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 민주시민 교육과는 거리가 먼 교칙(생활규정)을 중심으로 학생자치의 실태, 교육 정책과 제도 학교 문화 등을 두루 살피며 학생과 학교를 짚어보려고 한다.

▲학교에선 2026년 2학기부터 2027년 1학기까지 학생자치회를 이끌 새 회장단을 선출한다.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선거철'이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유세 행렬에 거리와 골목이 아주 요란하다. 동시에 1학기 종료를 두어 달 남겨놓은 초중고교도 선거철을 맞이했다. 새로운 학생자치회장단을 뽑는 선거. 2026년 2학기부터 2027년 1학기까지 학생자치회를 이끌 새 회장단을 선출한다.
3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를 학년 단위로 하는 초중고교에서 언제부터인가 학생자치회장단 선거가 3월에서 6월로 바뀌었다. 학년말인 12월에 선거를 하는 학교도 있다. 그러다보니 임기는 1년인데 명칭은 '2026년 학생자치회장단 선거'가 아니고 '2026~2027년 학생회장단 선거'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5월이 되면서 학교마다 새로운 학생자치회장단 선거 공고가 난다. 후보 등록을 받는다. 좀 이른 학교는 5월 중순이면 등록을 마친 후보자들의 사진, 기호와 번호, 공약 등을 담은 포스터를 공개한다. 학생들의 투표는 6월 초·중순에 이루어진다. 여러 시도 교육청이 학생으로 구성하는 선거관리위원회를 조직하여 학생자치회장단 선거를 진행하라고 안내한다.
하지만, 이를 온전히 지키는 학교는 드물다. 형식상 학생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지만 실제로는 학생부장 교사나 학생자치 담당 교사의 지시에 따라 선거가 진행된다. 이전 학생회장이 차기 학생회장을 뽑는 선거의 당연직 선거관리위원장을 맡거나 학교장이 선거관리위원장을 하는 '이상한' 학교도 많다. 학생자치라는 학교 민주주의의 한 축을 구성하는 민주적인 교육과정이 아니라 오직 '학생회장-부회장'이라는 개인을 뽑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투표만 하면 모든 게 끝난다. 민주주의, 시민, (학생)자치를 묻는 과정은 없다. 학생자치 선거가 '회장-부회장이라는 개인'을 뽑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건 잊은 듯하다. 학생들이 선거권-피선거권을 누리며 민주주의와 학생자치 형식을 통해 시민성을 경험하는 교육과정이라는 인식은 없다. 일부 학교-교사는 이를 번거롭고 귀찮은 '업무'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므로 학생자치 선거는 회장-부회장을 뽑으면 끝나는 일회성 이벤트가 되고 말았다. 선거 이후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2학년만 피선거권 보장어느 학교나 2학년에게만 학생자치회장 출마 자격을 준다. 또한 불합리하고 비민주적인 자격 요건을 붙여 학생자치를 훼손한다. ⓒ 임정훈
학생자치회장단 선거가 3월에서 6월로 바뀐 것도 이러한 상황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시기를 변경한 것은 학생들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제한-박탈하게 된다. 3월 선거일 때에는 그나마 1~3학년(중등 기준) 모두가 선거권과 피선거권 보장받았다. 그러나 6월 선거(12월 선거)로 바꾸면서 학생들의 선거권-피선거권을 제한·박탈하는 게 당연시 돼 버렸다.
3월 선거에서는 1년 간 자신들의 대표가 될 후보자들의 공약을 살펴 투표할 수 있었다. 고3도 피선거권을 보장받아 학생자치회장에 출마할 수도 있었다. 6월로 선거 시기를 바꾸면서 모든 게 달려졌다. 고3은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현재 대한민국 중-고교(특히 고교)에서 3학년은 학생자치회장 입후보가 불가능하다. 선거권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졸업을 몇 달 남겨둔 시점에서 행사하는 고3의 선거권은 '묻지마 투표'가 되고 만다. 졸업을 앞둔 자신들과는 별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12월에 하는 선거는 이를 더욱 극명하게 만들어 버린다. 3학년의 피선거권 박탈, 선거권 무력화는 물론 곧 새로 입학할 신입생은 학생회의 새로운 구성원이 되지만 1년간 '권리 박탈-의무 이행'만 남는다. 사실상 2학년만 유일한 선거권자이자 피선거권자가 된다. 이상하고 희한한 학생자치 선거의 실상이다.
