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른 두 부부가 비슷한 시기에 주말부부가 되었습니다. 아내와 남편 입장에서 주말 부부 이야기를 씁니다.
올 초에 <오마이뉴스> 시상식에 참가했다. 작년에 그룹 '내향인으로 살아남기'가 특별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시상식이 끝나고 가진 뒤풀이에서 수상자 중 한 분이었던 인상 좋은 시민기자와 합석했다.
이럴 땐 내 안 어딘가에 숨어있는 외향성이 고개를 내민다. 어떤 기사를 쓰는지 물어보았더니 특정 지역의 건축과 그 건축에 담긴 역사 이야기를 쓴다고 했다.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였다. 기사를 위해서 매번 지역 취재를 하고 있고 매주 발행한다니 열정이 대단했다. 그분의 사연이 궁금했다.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다시 질문을 했다.
"어떻게 그런 기사를 쓰게 되셨어요?"
"아. 사실 제가 건축을 전공했습니다. 건설 회사에 취업했더니 신혼 때 잠시 집에 살고 계속 지방 생활을 해야 했어요. 처음엔 퇴근하고 선배들과 어울리며 술 마시고 그랬는데 나중엔 그 시간이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지역의 명소를 탐방하기 시작하다 문득 역사가 궁금해져 공부하다 보니 기사까지 쓰게 되었네요. 얼마 전에 조금 일찍 퇴직하고 이제는 매주 지역 탐방하며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와. 대단하세요. 사실 저도 이번에 지방 근무를 하게 돼서 주말부부를 시작했는데요. 시간이 많이 남는데 무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다 그렇지요.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취미도 좋고, 공부도 좋고."
맥주 한잔에 붉은 얼굴이 된 그 분이 계속 해서 기사와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초 집중해서 들었다. 다만 마음 한 구석엔 그분이 했던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라'는 말이 계속 떠올랐다. 뒤풀이가 끝나고 혼자 집에 오는 길에도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퇴근 후 고요한 집, 그냥 있을 수는 없다
늘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복작거리는 분위기 속에 살았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들 방에 들어가 괜한 시비 걸고 한바탕 신나게 몸싸움을 한 뒤 사춘기의 딸을 마주하곤 실없는 농담을 건넸다. 아내에게 씻고 얼른 분리수거 하라는 잔소리가 어김없이 날라왔다. 심심할 틈도 없이 네 식구가 티격태격하며 좋았다 싫었다 하는 일상을 살아갔다.
사택에 살면서 복작거림은 사라졌다. 퇴근하고 들어가면 고요와 적막만이 흘렀다. 막상 시간이 주어지니 오히려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다고 돈이 들어가는 취미 생활을 하려니 죄책감이 밀려왔다. 주중에 떨어져 지내면서 자연스레 가사는 아내 몫이 되었다.
아내는 일하느라 아이들 돌보느라 정신없는 상황에 나 혼자 무얼 배운다거나 돌아다닌다는 건 스스로 용납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두 집 살림으로 가스요금이나 전기요금 등 생활비도 더 들어갔다. 고유가 시대에 차로 사택과 집을 운전하며 오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사택에 있는 것 또한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뒤풀이에서 만난 그분의 조언을 곱씹어 보았다. '집중할 수 있는 무언인가를 찾아라.' 나에겐 그것이 바로 '운동'과 '책' 두 가지였다.

▲천변 러닝매일 퇴근하면 사택 앞에 있는 천길을 따라 러닝을 하며 건강을 챙긴다 ⓒ 신재호
새롭게 일하는 곳에서는 당직 근무도 있고, 아무래도 집에 있을 때보다 식사도 제대로 챙기기 쉽지 않아 건강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객지 생활에 술만 마시다 건강을 잃은 선배들을 자주 보았었다.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운동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사택 인근에 천이 흘렀다. 시간 날 때 가보니 뛰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뛰는 걸 워낙 좋아해 전에는 10km 마라톤도 틈틈이 참가하고 그랬는데, 코로나 이후로 멈췄었다. 한산한 저녁 때 뛰면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갈 때 운동복과 운동화를 챙겨왔다.
시원한 천변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5km 정도 뛰기 시작했다. 하루의 고단함도, 가족을 보고픈 그리움도 잠시 있고 뛰는 데 집중하는 시간이 힐링이 되었다. 그렇게 하루의 루틴으로 러닝이 자리 잡았다.
근처 훌륭한 도서관, 미래를 준비하다

▲사택 인근 도서관사택 인근에 좋은 도서관을 발견해서 퇴근 후 책도 읽고, 자격증 공부도 한다 ⓒ 신재호
책은 사택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분명 공간이 주는 힘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마침 사택 인근에 도서관이 있었다. 도보로도 갈 수 있는 거리였다. 회사 점심시간에 혼자 가 보았다. 사는 곳이 외곽이라 편의 시설이 많지 않은데 도서관은 생각 이상으로 시설이 훌륭했다.
최근에 지은 듯 깨끗하고 규모도 컸다. 도서관 사서 분께 문의하니 주소지가 이곳이 아니더라도 재직증명서를 제출하면 도서관 회원증을 만들어 줄 수 있다 했다. 그날로 행정지원과에 요청해서 재직증명서를 떼서 저녁 때 다시 방문했다.
도서관 회원증을 만들고 첫 대출도 했다. 이게 뭐라고 어찌나 뿌듯한지. 점심때 다 보지 못한 공간을 살펴보았다. 2층에 LP 감상실도 있었고, 4층엔 간단히 식사를 챙겨 먹을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도서 대여하는 곳뿐 아니라 부수적인 공간도 훌륭했다. 퇴근하고 종종 도서관에 방문했다.
갈 때는 인근에 꼬마김밥집에 들러 간단히 저녁거리도 챙겨 갔다. 좋아하는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도서관에 마주치는 사람들이 반가웠다. 비록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업무 관련해서 취득하고자 했다가 미뤄두었던 자격증 공부도 시작했다. 취득하면 나중에 퇴직 이후에도 도움이 되기에 시간 있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1년 정도를 목표로 열심히 해볼 예정이다. 결과가 좋다면 고생한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면이 설 것 같다. 나 역시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도 싶다.
초보 주말부부 생활자로서 어느 하나 쉽지 않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삶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만만치 않은 상황을 마주했다. 갑자기 텅 빈 시간, 많은 짐을 짊어진 아내에 대한 미안함, 홀로 남은 외로움 등등. 그래서 이 순간을 더욱 헛되게 보낼 수 없다. 뛰면서 건강을 챙기고, 책도 읽고 목표하는 자격증도 취득하며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야겠다.
앞으로 최대 3년간은 주말부부를 해야 한다.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때, 지금을 떠올리며 그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았다는 추억을 하고 반드시 하고 싶다. 오늘도 열심히 잘살아 보자. 아니 잘 살아내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브런치와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