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11시, 대전 유성구 유림공원에는 이른 아침부터 노란 풍선들이 하나둘 달리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 아래 노란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긴 천막들이 줄지어 세워졌다. 아직 사람들은 오기 전이었다. 텅 빈 의자들과 뜨거운 햇볕만이 공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빈 공간을 먼저 채운 사람들이 있었다. 노무현재단 대전세종충남 지역위원회 운영위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었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노무현재단 대전세종충남 지역위원회 운영위원으로 여러 해 활동하고 있다.
운영위원이라는 자리는 거창한 자리가 아니다. 회원들의 후원금이 어떤 방향으로 쓰이는지 함께 고민하고, 행사와 사업을 직접 준비하고, 때로는 감시하고 점검하며, 결국 시민들의 뜻이 제대로 살아 움직이도록 뒷받침하는 자리다. 말은 운영위원이지만 실제로는 풍선도 달고, 의자도 나르고, 천막도 치고, 땀도 흘리는 사람들이다.
올해 5월 역시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달이었다. 원래는 노무현 대통령을 기리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기가 6월 3일 전국 지방자치선거와 맞물리면서 여러 민감한 상황들이 생겼고, 결국 행사명은 '노무현'이라는 이름 대신 '평화시민문화제'라는 이름으로 절충되었다.

▲행사포스터평화시민문화제 행사포스터 ⓒ 노무현재단대전세종충남지역원회,이수현
정식 허가도 행사 한 달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야 떨어졌다. 지역운영위원장(이현주)을 중심으로 운영위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거의 급하게 행사 준비에 뛰어들었다. 그야말로 허겁지겁이었다.
행사 당일인 5월 16일. 나는 천안에서 아침 일찍 대전으로 내려갔다. 오전 11시부터 현장에서는 본격적인 설치 작업이 시작되었다. 책상과 부스를 세우고, 현수막을 달고, 노란 풍선을 매달고, 바람개비를 꽂았다.

▲노무현재단풍선달기행사장 풍선달기 사진 ⓒ 노무현재단대전세종충남지역위원회, 이수현
초여름 햇볕은 생각보다 훨씬 뜨거웠다. 하지만 누구 하나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움직였다.
조금 하고 있자니, 40년 지기 고등학교 동창인 이행섭 친구가 슬리퍼 차림으로 유림공원에 나타났다. "뭐라도 도와야지."
친구는 말보다 행동이 빨랐다. 풍선 다는 일을 함께 거들고, 땀 흘리는 사람들에게 냉면까지 사주었다. 그러고는 오후 1시 30분 예식이 있다며 또 급히 자리를 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했다. 세월이 흘러도 사람은 결국 그렇게 남는구나 싶었다.
오후가 되자 행사장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각 부스마다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아이들은 바람개비 사이를 뛰어다녔다.
'그림일기 키링 만들기'
'노무현 대통령 어록 캘리그래피 엽서 만들기'
'나만의 노란풍선 만들기'
부스 이름들도 참 노무현스러웠다.

▲행사장입구사진노짱님의 밀짚모자 뒷모습을 만들어 놓고 기념촬영을 하는 행사입구 모습 사진 ⓒ 노무현재단대전세종충남지역위원회, 이수현
거창한 정치 구호 대신 사람 냄새 나는 체험들이 행사장을 채우고 있었다. 선거철이다 보니 여러 입후보자들도 행사장을 다녀갔다. 명함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조용히 인사만 하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기본적인 현장 정리를 마친 뒤 노무현재단 후원회원 가입 부스에 앉아 시민들을 맞이했다. 누군가는 조용히 다가와 가입서를 작성했고, 누군가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를 꺼내다 울먹이기도 했다. "아직도 그리워요."
짧은 한마디들이 오래 남았다.

▲회원가입접수처 사진메인무대를 바라보면서 회원가입을 받고 있는 사진 ⓒ 이수현
오후 5시가 되자 메인 공연이 시작되었다. 흥이, 방진선, 아코디언 연주, 김다미 소프라노, 퓨전국악팀 메이, 언페이드 밴드 등 다양한 공연팀들이 무대에 올랐다.

▲퓨전국악팀 메이의 공연대전 퓨전국악팀 메이의 공연 ⓒ 이수현
공연이 이어질수록 행사장의 분위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특히 '나비'가 울려 퍼질 때였다. 맨 앞줄에 있던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높은 목소리로 신나게 따라 부르며 춤추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아이들에게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어쩌면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 그 아이들은 분명 즐겁고 자유로운 어떤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지키고 싶었던 민주주의의 한 장면인지도 모른다.
밤이 가까워질 무렵 마지막 곡이 울려 퍼졌다. '일어나.' 무대를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는 마지막 곡쯤 모든 출연진이 다 함께 무대 위로 올라와 시민들과 어깨를 흔들며 하나의 노래를 같이 부르면 참 좋겠다고.
노란 조명 아래서, 바람이 조금 불어오는 밤공원에서, 아이들과 시민들과 운영위원들과 가수들이 모두 뒤섞여 마지막 노래를 함께 부르는 장면. 아마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풍경을 좋아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합동공연곡 "일어나"
행사마지막으로 모든 출연자들이 나와서 "김광석의 일어나"를 다같이 불렀습니다. 이수현
그날 유림공원의 노란 풍선과 바람개비들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전히 사람을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고, 광장에서 끝나지 않고 마을로 이어지고 싶은 민주주의의 바람이었다.
"내 삶의 민주주의, 광장에서 마을로."
행사장에 걸려 있던 그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떠났지만, 그날 유림공원에 흔들리던 노란 풍선과 바람개비 속에는 여전히 사람을 믿고, 시민을 믿고, 공동체를 믿으려 했던 한 사람의 마음이 남아 있었다.
비록 이름은 '추모제'가 아니라 '평화시민문화제'였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날 우리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끝내 사람 사는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시대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노무현재단 대전세종충남 지역위원회는 내년에도 같은 뜻으로, 같은 마음으로 또 많은 시민들을 찾아뵐 것이다.

▲이현주 지역위원장의 감사의 말씀이현주 지역위원장이 감사의 말씀을 하고 있다. ⓒ 이수현
덧붙이는 글 | 내년에는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하는 행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