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 1월 25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송건호 한겨레신문 발행인이 한겨레 신문 창간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공화(제)'를 표방하는 나라에서 백색독재(이승만), 군부독재(박정희, 전두환) 검찰독재(윤석열)를 겪었다. 그때마다 국민의 저항이 거셌다. 4.19혁명, 10.26거사, 촛불시위, 응원봉 항쟁으로 독재자가 쫓겨나거나 살해되었다.
전두환 체제를 종식시키는 데는 '말폭탄'이 큰 역할을 했다. 제도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자 언론사에서 쫓겨난 기자들이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만들고, 1989년 2월 <월간 말>을 창간했다.
진보적 대안언론으로 창간된 이 잡지는 말폭탄이었다. 상업광고가 없는, 재정적으로 열악한 상태에서도 평균 3만부 이상 발행했다. 참된 말, 용기 있는 글이 실렸기 때문이다.
참 언론인으로 평가받은 송건호가 쓴 '진정한 말의 회복을 위하여'란 제목의 창간사이다.
진정한 말의 회복을 위하여
오늘 우리는 이 시대 참다운 언론운동을 향한 디딤돌로서 <말>을 내놓는다.
'말다운 말의 회복', 진실을 알고자 하는 다수의 민중들에게 이 명제는 절실한 염원이다. 오늘의 우리말은 우리 말 본래의 건강성을 오염시키는 무리들에 의하여 있어야 할 자리를 올바로 찾지 못한 채 심각히 표류하고 있다. 거짓과 허위, 유언비어가 마치 이 시대를 대변하는 언어인양 또 하나의 폭력으로 군림하고 있음은 우리가 처해 있는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갖가지 제약 속에서 어렵게 출범한『말』은 우리 앞에 놓여있는 거대한 암초와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말>은 그 자체 자유롭고 독립적이기를 바란다. <말>은 어느 누구의 사사로운 소유물이 아니며 오직 민족과 국가의, 역사적 발전적 시각을 대변하는 문자 그대로의 공공기관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의 언론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상당히 제 구실을 한다고 평가한다. 이런 평가는 언론계의 내막을 모르는 순진한, 그리고 크게 잘못된 언론관이다. 오늘의 언론기관은 이미 지난날과는 달리 권력과 이권을 주고받는 깊은 유착관계에 있다. 따라서 기업주들은 과거처럼 좋은 신문을 만들어 국민으로부터 신뢰도 받고 기업적으로도 발전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신문을 방패로 이것저것 특혜를 얻고자 신문을 권력안보의 봉사수단으로 바치는 철저한 반언론적 반사회적 기관으로 타락되어 있다.
오늘의 언론이 다소 제구실을 하는 듯이 보이는 까닭은 지난 12·12선거 결과에 당황한 권력당국이 여론을 일시적으로 호도하고자 언론통제의 폭을 약간 누그러뜨린 지극히 전술적인 후퇴의 소산이며 사태가 바뀌어지면 하룻밤 사이에 선거 전 상태로 언제든지 바뀌어 질 수 있는 일시적 현상이다.
언론자유란 언론인의 저항과 투쟁으로 쟁취하는 것이며 권력당국의 배려에서 해결될 수는 없다. 제도의 틀 속에서 유유낙락하는 현역언론인의 일시적이고 형식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언론 기업은 독립되어 있어야 한다. 오늘 한국에서와 같이 언론기업이 타기업과 그리고 권력과 구조적으로 유착·종속되어 있다면 언론은 공정성을 잃고 권력에 아부를 일삼게 되며 정치적 상황이 바뀔 때마다 언론은 이제까지 봉사한 권력에 매질을 가하지만 새 권력에 굴종 아부한다. 일정한 원칙이 없이 그때 그때 권력의 대세에 영합하는 데 급급하다면 이러한 언론은 혼란을 조장하는 지극히 위험한 반사회적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참된 민주언론을 구조적으로 지향하는 시점에서 제도언론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을 시정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언론기관은 타기업과의 경영적 유대를 끊고 기업면에서 완전 독립적이어야 한다.
둘째, 권력당국은 언론활동을 억압·규제하기 위해 지난날 '국보위'에서 일방적으로 제정한 '언론기본법'을 전면 폐기하여야 한다.
셋째, 신문제작은 신문인에게 일임하며 당국은 법질서 안에서 제작되는 신문에 대해 일절 관여하지 말고, 기관원의 신문사 출입도 중지되어야 한다.
넷째, 권력당국은 언론을 천직으로 섬기는 신문인들을 존중해야하며 무질서하게 기자들을 권력진영에 기용 언론계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을 삼가야 한다.
새로운 언론의 진정한 모습을 창출하기 위한 모임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오늘 보는 바와 같은 소책자 <말>을 내놓았다. 안팎의 제약으로 소책자 <말>의 보급은 크게 제약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론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 속에서 참된 언론이란 어떤 것이며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겠다는 의욕을 갖고 이 책자를 제작하였다.
한국언론도 어언 90년의 기나긴 역사를 갖고 있으며 이 90년 역사 속에서 한국 언론은 민족과 민주를 위해 고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우리 언협이 발간하는 <말>은 바로 90년 전통을 이어받은 주역임을 자부한다.
우리는 앞으로 사회 각 분야에 진실보도를 위해 발전하는 역사의 시작에서 현지를 답사, 구체적이며 생생한 보도에 힘쓸 것이다.
국민 대중을 위한 참된 진실보도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독자 여러분은 제도언론의 보도와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민중을 위한 진실보도, 사회정의를 위한 진실보도를 위해 우리는 줄기찬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전 세계의 독자 여러분의 전폭적인 성원을 기대하면서 우선 창간의 인사를 드리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잡지 창간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