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복 주머니에서 나온 책 다섯 권
4월 중순, 서울로봇고 운동장에서 AI로봇산업협회 주관의 '로봇인 등산대회'가 열렸다. 등산화를 신고 집결한 사람들 사이에서 한 참가자가 배낭에서 책 다섯 권을 꺼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로봇 유니버스-자동인형에서 피지컬 AI 로봇까지>.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37년간 산업계와 연구기관에서 로봇을 연구해 온 조영조 전 ETRI 연구 전문위원이었다.
"로봇에 대한 꿈을 키워가는 학생들이 이 책을 통해 로봇의 과거를 이해하고, 더 넓은 미래의 유니버스를 설계하는 영감을 얻기를 희망합니다."
그의 말이 산바람에 흩어졌다.

▲저자의 기증 편지조영조 로봇크래프트 대표(전 ETRI 연구전문위원)가 '제15회 로봇인 등산대회'를 기해 서울로봇고등학교에 책을 기증하며 함께 전달한 자필 편지 ⓒ 오성훈
나는 한 권을 교장실 책상에 올려두고 네 권을 도서관으로 보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교장실에 남겨둔 그 한 권도 곧 서가로 보낼 것이다.
요즘 우리 학교 분위기는 들뜨다 못해 조금 어지럽다. 현대차그룹의 아틀라스가 CES 2026에서 보여준 퍼포먼스 이후 로봇 테마가 국내 주식 상승장을 이끌었고, 언론과 유명 유튜버의 취재 요청이 쏟아졌다. KBS와 <한겨레신문>이 학교를 보도했고, 교육부 유튜브의 '놀러온 카메라'와 유튜버 미미미누의 '전학왔습니다'도 촬영되었다. 전국 유일의 로봇 마이스터고라는 수식어가 이처럼 무겁게 실감된 적이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이 책이 그냥 보기 좋은 선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생들이 올라서려는 이 산의 지형도 같은 책이다.
2000년 전 성수 자판기가 내게 말을 걸다
책의 첫 반전은 서기 1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된다. 천재 엔지니어 헤론(Heron)은 사원 입구에 성수를 자동으로 배출하는 장치를 설치했다. 동전을 투입하면 레버가 기울어 밸브가 열리고 성수가 흘러나오는 구조, 오늘날의 자동판매기 원리다. 전기 한 방울 없이 오직 지렛대와 중력만으로. 저자들은 이 기계가 단순한 편의 장치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사제들은 신의 마법처럼 보이게 하려 했고, 기술은 그 욕망을 충실히 섬겼다.
책에는 또 하나의 반전이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발명가 보캉송(Vaucanson)은 루이 15세의 지원 아래 '피 흘리는 사람(L'homme saignant)'이라는 극비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인체의 순환계를 기계로 복제하는 것이 목표였다. 인공 혈관을 위해 남미 가이아나까지 원정대를 보냈던 그 집착은 오늘날 인공 장기와 디지털 트윈의 먼 선조다. 헤론의 로프 매듭 알고리즘은 현대 이진법 프로그래밍의 조상이다. 이렇게 책은 '기술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2000년의 시간을 통해 설득한다.
나는 책을 내려놓았다.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욕망을 담는 그릇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학생들은 어떤 욕망을 담을 것인가. 납땜 인두를 잡고 로봇 팔을 조립하는 아이들에게 이 질문은 교과서에 없다. 그러나 2000년을 건너온 성수 자판기가 묵묵히 묻고 있다.
'강제 노동'에서 태어난 단어, 그리고 직업계고 아이들
1920년 카렐 차페크의 희곡 < R.U.R. >에서 처음 등장한 '로봇(Robot)'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체코어 'robota', 봉건 시대의 부역 혹은 강제 노동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희곡 속 로봇이 차가운 금속이 아니라 화학적으로 합성된 유기체였다는 점이다. 오직 효율적인 노동만을 위해 설계된 존재. 로봇의 탄생은 기술적 성취이기 이전에, 노동의 가치가 전복되고 인간성이 상실되는 것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되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오래된 불편함을 다시 만났다. 직업계고 학생들이 평생 들어온 말들 - "기술이나 배워라", "손기술로 먹고살면 되지" -이 차페크의 로봇에 대한 시선과 어딘가 닮아 있다. 효율적 노동을 위해 설계된 존재라는 규정.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그 규정을 거부하는 따개비들이다. 바위에 달라붙어 파도를 버티며 자라는 따개비처럼, 이 학생들은 사회가 정해준 자리를 스스로 넓히고 있다. 로봇의 역사가 그 공포와 저항의 역사였듯이.
셰이키에서 아틀라스까지, 우리 아이들이 서 있는 자리
책은 20세기 중반으로 넘어와 '지능형 로봇'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1960년대 스탠퍼드 연구소에서 탄생한 셰이키(Shakey)는 달랐다. 단순한 센서 반응을 넘어 주변을 인지하고 행동을 '추론'했다. 최초의 AI 이동 로봇이다. 오늘날 테슬라의 옵티머스나 현대차 아틀라스가 자랑하는 '시각-언어-행동(VLA)' 모델, 그 원형은 이미 반세기 전 셰이키의 머릿속에서 싹트고 있었다.
나는 이 챕터를 읽으며 실습실 풍경을 떠올렸다. ROS(로봇운영체제)를 처음 만지며 화면 가득 오류 메시지를 마주하는 1학년, 자율주행 알고리즘을 짜다 새벽을 맞이할 3학년. 그 아이들이 서 있는 자리가 정확히 셰이키에서 아틀라스로 이어지는 선 위라는 것을 책이 보여주었다. 역사의 연장선에서 자신의 위치를 아는 것, 그것이 이 책이 직업계고 학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도서관 서가에 책을 꽂으며
책 뒤편에는 인간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로봇이라는 화두가 남겨진다. "로봇을 통해 우리는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게 되지 않을까." 저자들의 질문이다. 철학적이고 아름다운 물음이지만,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로봇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인가.
대학 진학률이 선발 기준이 되는 세상에서 직업계고 학생들은 여전히 비교의 하단에 놓인다. 그러나 헤론도, 보캉송도, 셰이키를 만든 연구자들도 명문대 졸업장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손으로, 망치와 기어와 로프 매듭으로,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하는 일이 정확히 그것이다.
AGI 시대, 젠슨 황의 방한, 피지컬 AI. 이 단어들이 뉴스를 채우는 지금, 이 책은 소란한 현재에 2000년짜리 뿌리를 달아준다. 나는 서가에 마지막 한 권을 꽂으며 생각했다. 이 책이 진로를 고민하는 어느 학생의 손에 들어가, 2000년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순간을 맞이하기를. 로봇을 공부하는 것이 단순히 취업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이어온 가장 오래된 꿈에 합류하는 일임을 알게 되기를.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사 채택 후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