았지만 직접 초대장을 써서 부모님이 꼭 와주길 간절히 기다린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달라진 모습이 보였을 것 같은데.
"맞아요. 참가한 아이들 42명 전부 성장했다고 할 수는 없죠. 그런데 사전 인터뷰에서 부모님 중 한 분과 관계가 어렵거나 대화가 힘들다고 했던 아이들이 달라지는 게 보였어요."

- 어떻게 달라졌어요?
"사춘기가 오면서 아빠와 대화가 어렵다고 한 친구가 있었는데, 프로젝트에 굉장히 열심히 임했어요. 엄마, 동생에게도 해보고, 선생님이 아빠한테도 칭찬해 보라고 했을 때 그것도 해냈습니다. 칭찬하고 온 날 발표 후에 아이의 수업 태도가 묘하게 달라졌어요. 약간 미소를 띠면서 자신감이 생긴 표정이 현장에서 보였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처음에 엄마 말투를 흉내 내며 잔소리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마지막 인터뷰에서는 느끼고 깨달은 걸 표현하는 방식을 보니 처음과 확연히 다르더라고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아이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 2부에서 씨름부를 주목한 이유가 있을까요?
"촬영 시기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11월부터 4월까지가 촬영 가능한 기간이라 겨울을 끼고 있어서 겨울에도 할 수 있는 운동을 고민했습니다. 원래는 팀 구기 종목을 생각했는데, 취재 작가님이 리서치한 리스트를 보다가 씨름이 바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씨름은 비인기 종목이긴 하지만 실내 운동이라 겨울에도 훈련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습니다. 또 씨름 진흥법이 있어서 대회가 열리면 반드시 중계를 하거든요. 중계 영상을 찾아보다가 씨름의 단체전 방식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일곱 체급 선수가 나와서 4점을 먼저 따는 팀이 이기는 방식인데, 굉장히 흥미진진했습니다. 어린이 스포츠 다큐를 한다면 한 아이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팀으로서의 끈끈함을 담고 싶었는데, 씨름 단체전에서 그게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거기다 이만기, 강호동 선수 같은 왕년의 씨름 전성기 추억을 가진 시청층에도 흥미로운 아이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EBS <다큐프라임>의 한 장면
EBS <다큐프라임>의 한 장면 ⓒ EBS

- 수없이 지면서 이기는 법을 배운다는 말이 좋더라고요. 요즘 학교에서 체육대회에서 아이들이 지면 좋지 않으니까, 학부모들이 체육대회 반대한다고 하더라고요.
"맞아요. 방송이 나가기 한 달 전쯤부터 관련 이슈가 조금씩 나오더라고요. 슬슬 떠오르고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이 다큐가 그 이슈와 닿아 있다고 생각하며 편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고가 나가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씨름부와 칭찬 일기 모두 아이들이 시행착오를 겪고 실패하면서 성장한다는 메시지에 뭉클한 감동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다큐가 지금 시의성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아이들은 지면서 성장한다"며 "실패의 시간을 허락하겠느냐"는 해설이 좋더라고요.
"처음 씨름부를 촬영할 때부터 이 메시지를 계획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습니다. 촬영하고 다큐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견한 거예요. 김현근 감독님이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지면 어때? 많이 질 거야. 근데 나중에는 이기게 될 거야. 왜냐하면 감독님이 해봤으니까'였습니다. 아이들은 질 때는 펑펑 울지만 또 곧바로 장난치고 웃어요."

- 아이들이니까요.
"맞아요. 다음 대회에는 또 한 걸음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고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들의 회복 탄력성이 좋아진다는 생각, 이게 진짜 성장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칭찬 일기도 마찬가지예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생각해 보는 경험하는 거니까요. '아이의 시간' 전체 메시지를 한 줄로 요약하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진짜 성장을 위한 시간을 허락하고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 1부와 2부를 모두 본 부모가 오늘 당장 아이에게 함께 해 볼만한 게 있을까요?
"서로의 장점과 자신의 장점 10가지를 써보는 겁니다. 칭찬 일기 마지막 수업 때 아이들에게 부모님 장점 10가지를 써보라고 했는데, 굉장히 어려워했어요. 한두 가지는 쉽게 나오지만 10가지를 채우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 과정이 서로를 재발견하는 첫 시작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느낀 점이 있다면요.
"좋은 어른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도 빠르게 변하고 아이들의 성장 환경도 많이 달라졌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는 본질적인 메커니즘은 변하지 않았다고 봐요. 그 곁에는 좋은 어른이 필요하고요. 저도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 좋은 어른이 뭘까요?
"모든 걸 제공해 주는 것이 좋은 어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난관에 처했을 때 곁에서 지지하며 기다려주고, 관심 두고 바라봐주는 마음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 방송에 담지 못한 것 중 얘기할 게 있나요?
"씨름은 체급이 있는 운동입니다. 40kg 체급에 출전해야 하는데 대회 날 아침 몸무게가 40.01kg이면 출전 자체가 안 돼요. 그래서 아이들이 체급에 맞추기 위해 식단을 조절해야 합니다. 어른도 힘든 일인데 아이들이 해냅니다. 대회 가는 날 휴게소에 들렀을 때 다른 친구들은 라면을 먹는데 그 아이들은 참고 있었어요. 무언가를 위해 버티고 참아낼 수 있는 존재라는 게 정말 놀라웠는데, 러닝타임 때문에 담지 못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의소리에도 실립니다.


#빈정현#다큐프라임#어아의시간#칭찬#씨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연재

이영광의 '온에어'

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