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를 대표하는 역사적 상징인 오사카성을 보러 나섰다. 오사카성 공원 동쪽 입구에서 출발하는 로드 트레(꼬마 열차)를 타고 천수각 아래까지 편안하게 이동했다. 열차에서 내려 고개를 드는 순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천수각의 자태가 시선을 압도했다. 그 화려한 외관을 감상하는 동안 머릿속은 이 거대한 성을 둘러싼 일본 역사의 서사로 가득 찼다.

▲오사카성천수각 ⓒ 김성례
오사카 성은 일본 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이었던 전국 시대를 통일하고, 우리에게는 조선 침략의 원흉이기도 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축성한 권력의 심장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와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1583년, 천수각을 황금으로 번쩍이게 꾸미며 당대 최고 규모의 성을 지었다.
일본에서는 그와 함께 전국 시대를 호령한 세 명의 영웅을 '울지 않는 두견새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시로 비유하곤 한다. 울지 않으면 베어버리겠다는 불같은 혁신가 오다 노부나가, 어떻게든 울게 만들겠다는 지략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인내의 화신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오사카성가는 꼬마열차와 성과 해자 ⓒ 김성례
"결국 노부나가가 쌀을 찧고 히데요시가 떡을 빚었으나, 그것을 먹은 최후의 승자는 기다림의 천재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는 말처럼, 히데요시가 죽은 뒤 이에야스는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로 권력을 장악했다.
이어 1615년 오사카성 전투를 통해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를 자결케 하며 도요토미 가문을 완전히 멸망시켰다. 이로써 군사 정권인 '막부'의 중심은 오사카에서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지금의 도쿄)로 이동하게 된다. 이 비정한 역사 이야기를 곱씹으며 천수각을 바라보니, 화려한 누각 뒤에 숨겨진 권력의 무상함이 묵직하게 밀려왔다.
성 앞을 걸어 나와 바로 옆 NHK 방송국 건물과 나란히 서 있는 오사카 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오사카의 연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진열품들을 관람하니, 방금 보고 온 성의 역사와 일본의 문화가 한층 더 깊숙이 이해되었다.

▲오사카 박물관실내 일본문화 사진 ⓒ 김성례
이어서 오사카의 명문 정원인 게이타쿠엔 정원으로 이동했다. 번잡한 도심 한복판에 이토록 정갈하고 고요한 밀실 같은 정원이 숨어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초록의 품에 안겨 잠시 뚜벅이 여행의 피로를 푼 뒤, 오사카의 옛 정취가 남아있는 쓰텐카쿠 전망대와 레트로한 신세카이 시장 골목을 구경했다. 저녁으로는 오사카의 명물인 꼬치요리 쿠시카츠를 맛보았는데, 튀김 종류별로 '겉바 속촉'의 바삭한 식감이 아주 별미였다.

▲오사카신세카이 시장과 쿠시카츠요리 ⓒ 김성례
어느덧 해가 저물 무렵, 택시를 타고 이동해 미리 예매해 둔 e-티켓으로 하루카스 300 전망대에 올랐다. 지상 300m 높이에서 360도 전면 통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오사카 시내는 거대한 파노라마였다. 사방으로 서서히 펼쳐지는 장엄한 붉은 일몰과 이내 불을 밝히는 오사카의 화려한 야경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다음 날에는 도심 속의 오아시스 같은 우쓰보 공원(靭公園)을 찾았다. 공원을 산책하는데 널찍한 정원에 장미가 만개하여 절로 눈길을 끌었다. 마침 나무 그늘 아래에서 도시락을 맛보며 점심을 즐기는 현지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우리도 피크닉을 하고 싶다 했더니, 아들이 인근의 또 다른 장미 공원으로 가자며 앞장섰다.

▲오사카우쓰보 공원에서 도시락을 먹는 현지인들 ⓒ 김성례
그렇게 발걸음을 옮긴 곳은 오사카 시청과 공회당 인근에 위치한 나카노시마 공원 장미 정원이었다. 그곳에는 과연 훨씬 더 크고 화려한 장미들이 제철을 맞아 만발해 있었다. 아들이 근처에서 사 온 정갈한 스시 도시락을 들고 시원한 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다. 강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공원에서 오사카 시민들과 나란히 앉아 먹는 점심은 더할 나위 없이 여유로웠다.

▲오사카나카노시마 공원 장미정원 ⓒ 김성례
한국에서도 봄이면 장미를 보러 일부러 명소를 찾아가곤 했다. 하지만 기왕 떠나온 여행지에서 이렇듯 현지인처럼 평화롭게 피크닉을 즐기며 5월의 장미를 원 없이 눈에 담을 수 있어 참 뿌듯한 하루였다. 역사와 미식, 그리고 푸른 쉼표가 함께했던 오사카의 시간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다정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일본 여행 중 5월 16~ 19일 오사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 기사는 채택되고 난 후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