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종주는 우리 땅을 보는 걷기다. "둘레길을 걸으면 우리 땅을 보지 못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둘레길은 정한 콘셉트가 있다. 그리고 대부분 정제된 숲길이다. 보는 데 한계가 있다. 같은 길을 여러번 걷다보면 지루해지기도 한다.
국토종주는 실시간으로 국토와 마주한다. 마을 할머니가 마실 가는 모습, 잠깐 들른 시골 가게에서 느낀 정, 길을 파내고 축대를 쌓는 공사 현장, 아침 이슬을 잔뜩 머금은 배추밭, 걸음마다 둘레길에서는 볼 수 없는 무수한 다양한 광경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가고, 해가 뜨고 질 때까지 실시간으로 변하는 우리 땅의 이야기가 내 가슴을 뛰게 만든다. 살아있다는 것, 아니 내가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옛 선조의 슬기 보여주는 장포마을

▲장포마을숲 초입옛 선조들의 슬기로운 자연재해 예방 대책이던 장포마을 숲이 2004년 '전통 마을숲 복원' 대상지로 선정돼 일부 복원됐다. ⓒ (사)한국사람길
그래서 오늘도 길을 나선다. 5월 30일 오전 7시40분, 원주시 무장리 장포마을 숲 앞에 섰다. 이곳은 '긴 물가 마을'이란 뜻의 장개마을로 불렸는데, 한자로 장포(長浦)라 쓰기도 한다. 강원의 산간 지역을 감입곡류하던 섬강의 물줄기가 이 마을 앞에선 길게 직선을 그리며 내달린다. 섬강에서 보기 드문 확 트인 시원한 강줄기를 볼 수 있다.
옛날에 이곳 강가엔 숲이 무성했다. 마을 주민들이 공들여 심고 가꾼 숲이다. 장마철엔 강물이 범람하지 못하게 막아 주었고, 평소엔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어 주었다. 섬강변 너른 충적평야 지대는 오랜 옛부터 삶의 터전이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서울과 지방의 문물 교류의 통로가 되다 보니 큰 주막은 물론 씨름대회, 정월 대보름 달집놀이 같은 행사의 무대가 되었다.
지금은 그런 옛 모습이 온데간데 없다. 제방 공사와 도로 공사로 강변의 그 무성하던 숲이 사라지고 난 후 무장리는 상습 침수 지역이 되었다. 숲은 비가 올 때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어 주고, 비가 안 올 때는 5개월에 걸쳐 천천히 물을 흘려보내 사시사철 풍요로운 강변을 만들어 준다. 이 길고 곧게 뻗은 강변에 숲을 없애고 대신 콘크리트 제방공사와 도로공사로 불투수층을 확대한 결과는 상습 침수였다.
다행히도 2004년 사단법인 생명의숲국민운동의 '전통 마을 숲 복원' 대상지로 선정돼 녹색자금으로 옛 모습의 일부를 복원했다. 비록 제방과 도로에 막혀 섬 같은 숲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옛 숲이 어땠을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자연 야영지로 제격인 칠봉유원지
이곳에서 오늘의 걷기를 시작한다. 몇 걸음 옮기면 일리천이 합류하는 합수머리를 만나는데 일리천을 따라 약 3km를 걸어가면 모래 강바닥에 맑고 얕은 물가 야영지로 최고인 칠봉유원지를 만날 수 있다.

▲일리천 합수머리 지나 섬강 따라 난 자연 가득한 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봄을 걷고 있음을 느낀다. ⓒ (사)한국사람길
그러나 그곳까지 가지 않아도 합수머리에 넓은 모래밭이 펼쳐져 있어 약간은 칠봉유원지의 멋을 짐작케 한다. 합수머리 근처의 칠봉체육공원에선 섬강 풍경과 자작나무와 함께 하는 4km의 섬강 자작나무숲 둘레길이 시작된다. 다음에 이곳으로 캠핑을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섬강을 따라 옥산 방향으로 향한다.
하늘이 유난히 청명하다. 길 양옆으로 도열한 큰금계국이 파란 하늘과 어울어지고, 강변 산기슭에 우거진 녹음이 섬강의 맑은 물과 함께 청초하게 빛난다. 지금 가장 아름다운 봄날을 걷고 있다.
봄의 정취에 빠져 걷다 보니 어느새 강 옆에 코바위가 나타난다. 고바우(인색한 사람을 이르는 말)로도 불리는 이 바위는 이름 그대로 코 형상의 바위다. 이 바위엔 한 전설이 전해온다.
과욕에 대한 교훈 전하는 코바위

