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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턱 막힌다. 벌써 여름이라니! 해 질 녘에도 볕이 따가워 선크림과 얇은 겉옷이 필수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더워도 텃밭 농부는 게으름을 떨 수 없다. 아니, 여름이 다가올수록 농부의 손길과 발걸음은 바빠진다.
이른 저녁을 해 먹고 길을 나섰다. 몇 미터 걷지 않아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그늘만 골라 다녀도 어쩔 수 없다. 연신 손부채질하며 20분 정도 걸어 텃밭이 있는 공원에 도착했다. 우리 밭 보물들을 보려고 돌계단을 오르는데 황금빛 물결이 눈을 잡아끈다.

▲큰 금계국텃밭가에 황금 물결을 이룬 큰 금계국 ⓒ 김효숙
"큰 금계국이네!"
몇 년 전부터 이맘때면 공원 주변에 무더기로 노란 꽃이 피어났다. 우리 식물들하고 잘 어울려 살면 좋겠다. 노란 금계국 사이에서 붉은토끼풀이 자기도 놓치지 말라고 얼굴을 들이민다. 남편과 나는 한참 동안 꽃밭을 둘러보고 우리 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해가 지면 벌써 모기떼가 들이닥쳐 옴짝달싹할 수가 없어서 일을 늦추지 못한다.
텃밭을 분양 받아 한 달 동안은 밭에 뿌린 씨앗이 자라길 기다리며 눈이 빠지게 흙만 들여다봤다. 4월 중순부터 새순이 돋고 모종이 자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5월에는 기온이 급격히 오르고 비도 틈틈이 내려주시더니 작물이 부쩍부쩍 자랄 때마다 상추며 겨잣잎이며 선물을 한 보따리씩 안겨주었다.
이제 6월이다. 진짜 여름이 시작되었다. 초보 농부를 위한 텃밭 길잡이와 유튜브를 비롯해 다양한 '스마트'한 선생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여름 농부는 할 일이 많다.

▲초보 농부를 위한 텃밭 길잡이작물 재배법과 병충해 관리 등 다양한 정보가 들어있다. ⓒ 김효숙
장마가 시작되면 상추는 잎이 물러지고 대만 삐죽 올라가 작별을 고해야 한다. 그전에 부지런히 잎을 솎아 최대한 대가 올라가지 않도록 해야 조금이라도 더 그 쌉쌀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고추랑 가지는 키가 허리춤까지 자랄 것이다. 강한 햇살이 내리쬐고 비도 여러 차례 내려 땅은 굳었다가 풀어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우리 초보 농부 가족이 정성껏 심은 모종들은 그 굴곡을 견디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단단해져야 한다. 거센 비가 내리기 전에 지난 달에 심어놓은 버팀목에 줄을 연결해서 가지와 고추가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밭의 경계를 넘어선 방울토마토 줄기상추를 솎을 때 내 엉덩이를 찌르고 간질인 녀석 ⓒ 김효숙
나는 쪼그리고 앉아서 상춧잎과 로메인, 겨잣잎을 하나하나 생채기가 덜 나도록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가져간 봉투가 가득 차면 허리는 아파도 뿌듯했다. 그런데 옆집 밭의 방울토마토가 경계를 넘어와 내 엉덩이를 자꾸 찔렀다. 그걸 피하려고 주춤주춤 앉아서 앞 걸음질 치다가 상추밭에 엎어져 낭패를 볼뻔했다.
토마토 줄기는 털이 있어 따끔거리고 간지럽기도 하다. 넝쿨 식물은 관리가 어려우니 심지 말라던 구청 직원의 안내가 떠올랐다. 속상했다. 상추를 솎으며 옆의 밭 토마토 가지가 부러질까 봐 얼마나 조심했는지 모른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파 뿔이 났다. 메모라도 남겨둘까 싶었지만 날아가면 그 뿐일 것 같아 그만두었다. '서로 조금씩 배려하면 텃밭 가꾸기가 더 즐거울 텐데'라고 혼잣말하며 속을 태웠다.
내가 옆집 방울토마토와 씨름하는 사이, 남편은 가지와 고추, 파프리카 모종 사이에 줄을 매준다고 했다. 아직은 키가 많이 크지 않았으니, 오늘은 맨 아랫부분에 1단만 매어주기로 했다. 상추를 솎다가 남편이 부르면 부리나케 달려가 줄을 잡아 주었다. 남편은 고추도 가지도 또 파프리카도 넘어지면 안 된다고 지그재그 모양으로 단단히 줄을 매었다.

▲고추랑 가지 줄 매기열매 작물이 땅에 뿌리를 내려 자리 잡으면 위로 똑바로 자라도록 줄을 매어준다. ⓒ 김효숙
잎사귀들을 다 솎아 내고 나니 빼곡히 자라난 풀들이 보였다. 내가 심지도 않은 풀들이 허락도 받지 않고 자란다. 검색을 해보니 갈수록 풀이 단단해지고 키도 커져 뽑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장마철이 되면 내가 심은 작물과 잡초가 구분 안 될 정도로 무성해지니 날마다 열성적으로 풀을 뽑아야 했다. 나는 호미를 들고 상추가 다치지 않게 풀만 뽑아내려고 애썼다. 처음엔 날카로운 호미 날이 내가 심은 작물을 해칠까 걱정됐지만 호미질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 풀이 쏙쏙 뽑혀 나오는 재미도 쏠쏠했다.
풀을 다 뽑고 허리를 폈다. 그제야 밭을 찬찬히 둘러봤다. 가장 큰 가지 모종에 꽃봉오리가 하나 보였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 옆 땅콩 줄기에도 노란 꽃들이 피었다. 지난주까지 누렇게 떠 보였던 고추와 파프리카는 처음처럼 녹색이 짙어졌다. 하얀 꽃도 많이 달렸다. 지난주까지 병약해 보이던 우리 텃밭 식물들이 흙에 뿌리를 단단하게 내려서 제대로 자리 잡은 게 틀림없다. 이제 그만 걱정을 내려놓아도 되겠다 싶었다.

▲땅콩과 가지 고추 모종에 열린 꽃드디어 우리 열매 작물에 꽃이 달렸다. 꽃이 지면 열매가 자라날 것이다. ⓒ 김효숙
"여보, 이제 우리 밭에도 꽃들이 지천인데? 지난주에 준 영양제 효과인가?"
남편도 흥에 겨워 작물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나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 고랑에 고이도록 듬뿍 적셔주었다. 생협에서 산 천연 비료와 벌레 퇴치제도 뿌려 주었다. 지난주까진 키도 크지 않고 이파리가 힘이 없어 애가 탔는데 일주일 새 제자리를 찾아가니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더도 말고 딱 오늘만 같기를 간절히 바라다 문득 1980년대를 강타한 영양제 광고 문구가 떠올랐다.
"커져라! 세져라!"
배밀이를 시작한 아이가 어서 기어다니기를 바라는 엄마 맘 그대로다. 다음 주엔 우리 바람대로 열매가 달릴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카카오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