현재 거의 모든 중고교 교칙에서는 학생자치회장 피선거권자를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특정한다. 1, 3학년은 학생자치회장에 출마할 수 없다. 6월 선거제가 낳은 비극이다. 고3은, 학교 밖에서는 정치기본권의 주체가 되었지만 정작 학교에서는 참정권을 박탈당했다. '학교 밖에서는 시민, 학교에서는 들러리'가 되었다. 이런 현실에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는다.
신입생의 시민성을 제한하고 보장하지 않는 '저학년 차별주의-서열주의'는 초등학교에서 더욱 극심하다. 초등학생은 1~4학년(혹은 1~3학년)에게 학생자치회장 선거권-피선거권을 모두 보장하지 않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5~6학년만 학생자치회의 실질적인 구성원이다. 6학년에게만 피선거권을 보장한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학생회장 입후보자가 한 명도 없자 학생자치 담당 교사가 이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긴급 질의를 인터넷 교사 게시판에 올린 적도 있다. 이들 학교 교칙에는 "재학생은 모두 학생회 회원"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어떠한 처벌도 받아들일 것을 서약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나 각서를 써서 제출해야 학생자치회장단 후보가 될 수 있다. 양심에 반하는 서약을 강요하는 부당한 것인데 학교는 아무렇지 않게 학생에게 강요한다. ⓒ 임정훈
문제는 더 있다. 일부 학교의 경우 학생자치회장단에 입후보하는 학생들의 학년을 제한하고,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내용의 양심에 반하는 서약서(각서)와, 교사추천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후보 등록이 불가하고, 징계 이력을 공개하지 않아도 후보 등록을 못한다. 후보자 공약은 실현 가능성을 살핀다는 이유로 사전 검열하고 수정이나 삭제를 지시한다. 거르고 걸러 학교-교사가 인정하고 바라는 학생만 후보자가 될 수 있다. 선거권자인 학생들은 학교-교사가 촘촘히 거르고 다듬어 내놓은 후보자들을 놓고 투표를 한다.
학년과 나이로 서열을 지어 우정과 친교를 해체하고(학년 제한), 학교와 교사의 부당한 학생자치 개입-훼손을 옹호하며(서약서, 교사 추천서), 학생 징계는 공표-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무력화하고(징계 이력 공개), 사전 검열을 정당화하는 반민주-반시민적인 교칙이 시퍼렇다. '학생자치 선거'인데 '자치'는 없고, 학교-교사의 지배-개입-훼손이 공공연하고 당연하다.
2011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학생회……선거 입후보 자격 요건에…… '성적 제한', '교사의 추천 등' 학생자치 활동의 목적에 반할 수 있는 조건을 넣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한 지침을 내린 바 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도 "학생 자치 기구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학생이 교사의 추천을 받지 못하면 후보자로 등록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조치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학교는 요지부동 제 맘대로 제멋대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학교 학생자치에서는 암흑천지일 뿐이다.
학생들의 학생자치 경험을 보장하고 시민성을 존중하는 민주시민교육으로서 학생자치를 가능하게 하려면 3월 선거제로 돌아가야 한다. 학생들이 조건 없이 온전하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모두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입후보자의 자격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관련 교칙 규정도 삭제해야 한다.
학교에서 교육과정을 통한 다양한 시민 경험은 더 많이, 더 자주, 더 격렬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학생자치는 민주시민교육의 마중물이다. 이를 지원하고 보장하여 가능하게 하는 것이 '교육'이어야 한다. 초중고교에서 학생들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보장하는 선거만 가능해도 가짜뉴스에 속고 극우 폭동에 휩쓸리는 시민은 생기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