▲무장리 코바위(고바우)과욕을 버리고 성실히 살라는 교훈을 전하는 코바위가 무장리 북쪽 끝 섬강변 절벽에 자리하고 있다. ⓒ (사)한국사람길
옛날 무장리 마을에 영서지방 제일이라는 큰 주막이 있었다. 주막엔 인색하고 심술 많은 고바우 영감과 품행이 바르고 음식 솜씨가 좋은 청상(靑孀)의 며느리가 살았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해 주막을 번창시킨 장본인이었다. 어느날 아리따운 며느리를 흠모한 떠돌이 스님이 고바우 영감을 찾아가 장사가 번창하고 부자가 되려면 강 건너 벼랑에 코바위를 허물라고 했다. 재물에 눈 먼 고바우 영감은 이를 말리는 며느리를 내쫒고 코바위를 허물기 시작했다. 그러자 음식 맛이 변하고 손님이 끊겨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이후 고바우 영감은 병을 얻어 죽고 주막터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알게 된 고을 사람들은 과욕을 부리지 않고 성실히 살며 코바위를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코바위 앞에 서니 전설이 지금 이야기처럼 살아 있는 것 같다. 1955년부터 45년간 최장수 네 컷 시사만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김성환 작가의 고바우 영감(2013년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도 생각난다. 그러나 이 바위와 만화 고바우 영감은 아무 상관성이 없다. 김성환 작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위처럼 단단한 민족성을 상징한다는 뜻에서 이름을 바우로 정했고, 바우에 가장 어울리는 고씨를 택했다"고 말한 바 있다. 여하튼 코바위의 모양이 만화 속 고바우 영감의 코와 너무도 닮아 신기하기만 하다.
걷기여행자에겐 길가 쉼터가 필요하다

▲옥산유원지로 가는 데크길섬강 바로 위를 걷도록 설치된 데크길이 원주천과 섬강의 합수머리까지 잠시 이어진다. ⓒ (사)한국사람길
이곳부터 강변 절벽을 따라 데크길이 이어진다. 섬강 바로 위를 걷는 맛이 일품이다. 절벽을 돌아 데크길을 내려서는데 자연 속 물의 세상이 펼쳐진다. 원주 시내를 흐른 원주천이 섬강과 합류하는 합수머리이다. 빙 둘러쳐진 자연과 너른 강줄기만 보이는 이곳에 옥산유원지가 있다. 사방의 녹음과 어우러진 얕고 맑은 물가에 어른 아이가 같이 놀던 곳이다. 지금은 각종 개발로 모래사장이 없어지고 강변이 변형돼 유명무실해졌지만 녹음에 뒤덮인 자연 풍치를 볼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섬강변 옥산유원지를 끼고 걷다 옥산교로 오르는 길가에 시골 마을 점빵 같은 평천상회가 새단장한 모습으로 길손을 반긴다. 가게 앞 길가에 두 개의 피크닉 테이블이 놓여 있는 모습이 그냥 털썩 걸터앉아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싶게 만든다. 사실 걷기 여행자들에겐 옛 주막처럼, 또는 쉼터처럼 길가에 풀로 개방된 이런 곳이 필요하다. 식당 예약만 하지 않았다면 친절한 주인 아주머니의 손맛을 즐기며 길가에서 두부김치와 전에 막걸리 한 잔을 했을 것이다. 나중에 다시 이곳에 온다면 일부러라도 들르고 싶다.

▲시골마을 점빵 같은 분위기의 평천상회가 걷기여행자의 쉼터 처럼 정겹게 다가온다. ⓒ (사)한국사람길
그리운 옥산의 옛 정취
옥산교를 건너 옥산마을로 향한다. 섬강은 옥산에 접어들면서 남과 북으로 크게 휘돌아 나가며 오랜 삶의 터를 만들었다. 조선시대엔 많은 주민이 이곳에 살았고, 특히 풍치가 좋아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아 시흥에 도취됐던 곳이다. 노송들이 우거진 강변의 졀벽 동산엔 옥산동대로 불린 정자도 있었다. 지금은 노송도, 옥산동대도 볼 길이 없어 아쉽다.
이곳은 옛날 수운이 성할 때 섬강을 운행하던 배의 종점이었다고 하여 종포로 불렸다. 지금도 많은 집들이 강가에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다. 종포마을엔 맛집으로 유명한 해물탕집이 여럿 있다. 이곳에 간다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다.

▲옥산교를 건너면서 본 종포마을섬강 뱃길의 종점이던 종포마을이 강변에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다.(4월 7일 촬영) ⓒ (사)한국사람길
우리 땅엔 걸음걸음마다 참 많은 이야기가 숨쉬고 있다. 오늘 걷기를 출발해 겨우 3.5km를 진행했을 뿐인데 소중한 우리 땅의 이야기로 넘친다. 우리 땅의 현재 모습 속에서 잊혀진 이야기들을 듣고,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국토종주가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한편으론, 국토종주 걷기의 특성상 옛 모습을 잃어 아쉬운 곳을 지날 때마다 우리 땅의 자연에 대해 더한 애착을 갖게 된다. 삶이 돈을 쫓을 때 개발이란 명분에 숨어 쉽게 자연을 훼손하지만, 삶은 힐링이어야 하며 그런 환경을 조성하며 사는 여유로움이 있을 때 진정한 부도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