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삼청교육대 나오셨어요? 선생님 교대 나오셨구나. 거기도 인 서울인가요?"
아이들에게 출신 대학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농담 삼아 한 대답에 돌아온 반응입니다. 예전 같으면 어이없다는 듯 야유가 쏟아지거나 헛웃음을 짓던 아이들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이 단어를 '교대'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삼청교육대라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과 국가 폭력의 기억을 요즘 아이들은 알지 못합니다. 가볍게 웃어 넘기기에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학번을 기준으로 보면, 05~13학번 세대와 14학번 이후 청년들의 역사 인식은 확연하게 갈라집니다. 05~13학번 세대까지만 해도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 '한국 근현대사'가 선택 과목으로 자리 잡고 있어, 학생들이 우리 현대사의 아픔과 성취를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육 과정이 개편되면서 14학번 이후 세대부터는 이 근현대사 과목 자체가 교실에서 통째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지금의 20대 청년들은 학교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쯤 되면 '수능에서 한국사가 필수 과목인데 무슨 소리냐?'라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학부모라면 잘 아실 것입니다. 아이들이 수능을 위해 한국사를 공부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현재 수능 한국사는 변별력이 거의 없는 초등학생 수준으로 평이하게 출제되는 데다, 대학 입시에서도 감점이나 가산점 정도로만 아주 미미하게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공부할 이유도, 깊이 파고들 동기도 사라진 '무늬만 필수' 과목인 셈입니다.
중학교 교육 과정으로 눈을 돌려보면 현실은 더욱 씁쓸합니다. 교과서에는 분명 근현대사 단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단원을 배우는 '시기'에 있습니다. 교육 과정상 현대사는 3학년 2학기 맨 마지막에 배치됩니다.
아시다시피 중학교 3학년 2학기 기말고사는 고등학교 입시 일정 때문에 11월 중순이면 모두 끝이 납니다. 시험이 끝난 뒤, 원서 접수와 진학 준비로 마음이 붕 뜬 교실에서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현대사 진도가 제대로 나갈 리 만무합니다. 결국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배우는 시간은 교과서 한 장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 자습이나 영화 시청으로 대체됩니다.
역사 공백이 분노와 만날 때
이러한 역사 교육의 공백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과거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중학교 때까지 전근대사를 마치고, 고등학교 1학년 때 근현대사를 필수 과목으로 깊이 있게 배우도록 하는 개편안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학자들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상황이 뒤바뀌었습니다. 근현대사라는 단독 과목은 폐지되었고, 전근대사와 통합되면서 분량은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역사 교과서를 국가가 직접 만들겠다는 국정화 시도까지 일어났습니다. 비록 비판 여론에 밀려 실패로 끝났지만, 그 과정에서 근현대사는 정권의 입맛에 따라 '불편하고 감추고 싶은 역사'로 취급당하며 교실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보수 진영은 이때부터 이미 10년 이상을 내다보고 청년 세대를 다지고 있었습니다. 교실에서 현대사를 지워내어, 미래에 그 공백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장기적인 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청년들의 극우화는 철없는 이념적 선택만은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심각한 고용 불안,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미래의 상실, 생존 경쟁 속에서 날카로워진 '공정성'에 대한 민감성, 그리고 갈등의 골이 깊어진 젠더 문제 등 복합적인 위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비극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학교가 비워둔 역사 교육의 공백 상태가 청년들의 절박한 현실적 불만과 만날 때, 무서운 파급력이 생겨납니다. 사회를 향한 청년들의 억눌린 분노와 박탈감을 파고든 것은 유튜브와 일베를 비롯한 자극적인 인터넷 커뮤니티였습니다. 이들은 역사적 면역력이 없는 청년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현실적 고통을 달래주는 척하며 '잘못된 역사적 정당성'을 무기로 쥐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승만은 오직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국부로, 박정희는 과오 없는 경제 건설의 영웅으로, 전두환은 서민들이 살기 좋았던 시절의 지도자로 각색되어 그들의 뇌리에 새겨집니다. 심지어 5·18 민주화 운동을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 비하하는 가짜 뉴스 앞에서도, 청년들은 방어할 지식이 없어 그대로 믿어버리는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지난 선거들에서 20대 표심이 보여준 극단적인 보수화와 우경화 경향은 우연히 일어난 현상이 아닙니다. 치밀한 장기 전략 속에서 역사 교육을 거세당한 청년들이 자라난, 빈약한 교육적 토양 위에서는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현대사는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와 번영, 그리고 현재 마주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의 뿌리가 모두 그곳에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삼청교육대를 교육 대학교로 오인하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민주 시민으로서의 연대감과 비판적 역사의식을 기대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욕심일 뿐입니다.
보수 진영이 10년 넘는 세월 동안 치밀하게 표밭을 가는 동안, 우리는 교실 안의 역사적 진실을 지켜내려 노력했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만약 지금과 같은 기형적인 교육과정과 기억의 공백이 이대로 방치된다면, 앞으로 10년 뒤 선거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극우 청년들이 대한민국의 미래와 표심을 뒤흔들게 될 것입니다.
그때의 교실은 우리 현대사에 대한 극단적인 무관심과 무지가 완전히 주류로 자리 잡은 비극의 장이 될지도 모릅니다. 아는 것이 없고 관심도 없기에, 저들이 주입하는 왜곡된 프레임에 아무런 면역력 없이 무리 지어 쓸려가는 교실 말입니다.
정권의 이념적 계산과 입시 편의주의 속에서 사라져 버린 현대사 교육을 교실 안으로 다시 온전히 가져오는 것, 그것이 청년 세대의 극우화된 정치 성향을 탓하기 전에 우리가 지금 당장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