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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강' 안세영
'세계 최강' 안세영 ⓒ 신화=연합뉴스

세계배드민턴연맹(BWF) 랭킹 기록에 따르면 안세영은 2026년 5월 19일 갱신된 여자단식 세계랭킹에서 1위를 지켰다. 세계가 인정하는 배드민턴의 여자 황제, 바로 안세영 선수다.

우승을 기뻐하며 오른손에 라켓을 들고 포효하는 표정이 늘 낯익다. 심장이 터질 듯 숨을 몰아쉬고 등 줄기로는 쉴 새 없이 땀을 흘리고 있을 테지. 코트를 점령하기 위해 펄쩍펄쩍 날아다녔을 그녀의 모습에, 내 가슴에도 세찬 고동이 인다. 셔틀콕을 받아치기 위한 그 한 발짝의 거리가 얼마나 멀고도 위대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배드민턴 선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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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년 초, 처음 만난 아이들 앞에서 이렇게 나를 소개했다. 아이들은 매번 비슷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와! 국가대표 선수요?"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아니, 우리 학교 대표!"

그렇다. 나는 배드민턴 교사 대표 선수였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주최한 교직원 배드민턴 대회에 출전한 경력으로 가는 학교마다 선수로 뛰었다.

나는 운동을 못 하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세상에서 제일 못하는 게 뭐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운동'이라 답할 정도였으니. 오죽하면 학창 시절 짝꿍과 100m 달리기를 할 때, 친구들이 내게 "야! 뒤로 달리지 마!" 하고 소리쳤을까. 앞으로 쌩 달려나가는 짝꿍과 점점 벌어지면서 나는 마치 뒤로 가는 것처럼 보였던 상황이었다. 고등학교 체력장 때도 남들 다 받는 20점 만점에 나 혼자만 17점을 받을 정도로 운동엔 젬병이었다.

그런 내가 정식으로 배드민턴에 입문하게 되었다. 40대 초반, 집과 조금 떨어진 타 교육청 소속 학교로 발령을 받게 되면서부터다. 그곳에서 만난 교사 배드민턴 동호회가 내 인생을 바꿔 놓을 줄이야. 그전까지만 해도 배드민턴을 동네 야외에서 어린애들이나 하는 놀이로 얕잡아 봤다. 하지만 정식으로 라켓을 잡은 순간 깨달았다. 땀이 억수로 쏟아지고 호흡이 가팔라지는 진짜 과격한 스포츠라는 것을. 당시 최고 실력자였던 선배 교사의 주도로 내 삶은 활력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당시 내 나이 마흔두 살, 학교라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에 심지가 더욱 굳어지던 때였다. 우리는 교실에서는 열정으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학교 운영에도 열성으로 참여했다. 우리는 '교직원 배드민턴 대회 교육청 대표로 나가자'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똘똘 뭉쳤다. 퇴근 후 늦도록 체육관에 불을 밝히며 특별 과외 수업까지 받았다. 학교에서도 물심 양면으로 지원해주었고, 운동 잘하는 새내기 남자 교사들은 끈질기게 맹훈련으로 이끌어주었다.

결국 '운동의 젬병'이던 아줌마 교사였던 내가 당당히 학교 대표 선수로 뽑혔다. 남자 복식, 여자 복식, 혼합 복식으로 구성된 우리 교사 선수단은 단결을 외치며 유니폼까지 맞춰 입었다. 마침내 지구별 예선과 본선을 모두 통과하고, 교육청 대표 자격을 얻어냈다. 그때의 기쁨을 어찌 간단한 문장으로 표현하랴.

서울시 대회가 있던 날, 선수 여섯 명은 파이팅 속에 비장한 각오로 출발했다. 잠실 실내 체육관 앞에서 우리는 완전히 얼어붙고 말았다. 학교라는 좁은 우물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한 체육관에 압도되어 잠시 숨을 고르고 서 있었다. 천장이 높아 바람의 저항력이 너무 셌다. 셔틀콕이 멀리 뜨지 못하고 중간에서 툭 떨어지는 이변에 얼른 적응했다. 하지만 일치 단결한 선수의 투지와 응원단의 열렬한 함성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아쉬운 패배였다.

쓰라림은 있었으나 잠실벌에 우리 학교 이름을 당당히 내걸었다는 자부심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학교 이름을 연호하며 단합과 친목을 다졌다.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말 그대로 하나의 축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해마다 5월이면 교사 간 친선 체육대회가 있었고, 이웃 학교끼리도 교류했다. 학교마다 선수와 응원단은 한마음으로 목이 터져라, 응원하며 끈끈한 정을 나눴다. 꽹과리와 북까지 짊어지고 원정 응원에 열성을 보여주던 학부모들까지도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라켓을 잡은 손에 솟아나는 활력은 심장이 뛰는 열정으로 매일 아이들 앞에 서게 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 우리는 학교를 건강하게 사랑했고, 아이들 사랑에도 신바람 났던 것 같다. 학교는 하나의 거대한 가족처럼 끈끈하게 살아 움직였다. 그래서 요즘 '학교 폭력'이나 '소외' 같은 차가운 낱말이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더 아픈 건지도 모르겠다.

올해도 어김없이 5월이 찾아왔다. 오늘날 마주하는 학교의 풍경은 서글프도록 삭막해졌다. 언제부턴가 교사들의 동호회 활동이 사라지면서 함께 땀 흘리며 소통할 길도 막혀버렸다. 수업 준비 이외에도 여러 가지 잡무 처리에 서로 만나서 화목을 다질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친목과 화합이 옛말이 되어버린 자리에 슬그머니 자리 잡은 살얼음판이 현실을 더 꽁꽁 얼어붙게 하고 있다.

다시금 예전에 그 훈훈했던 풍경의 부활을 기대해보는 건 나만의 환상일까. 아이들은 체육 활동을 통해 서로 어울리고 부딪치며 성장해나간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단체 활동 속에서 서로 어울리며 관계를 이을 때 학교에 대한 애정은 더욱 커질 수 있다.아이들의 운동회마저 조심스러워지는 요즘 세태에, 교사를 위해 시간을 마련해 달라 하면 어떤 시선을 받게 될지 두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안세영 선수의 포효가 내 안의 잠자던 열정을 일깨웠다. 지금이야 물론 관절 건강을 위해 라켓을 내려놓고 '관전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경기를 대하는 내 마음은 그 시절 코트 위를 누빌 때처럼 여전히 쿵쿵 뛰고 있다. 스매시로 공격하고 헤어핀으로 수비하며 상대 코트를 공략하던 나의 청춘도 학교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한데 어울렸던 학교 공동체의 훈훈함이 다시금 활기차게 날아오를 수 있을까. 나는 그런 날이 꼭 왔으면 하고, 조용히 소망해 본다.




#교사친선체육대회#학교#학교사랑#열정#배드민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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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참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며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흐뭇한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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