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열기가 이르게 찾아온 지난 5월 23일, 부산 서낙동강 조정카누경기장 스타트라인에 선 아이들의 눈빛은 매서웠다. 탕! 출발 신호와 함께 물살을 가르자, 그동안 흘린 땀방울이 은빛으로 부서졌다. 성적을 향한 무거운 압박 대신 "후회 없이 즐기고 오자"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청춘의 레이스였다.
지난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나흘간 부산광역시 일원에서 열린 '제55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이번 대회에 충청남도 대표로 출전한 부여여자중학교(교장 고정옥) 학생 선수 6명의 도전기는 엘리트 체육의 삭막한 순위 경쟁 속에서 '스포츠의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 조용히 웅변하고 있었다.
거친 물살과 트랙 위에 새긴 청춘의 레이스
부여여중은 이번 대회에 카누, 육상, 에어로빅 등 3개 종목에 총 6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카누 종목에 나선 3학년 선수들이었다. 이들은 K-1 500M와 K-2 500M 종목에 나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에도 서로를 의지하며 끝까지 패들을 놓지 않았다. 1분 1초의 기록 단축보다 값진 '완주의 기쁨'을 몸소 증명해 낸 순간이었다.
경기장 밖 트랙과 체육관에서도 드라마는 이어졌다. 육상 100m 허들에 출전한 선수들은 자신들의 키만 한 허들을 가뿐히 넘어서며 성장 가능성을 열었고 , 창던지기에 나선 1학년 막내 선수는 야무진 손끝으로 미래를 향한 첫 투창을 날렸다.
에어로빅 종목에 출전한 2학년 선수는 개인전과 3인조 무대에서 통통 튀는 역동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관중석의 뜨거운 박수 갈채를 받았다. 전국의 쟁쟁한 시·도 대표들 사이에서 순위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무대를 100% 즐기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했다.
"선수이기 전에 학생"... 안전과 성장이 먼저인 학교
사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소년체전 개최로 부산 현지의 숙소 확보가 전쟁터를 방불케 하자, 학교 측은 시일이 촉박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현지 답사를 강행하는 대신 타 학교들의 피드백을 꼼꼼히 수렴해 인근 경남 김해에 안전한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게다가 지도교사는 아이들의 학업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회 전날까지 학교에서 체육 수업을 모두 정상적으로 마치고 밤늦게야 선수단에 합류하는 강행군을 펼치기도 했다.
"모든 학생 선수는 선수이기 이전에 학생입니다."
이러한 철학 아래 부여여중은 대회 출발 전부터 스포츠 폭력 및 성폭력 예방 교육, 숙박형 청소년활동 안전 수칙 교육을 실시해 아이들이 스스로 안전을 체화하도록 지도했다. 운동부 지도자의 근로기준법상 52시간 근무 지침을 철저히 준수하면서도 , 아이들의 생활 교육과 임장 지도에 소홀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의 본질을 잃지 않는 선에서 스포츠를 즐기게 하겠다는 학교 공동체의 굳은 의지였다.
"결과보다 값진 과정" 교장의 응원과 아이들의 약속
학생들의 손을 일일이 맞잡아 준 교장의 격려사 역시 '메달 지상주의'에 경종을 울린다. 교장은 "결과가 어떻든 매 순간 한계를 넘어서며 스포츠 정신을 보여준 우리 아이들이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라며 "앞으로도 승패에 집착하는 운동이 아니라, 도전을 통해 올바른 인성을 배우고 균형 있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약속했다.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한 학생 선수는 수줍게 소감을 털어놓았다.
"전국 무대라 떨렸지만, 친구들과 선생님이 곁에 있어 무섭지 않았어요. 등수보다 내 기록을 깨고, 부상 없이 안전하게 경기를 마쳐서 정말 기뻐요."
메달의 색깔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시대는 지났다. 부산의 푸른 바다만큼이나 청량했던 부여여중 6인방의 아름다운 도전은, 진정한 학교 체육의 미래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똑똑히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